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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Dec 06. 2022

산책을 함께 할 권리

산책을 듣는 시간 독후감

표현력이 굉장한 소설 ‘산책을 듣는 시간’ 말미에는 산책 사업이라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주인공 수지는 한민이와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로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함께 산책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수지와 한민이는 듣도 보도 못하는 자신들의 특징을 특기로 살려 산책 테마로 써먹는다. 눈을 감고 걷는 한민이에게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 신청자가 눈을 감고 다른 감각을 동원하기, 안내견 마르첼로의 시선을 따라가기, 소리를 못 듣는 수지와 함께 조용히 걸어보기 등. 참가자들은 산책하면서 영감을 얻거나 휴식을 가진다. 사업은 꽤나 수월하게 진척되었다. 언뜻 들으면 낭만적이다. 


 그러나 나는 썩소를 잘 짓는 썩은 어른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심이 들었다. 행인이 둘인데 그중 하나가 눈 감고 다니면 위험하지 않나? 내가 신청자라면 눈 감은 한민이를 안전하게 에스코트하느라 주의를 온통 다 쏟을 것 같다. 한민이도 나를 잘 간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경 50cm 안에서 계속 걸거쳐줘야 한다. 그리고 주제를 의식하며 걷기만 해도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다면 혼자서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보이는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다른 존재의 시각을 상상하되 한민이에게 설명하지는 않을 뿐이다. 나쁠 거 없잖은가. 벤치에 앉아서 차분하게 노트에 끄적여도 되는 거고, 혼자 중얼중얼 녹음해도 되고, 부모님께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도 될 텐데. 얼마만큼 낯선 감각이 깨어나는지도 의문이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힘이 다른 시도 두어번만으로 일취월장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내가 관찰하지 못했던, 다시 말하면 더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이 무어가 있는지 배우는 과정도 필요하지 싶다. 개인적인 깨달음을 요구하는 점이 다분히 동양적이다. 생각이 얕은 대신 소통이 깊은 서양식 방법도 섞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수지의 산책 사업은 매우 효과적이잖은가? 수지의 기획력과 한민의 말재간이 어우러져 우연히 신비로운 차별점이 생겨난 거라면, 나도 그 특훈 받아서 영업비밀을 캐고 싶다. 


 산책 동행 서비스가 과연 성공적인 사업이 될까 내 소비 기준에 맞춰 의아해하는 나한테, 일본에 실제로 그런 게 있었다고 책 동지가 말씀해주셨다. 검색해보니 미국에도 그런 게 실제로 있었단다. 원래 애견 산책 대행 사업을 하려고 했다가 배변봉투 치우기 귀찮아서 대신 사람을 산책시키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대박을 터트렸다. 직원 5명을 고용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2016년에 발행된 인터넷 신문이 그랬다. 사실 산책 서비스 하면 대부분이 애견 산책 대행이다. 사람 대상은 노인 말벗 서비스가 많다. 노노케어라고, 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을 살펴 봐주고 말벗해주는 복지 서비스도 있다. 


 산책 사업과 말벗 서비스의 수요는 어디서 발생할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체적으로 월등하지 않고 지능이 우월하지 않은 개체까지도 포식종의 위협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인간종이 우호성을 전략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우호적으로 모여 부락과 문명이 생겨났다. 던바의 수라고, 인간의 친구 한도가 150명이라는 말이 있다. 부족이 그 이상이면 분열된다고 하는데 현대인인 우리는 수천수백수억명과 함께 살아간다. 너무 걷잡을 수 없이 많은 타인은 파악하기 어려워 불안을 느끼게 만든다. 현대인은 신원을 모르는 낯선 타인이 말걸면 께림칙해한다. 이렇게 분열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관계를 맺는 기회가 널려있지는 않다. 구설수에 휘말려서, 타지로 전근해서, 늙고 병들어서 혼자가 된 사람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 십상이다.

 

 돈을 쥐어줘야만 말벗을 가질 수 있다니 같은 외톨이로써 비수가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사람을 곁에 두는 건 어떻게든 돈인 거 같다. 노노케어 활동가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는다. 당연하다. 교통비로 써야 하고 왔다 갔다 간식도 사 먹어야 하므로. 활동비를 받지 않고도 앞자리 숫자가 다른 언니오빠들의 안부를 주기적으로 물어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복지관 예산으로 소외감을 제거할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다. 돈으로 외로움을 더는 건 크고작다는 차이만 있을뿐 대부분의 사교 활동에 해당한다.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밥도 먹어줘야 하고 밖으로 나가줘야 한다. 어려움에 처할 때는 기꺼이 도움을 줘야 하고 경조사마다 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살아 있으려면 돈이 드는 존재들끼리 모여서 관계를 맺는데 당연히 비용이 발생한다. 삶은 계란인가? 삶은 돈이다. 산책 동행인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유료로,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여분의 사교치를 제공했다. 생존 욕구를 다 채워서 정서적 욕구를 채울 단계인 사람들은 수지에게 기꺼이 말했다. “Take my money!”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돈도 잘 모으고 지갑도 쉽게 연다. 나는 얼마 들어오지 않는 수입을 꽁꽁 꽁쳐놓으려고 신경 쓰는 편이다. 신경 쓰긴 하는데 수입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흐르는 모래알을 보는 것 같다. 난 분명히 나가서 밥만 먹었는데 왜 이렇게 줄었을까? 나는 외톨이인 주제에 푼돈에 전전긍긍한다. 나중에 내가 늙어서 소비자가 될 때쯤에는 AI가 무료고 인간이 유료 선택지일까?  


 만약 내가 애매한 자린고비라서 산책 같이할 자격을 발급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동아리를 만들어야지. 그것도 안 되면 마을 활동가한테 가서 제발 나랑 산책해달라고 징징대봐야지. 제일 먼저 나를 아는 사람들한테 가서, 우리 관계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산책을 시도하자고 주장할 거다. 


 다행인건 나 대신 먼저 시작해주는 사람이 많단 점이다.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판매 서비스는 동네 직거래 위주라서 동네 커뮤니티 기능도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에 산책(또는 운동)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댓글도 물론 잘 달린다. 소모임과 일회성 만남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흥한다. 단순 친목하는 게 목적인 채팅방도 유입이 잘된다. 난 거기서 댓글 달고, 참가하면 된다. 어떤 경로로도 사람들은 서로를 찾는다. 여기서 산책 사업이 사업성 있는 이유가 나온다. 관계를 열망하는 잠재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돈이 없어도 산책에 참여할 수 있는 경쟁 방법이 많을 뿐이다. 


 사람은 꽤 많이 서로를 원한다. 사람과 어울리는 행동은 그 본능성을 생각해볼 때, 평균적으로 열망하는 정도를 고려할 때 권리의 일종이다. 우리는 고립되면 나약해진다. 누구는 생각을 나누지 못해 속이 곪아 터지고 누구는 기운을 얻지 못하여 마음이 시들시들해진다. 해악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확실한건, 완전한 고립이 부정적인 상태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나는 산책 사업이라는 아이디어에서 느낀 찝찝함을 토대로 이렇게 주장하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 팔아도 되지만 무료 선택지는 있어야 하는 것이 교육 외에도 있다고. 그건 공동체에 속할 권리, 즉 누군가와 함께 산책할 권리다. 어느 누구도 고독사하지 않고 외로워서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있게 말이다. 


 길을 향유하는 것 또한 권리다. 집 밖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 적어도 골목길과 공원만은. 친구 없어서, 돈 없어서 방문하기 꺼려진다면 얼마나 가슴이 째지겠는가? 국민 건강을 위해 산책 문화를 활성화해서 이바구길 같은 마실로를 군데군데 조성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할매 할배 커플도 가난한 외톨이인 나도 누릴 수 있다. 오늘만큼은 나와 함께 걷자고 말해야 하니까, 우리 동네에 꽃향기 나면 좋겠다. 







책의 중심 주제는 이 글과 영 딴판이다. 좋은 책이니까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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