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오션 Nov 04. 2021

달에 사는 엄마에게

소설 '달의 바다' 독후감 -찬이가 보내는 편지

난 자꾸 꿈을 꿔요. 엄마가 약해지기 전으로 되돌리는 꿈을.  


엄마, 저는 가끔 그 날 공항에 혼자 서있어요. 

시원하고 외로운 냄새가 나는 넓은 홀에 덩그러니 놓여서 두리번거려요. 

저 멀리엔 멀대같이 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요. 하지만 제 곁엔 아무도 없죠.  


그때 엄마는 외로운 손을 찾아서 비행기로 데려가요. 

이제 아빠는 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나지막하게 말하며 손을 꼭 잡아줘요. 

불안이 금세 누그러들은 나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만날지도 모르는 미국 하늘을 기쁘게 떠나보내요. 

왜냐면 난, 아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엄마에게 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려나요? 

그렇지만 할머니만 받을 수 있던 편지를 죄다 읽어버렸어요.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를 이해하게 됐어요. 나만 모르던 우리 집의 역사를 모조리 알게 되었으니까요. 

더운 여름날 젖은 베갯잇이 기분 나빠 끙끙거리며 나이를 조금 더 먹어요.

 

얘야, 순이야. 

떠난 지 몇 년 되고서야 편지 한 통 보내보는 애비를 용서해다오. 

할아버지는 월석을 만지던 표정으로 글자를 꾹꾹 눌러 담아요. 할머니는 옆에서 보고 있죠. 

바깥에는 매미가 울어요.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림 받고 온 저녁이었어요.  


버려진 자식이라고 지껄인 아이를 끈질기게 골탕먹인 날에는 

어느새 그때 그 말간 얼굴로 와서 꼭 안아주세요.

오랜만이야. 내가 밉지는 않니? 

멀찍한 거리를 체감시켜주었던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요.

그래도 딱히 밉지 않았어요. 미친 여자를 잊고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한 달 식비. 복잡한 보험. TV에 연일 등장하는 욕심쟁이 돼지들. 지구온난화. 불쌍한 사람들. 남편이 주는 모욕. 

그런 문제로부터 숨고 싶을 때 할머니는… 아름답고 둥근 곳 어딘가에 반짝 빛나고 있는 당신을 찾으세요.

나는 전화를 걸려다가 말았어요. 왜냐면, 국제전화는 너무 비쌌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수신할 수 없는 편지를 써요. 

왜 나와의 낭만적인 작별은 준비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달의 바다 한가운데 눕고는 망연히 지구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달에 가서 엄마의 눈을 감겼어요. 

지구에 착륙한 은미 이모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챙겨줬고, 지구를 떠난 적 없는 할머니도 말없이 돈을 찔러주었죠. 돌아오면서 본 미국 하늘은 기억과 똑닮았어요.  


엄마. 내가 가장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엄마. 

방금도 꿈을 꿨어요, 엄마가 쇠약해져 가는 시간에도 내가 곁에 있는 꿈을요.  




달에 사는 엄마에게, 

주소를 모르는 찬이가.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을 함께 할 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