짧은 금정산 산행기
태산(큰 산)과 대하(큰 강)가 가진 정기는 주변에 위치한 학교들이 두루 나누어 쓴다. 내가 나고 자란 부산 북구 덕천동을 예로 들어보자. 이 동네 학교 대부분이 교가에서 금정산을 언급한다.
- 금정산 정기 닮은 푸른 기슭에 우뚝 선 새싹들의 배움의 터전 (덕천초)
- 금-정산 솔-향기 아름다운 배움터 사랑으로 자라나는 보금자리다 (덕천여중)
- 옛 가야 밝은 기운 금정산에 서리니 슬기와 덕을 닦는 배움의 터전 (덕천남중)
- 금정산 정기 어린 의성 옛터에 바르고 곧게 자랄 내일의 새싹들 (덕성초)
- 태백의 줄기 뻗쳐 금정산 이루고 반만년의 밝은 의기 한 핏줄로 이어 왔으니(낙동고)
- 금정산 높은 기상 오롯이 빼어 받고 낙동강 맑은 물결 눈 아래 굽어보는 (구포중)
금정산은 정기가 솟구치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온 동네 아이들한테 정기를 나눠주려면 말이다. 어쩌겠는가. 숙명이다.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나눠주어야 한다. 덕천초와 덕천여중을 졸업한 나 또한 금정산 키즈였다. 두 학교 교가가 전부 금정산으로 시작했다. 어릴 때 생각하기로는 꽤 의아함을 느꼈다. 대체 어디길래, 얼마나 높길래 아이들이 그 기상을 빼닮길 바라 마지 않는지. 대충 학교 뒷산이거나 앞뒤로 걸쳐있는 큰 산 중 하나겠거니 했다.
심지어 이 산은 거리가 조금 있는 학교와도 뭔가 계약한 게 많다. 구남역에 있는 구포중도 금정산이랑 낙동강한테 기운을 수급 받는다. 재밌는 점은 바로 옆 구남중은 태백산 기운을 받는다는 점이다. 둘이 딱 달라붙어 있는데 이렇게 다르다. 구포중은 구남역에 있으면서 정체성은 구포에 가있다. 오히려 구명역(구포랑 더 가까움, 구남역 옆)에 있는 가람중학교랑 정체성을 공유한다. 구남중이랑 팔짱 끼고 있는 백양고는 거인 같이 흐르는 낙동강을 안고 있다. 이웃한 중학교들보다 강 건너 강서고와 더 통한다. 고등학교라 이거지.
도대체 뭐하는 산이길래 줬다 말았다가 하는 걸까? 검색해보면 내 모교와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지금은 덕천도서관이 지어지고 있는 내 출신 중학교 근처에 난 작은 입구로 금정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1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범어사까지 닿아있는 산이니 그렇게 커다랗다고 해도 믿을 수 있다.
나는 착한 덕천의 딸이었다. 정기를 빌려주는 산 할아버지(또는 할머니) 속내를 헤집을 생각은 안해봤다. 어르신 머리꼭지는 더더욱 발가락 하나 얹어보지 않았을걸? 아마도? 궁금해서 초입까지 올라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는 조난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금방 퇴각했다. 빗물장군이 현관문에 침을 바르듯, 어린 나는 산 입구(로 추정되는 산책로)에 발자국만 찍고 말았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두실역에서부터 범어사까지 가는 2시간 코스로 산을 탔다. 신비로운 던전을 체험한 듯했다. 혼자라면 절대 안갈 미스터리한 공간을 드디어 범접해보다니! 물론 초심자용이었기에 어찌 보면 겉핥기만 한 수준이다. 금정산의 겉면은 온화했다. 흙길도 부드럽고 크게 위험한 구간도 없고 날씨도 좋았다. 동네 산신의 머리 꼭대기에 서본 경험은 또 새로웠다. 어른이 되어버려 금정산의 기운을 간접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된지 어언 10여년. 짧은 산행으로 정기를 다시 얻어썼다. 여름 땡볕에도 산공기 신선도를 잘 유지했더라.
그러고 보니 본래 산의 임무는 속을 들락날락하는 산객 하나하나에 직접적으로 정기를 나눠주는 일이다. 태산은 깊고 날 서있는 주제에 온 동네 사람이 그 정기를 골고루 나누어 쓰게 냅둔다. 인간한테 길들여질 수록 산행로가 평평해지는데, 쉬운 코스가 많은 금정산은 사람한테 많이 길들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동네에 위치한 학교는 선생님이 등산부 학생들을 꼭 데려가는 것 같았다. 애들도 올라갈 수 있을만큼 열려있어서 그런 듯하다. 왜 교가로 언급 많이 되는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