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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Mar 20. 2023

나는 락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논리의 저렴함


저는 락 느낌을 좋아해요.

라디오 헤드의 Paranoid Android,
스타세일러의 Four To The Floor,
5 Seconds Of Summer의 Youngblood,
아디오스 오디오의 Dissolve를 좋아하거든요.



나는 얼마 전에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주장하면서 좋아하는 곡 몇 개를 근거로 들었다.

과연 타당한 판단인가?

주장과 근거의 연결성이 빈약한데 이 상태로는 논리가 너무 저렴하진 않나?








락이 뭔지 알고 좋아한다 하느냐?  


락 느낌이라는 게 뭔데? 애초에 락 느낌이 뭔지 제대로 알고 좋아한다고 말하는가?


락과 다른 큰 갈래의 장르(팝, 인디, 블루스 등) 차이점

락 하위분류와 시대별 유행

락을 대표하는 밴드곡이 대충 입맛에 맞는지, 전반적으로 들어는 봤는지


이걸 알고 난 후에 락 같은 느낌을 좋아하느니 마느니 하는 게 맞다.

이걸 알아야 락 하위장르 중 대략 어느 장르를 선호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근거로 든 곡이 락이 맞긴 하냐?


하나씩 검증해보자.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곡의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이며 라디오헤드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스타세일러의 Four To The Floor: 곡 자체의 장르는 알 수 없었으나 스타세일러는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5 Seconds Of Summer의 Youngblood: 구글이 팝 록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밴드는 팝 록을 포괄하는 팝 밴드이다.

아디오스 오디오의 Dissolve: 지니에 의하면 인디, 유튜브 공식 계정에 의하면 락이다. 아디오스 오디오 밴드는 이모셔널 팝 밴드라고 한다.

쏜애플, 넬 밴드도 좋아함: 쏜애플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넬도 마찬가지다.


저명한 인터넷 전문가님들 아뢰길, 모두 락 장르에 속한다.




락 노래 자체가 많은 거 아니야?


락 장르를 좋아한다는 판단이 정체성과 취향에 반영될 수 있을만큼 규모가 적당한가?


내가 좋아한다고 예시를 든 곡들이 우연히 전부 락 장르인 거 아니냐? 락이 엄청 큰 갈래의 장르고 엄청 유명한, 유행한 장르여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곡마다 락일 수도 있지 않느냐? 대중적으로 성공한 장르여서 곡 수가 많고, 그런만큼 하위 장르가 많이 갈라져 범위가 무척 넓을 수도 있다.


검증하려면 락의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 알아봐야한다.

뭐라고 검색해야 나올까. 일단 챗gpt한테 질문해서 힌트를 얻어봐야지.




정말 락 노래만 좋아하는 거 맞냐?


근거로 든 곡은 고작 몇 곡밖에 안된다. 사람이 4~5곡만 듣고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몇몇 밴드를 좋아한다(그럼 그 밴드의 곡들은 거의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 근거로 들 수 있는 곡 수가 훌쩍 뛴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저 곡들이 처음 듣고 반한 최애곡이긴 해도, 근거로 삼기에는 몹시 불충분하다.



나는 노래 듣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열거하여 분류해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를 띄고 있다. 한가지 장르를 깊이 좋아하기보단 꽂히는 곡을 듣는 에 가까운 듯 하다.


행진곡, 김상사, 출정식 등의 신나는 행진곡

쑥대머리, 뱃노래, 가시리 등 국악풍 노래와 가야지 같은 불교음악

Eldon의 Pink cheeks, 최예근의 어른 등 R&B/Soul

지구 멸망 한 시간 전 같은 힙합곡도 몇 개

노사연의 돌고 돌아가는 길, 임주리의 사랑의 기도, 김수희의 화등 등 성인가요(트로트)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Mr. Golden Sun, 호키포키 등의 동요

포코 로코, 기억해줘, 빛나 등의 애니메이션 음악

B.A.P의 ZERO 같은 K-POP, 아이돌 댄스곡 등...


훑어보니 넓고 얕게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러면 내가 좋아하는 락 장르 노래들이 락이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특정 이유가 있어서 좋아한다는 가능성도 생긴다. 락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 잘듣는데, 장르별로 몇몇 곡을 좋아한다면, 장르를 구분하는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가사가 중요하거나, 자주 들어서 귀에 익숙해졌다든지, 특정 악기 소리나 특정 음역대의 보컬 목소리를 선호한다든지... 

운율과 가사의 특징, 좋아하게 된 계기 등을 잘 따져보면 일관된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지.

중구난방으로 보이지만 어떤 패턴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걸 파악하는 건 복잡한 일이다. 목록 입력하면 알아서 추리해주면 좋을텐뎅~! 



락 같은 느낌을 비교적 선호하는가? 


락만 깊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여러 장르를 폭 넓게 좋아한다는 사실이, 락을 안좋아한다는 명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락도 좋아할 수 있는거다. 


혹은 많고 많은 곡 중에 락에 더 관대해서 락 장르를 제일 폭 넓게 선호하는 걸지 모른다. 

어쩌면 락 중에 취향에 딱 맞는 하위갈래가 있어서, 그 하위 갈래의 특징을 닮은 다른 장르의 곡도 좋아하게 된 걸 수 있다.

  
일단 다른 장르에 비해 락 같은 느낌의 운율을 선호하는지 알려면 어떤 부분을 반복재생하는지 정리하면 좋다. 

달샤벳의 Mr. Bang Bang(팝 댄스곡)처럼 곡조가 휙휙 바뀌는 대중가요,

모동숲 K.K 음악처럼 여러 음악 장르를 래퍼런스 삼은 곡 모음집,

또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대놓고 퓨전곡에서 어느 곡, 어느 파트가 킬링파트로 들리는지로 어떤 감성에 끌리는지 파악해보는 것으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4:08 – 4:55] 구간에 "So you think you can stop me and spit in my eye? So you think you can love me and leave me to die?"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위키백과에서는 이 부분이 하드록에서 따온 구간이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 이외에 다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아예 장르 퓨전곡을 찾아서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나을 것이다. 모동숲은 k.k 아이돌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다. 


B.A.P punch - 날 바라보는 네 그 눈빛들 속에 그런 걱정 따윈 지워주길

심규선 오필리아 -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이달의 소녀 Why Not? - Ooh la la 아 왜, 아 왜, 아 왜 Ooh la la 왜 왜 안 돼 안 돼

서도밴드 매일매일 기다려 -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일반 가요에서 좋아하는 킬링 파트를 모으려 했지만 하나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가 몹시 다양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가사가 공감되거나, 노래 자체에서 강조되는 부분이라 애초에 킬링파트로 꼽는 사람이 많거나, 자주 듣는 말투와 닮아서 귀에 잘 들어와서 선호하거나, 따라부르기 쉬운 부분이거나, 그 부분에 쓰인 효과가 마음에 드는 식으로 말이다. 선호하는 킬링파트를 목록화하고,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패턴을 찾아내는 일은 나름 유의미하겠지만 '특별히 락다운 느낌을 좋아한다'는 주장에 단서로 쓸만하지는 않다. 



락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그 장르를 선호하게 된 계기가 뚜렷히 있다면 문외한인 점, 취향이 넓다는 점과 별개로 그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장르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뜻이므로 긴가민가하게 들리는 곡도 호평할 수 있다.


뭔말인지 예를 들면, 내가 만약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게 주요 정체성인 사람이야. 그럼 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신곡에 good 이상의 판정을 내리겠지. 이번 곡의 별로였던 첫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참으면서 계속 들을 것이고 곧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인지 일관성 이론에 의하면 태도의 일치를 위해 더 중요한 요소를 따라 나머지 요소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나는 어떤가? 어린 시절 넬, 요조 노래를 소개해준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 있었다. 그는 메일과 방명록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그 두 아티스트의 음악을 적극 추천하였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뭐야 싶었지만 듣다보니 금방 좋아졌다. 특히 넬이 그랬다. 처음에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 좋았고, 다음에는 '한계', 그 다음에는 'meaningless'가 되는 식으로 최애곡을 바꿔가며 즐겼다.

내가 락 밴드를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이렇듯 옛친구에 대한 추억이 서려있다. 그 이웃은 담백한 취향과 정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실 그 외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넬을 통해 내가 모던 락 장르에 호감이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에 쏜애플 곡 몇 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좋아하는 락 노래들은 우연히 듣고 좋아진 것이다. 락을 깊게 파헤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가리는 게 많았으으므로. 

 



결론


대충 락도 좋아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면 락 감성이 내 성향이랑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곡 취향이 정서와 사고의 결을 따라간다고 믿는 사람이다. (뇌피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살펴보았을 때 크게 3가지 느낌으로 나뉜다. 

신나서 방방 뛰는 곡 

가볍게 흐물흐물하는 곡 

소리치거나 흐느끼는 곡 

대충 내가 이런 느낌의 정서가 왔다갔다하는 인간이고, 락은 마지막 느낌에 해당되어서 좋아하고, 발라드와 힙합처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장르 곡이 가지는 일반적인 정서는 공감이 안되어서 선호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두자. 슬픈 발라드는 안좋아하면서 슬픈 록은 왜 좋아하냐고 하면,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빨리 답을 내리고 치우고 싶기에 대충 생각해보건대, 내가 끌려하지 않는 발라드 곡은 선명하게 슬프고 내가 좋아하는 락은 배배 꼬여서 복잡하게 슬퍼하는 느낌 차이가 아닐까? 뭔 소린가 싶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음악에 대해서는 영 문외한이기 때문에 천천히 알아봐야 한다. 악기별 사운드조차 구분하지 못하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난 그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종종 단순한 욕망을 토대로 행동하고, 합리성이 떨어지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래서 내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니 사실, 의견을 많이 말하긴 하는데 내 아둔함이 들통나지 않길 바라면서 도박하는 것에 가깝다. 

슬퐁.. ㅜ.ㅜ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의 비논리성은 직관에 의지하는 것 때문에 나오는 것 같다. 어떤 분이 나의 그런 점을 듣고는, 그건 어릴 때 흔히 하는 실수라고 얘기해주며 외부 정보를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 태도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는 결론을 내도록 도와주셨다. 


난 어릴 때부터 나만의 이론이나 남들이 하지 않은 고찰을 발표하고 싶어했으며, 선대 똑똑이들이 낸 결론을 나도 고안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정보 수집 외에 내부적 고찰에만 집중했다. 타인이 고안한 생각을 너무 잘 수용해서 내 생각인양 무의식적으로 주장하는 추태를 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서, 나 그거 못 들어봤으니까 이거 온전히 내 힘으로 생각한 거야!! 이러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인풋이 빈약해 아웃풋마저 초라해지더라고.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흠이 되었다. 배운 적 없는데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더이상 자랑이 아니다.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각에 저작권이란 게 어딨는가.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양 수용하고 재생산하고 배포하면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겨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견(사상, 생각)은 창작물이 아니고 내 편에게 입히는 정치적 도구인 것이다. 어린 나는 몰랐다.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뭐가 나오지도 않는 사골을 계속 우릴 바에 이런저런 근거를 더해서 주장에 힘을 싣는 것이 훨씬 이롭다. 유년기에 고찰하는 것에 집착한 영향으로 나름 생각을 파헤치는 법은 배운 것 같으니, 이제 논리가 부족한 포인트를 집어내어 그에 대해 조사를 해보자.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는. 어렵겠지만... 





내가 종종 가지는 문제- 저렴한 논리 

'나는 락을 좋아한다'는 주장을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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