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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Nov 04. 2021

만일 주변사람이 시를 봐달라고 한다면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는 두루마기다

 중학생 시절 역사 선생님이 내 존재의 가벼움을 입에 달고 사셨던 게 생각이 난다. 무섭고 호된 성격 탓에 아이들에게 비호감이었던 선생님은 아이들을 혼낼 때마다 “니가 내를 무시한기 때문에 내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읎다”라고 말버릇처럼 말하셨다. 솔직히 선생님이 어떤 심정과 의도였는지는 당시에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의 소외를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그 시절의 나에게 그 말은 멋있게 다가와 통렬하게 박혔다. 


 고등학교로 올라온 나는 내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나를 따돌리는 급우들, 해가 뜨면 학교로 쫒겨나서 달이 떠야 해방되는 구속의 나날, 가정형편 때문에 국립대를 장학금 받고 다녀야 한다는 압박감,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딸인 것에 대한 죄송함, 학생은 선생을 욕하고 선생은 학생을 냉대시하는 뜨거운 적막…. 어째서 세상은 나를 이렇게도 작아지게 만드는지, 그런 낯부끄러운 정념이 어느새 연기처럼 피어올라 공간을 가득 메웠으므로 질식할까봐 시로써 토해냈다. 


 세상이 날 버린 것 같고, 빈곤이 목을 조르고, 人鬼 (인귀)에게 매질을 당하고, 세상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사회체제가 영혼을 구속하고, 나의 세상으로부터 박해 받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내 소중한 이가 세상한테 헐뜯기고 오고, 내가 누군가를 짐승처럼 물어헤쳐버렸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 감정에 메이게 된다. 사사로운 감정이 더 이상 사사롭지 않게 되고 나의 풍경과 반죽되어 작은 가슴 속으로 들이닥친다. 단 하나를 담기에도 벅찬 가슴에 세상을 담기란 버거우므로 시를 써서 숨을 채운다. 


 세상이라는 정신 없는 회오리에 내 영혼이 한 없이 비틀거리던 고등학생 시절에 쓴 시도 진심이 꾹꾹 담겨있다. 특이점 상태인 초기 우주처럼 짧은 마디마디에 수십번 스쳐가던 번뇌가 그물에서 갓 떨어져나와 펄떡이는 물고기로, 그렇게 문자가 되어 종이 위에 던져진다. 짧지만 바다만큼 많은 사념이 담긴 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는 두루마기다. 풀어헤치면 작가가 느껴온 감정의 역사가 뜨겁고 미약하게 압축되어 전달된다.


 뭐, 아무리 그렇게 감정이 담겼어도 일개 고등학생이 쓴 시가 얼마나 잘썼겠나. 나는 근처 지역에서 공부 좀 못하기로 소문난 인문계 고등학교의 평범하게 중상위권인 게으름뱅이 여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전문적인 시인 양성 과정을 거쳤을리 만무하고 시 이론이라고는 국어시간에 운율, 수미상관, 비유법 등을 시를 분석하면서 조금 알게 된 게 다다. 당연히 엉성할 수 밖에 없다. 함축적인 요소를 살렸더니 나만 알 수 있는 외계 언어가 되고, 기껏 늘렸더니 시가 아닌 일기의 영역이 되고. 학생만 그런가? 시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 중에 취미로 시 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가난한 형편 탓에 교육을 못받으셨지만 문예에 소질이 있으셔서 그림과 시가 취미셨다.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서 자세하게 배운 게 아니라면 당연히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잘 썼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보기엔 우리의 시는 형편없는 그릇이다. 뚜껑 아래엔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릇이 고꾸라지고 희미해서 안에 들은 내용물이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무늬 없이 투명하기만 해서 가볍게 넘기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우리의 시를 전문가는 폄하한다. 심지어는 재능이 없다거나 이거는 시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시를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취향이란 게 있고 이상적인 시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 우리의 시를 보고는 ‘좀 더 함축했어야’한다거나, ‘비유를 좀 더 쉽게 했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를 더 잘 쓰기 위해서 정진해야하는 걸까? 잘 쓴 시란 뭘까? 우리 어머니 동창인 대중시인은 “시라는 것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시전문가는 자기 책에서 “적당한 함축과 서술구조를 갖춰야 제대로 된 시”라고 말한다. 너무 솔직한 시는 시가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고 길이가 어떻든 중복된 표현은 가급적 삼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은 시에 대해서 “짧고 함축적이면서도 주제의식이 분명한 시가 잘 쓴 시”라고 말한다. 내 모교 국어선생님은 감성적이고 진솔하게 표현한 시를 잘썼다고 하셨고 내 아는 사람의 친구분은 길고 진솔하게 사랑을 표현한 시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다양한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자작시 여러 개를 보여준 결과 이 분들이 잘썼다고 평한 시는 각각 달랐다. 


 시전문가는 어려운 시를 좋아하고 대중시인은 쉬운 시를 좋아한다. 주제나 의미 등이 같은 조건 하에서 쉬운 시는, 어렵고 수수께끼 같은 시보다 노력이나 실력이 덜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품성이 덜하다고 한다면 시 전문가의 안목은 우수한 게 되고 현역 시인의 안목은 저급이 된다. 대중은 얇은 감성을 가지고 가짜 시를 즐겨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시인은 돈벌이를 위해 사랑, 그리움 같은 대중이 좋아할만한 몇 가지 주제를 달콤하고 직선적인 언어로 표현해낸다. 이를테면 ‘이름을 불러보니 당신이었다’, ‘당신이 떠나는 날에도 그리움을 곱씹고’ 같은 표현이다. 즉 대중이 좋아하는 대중시인은 저급 예술을 향유하고, 시를 좀 공부한 사람이여야 진짜 시를 음미할 수 있다. 시간을 들여 해석하고 시간을 들여 시인과 소통해야 시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이런 건 엘리트주의 아닐까? 언어적 해석능력이 높은 사람, 시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 많이 읽은 사람만이 진짜 시를 향유할 수 있다며 대중을 무시하는 게 옳은 일일까?


 반대로 일부 공부한 사람들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어려운 시는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무가치하고, 읽는 이가 어떤 사람이든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시가 제대로 된 시라고 한다면 대중시인의 안목과 대중은 진짜 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고 시전문가들은 잘난 체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하지만, 적당한 함축과 완성도 높게 짜여진 서술구조를 쓰거나 해석하기 위해 공들이는 시간 속에서도 무언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자작시 사이트에 [마을은 무너지고 가을은 거꾸로 뒤집히고 악마가 사람들을 벌하고]같이 어휘가 반복되는 잔혹동화 풍의 시를 올렸다. 누군가는 그 시보고 찜찜함을 느꼈을 테고 누구는 조용히 추천을 눌렀을 거다. 간결하고 진솔한 시를 쓰는 고은 시인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며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다. 반대로 어떤 이는 고은 시인이 쓴 시에는 감흥을 못느껴도 길고 서글픈 문영규 시인의 '소'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시기엔 사회비판적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저항시, 민중시가 대세였다가 다시 서정성을 회복하고 감성에 집중하는 시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시에는 정도가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소설 취향이 다르듯이 시 취향도 다 다르다. 이런 시를 옳다고 하는 전문가도 있는 방면 저런 시를 옳다고 하는 전문가도 있다. 경험을 포함해 저마다의 기준으로 시를 평가하고, 감동 받는다. 어떤 시가 제일 멋있는지 정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시는 누군가의 상처와 사념, 깨달음으로 나온 것이다. 그렇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주목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주변 사람이 시를 읽어 달라 했을 때 좀 더 따뜻하고 관용적인 눈으로 시를 봐주자. “이거는 글 배열을 바꿔야 낫다.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다. 별로다. 이런걸 시라고 부르지마라.”라고 평가하며 상처주기 보다 그의 감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들어보자


(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고 모든 시가 다 대단하단 말은 아니니까 못쓴 시도 존재할거다. 의미를 숨긴 게 아니라 의미전달 자체에 미숙하거나 누가 봐도 시가 아니라 일기인 경우 말이다. 취향을 넘어 시 쓰는 것 자체에 미숙한 초보의 글 같은 경우다. 재능이 없다 혹은 시를 폄하하기 보단 격려해주는 게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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