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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Apr 08. 2023

Playlist Master가 된 미래를 상상하며…

PMB 16기 W4~6 헛소리 회고록

나는 it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따라서 코드스테이츠 PMB 16기를 수료하였다.
부트캠프란 집중해서 성장하는 프로그램이며 PMB에서는 Product Manager이 되기 위한 학습 및 실습을 할 수 있다. 이 글은 총 13주로 진행되는 부트캠프 기간 중 아직 학습 세션인 4주차~6주차에 작성하였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여기에도 올린다.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으니까. 


모든 사진의 출처는 언스플래쉬이다. https://unsplash.com/ko




할 말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되어서 중언부언하는 글이다.
사실 정리가 잘 안된다기 보다는 이걸 회고에 적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많다.


이 헛소리 회고에는 세션 2 기간 동안 심리가 어땠는지 잡다하게 서술하고, 

어떤 문제를 겪고 어떤 대안을 냈는지 KPT는 다른 회고록에 적겠다. 



♬ 글 순서 

너는 왜 안하는 거야?

데일리 과제가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

힘들 때는 왜 하고 싶었는지를 상기하자

내가 의외로 PM에 잘 맞을 거 같은 이유

아무래도 만들고 싶어서

꿈은 장애물이 아니다

사고체계의 비효율성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너는 왜 안하는 거야?



예전에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분이 이렇게 물어보셨다. 너는 왜 안하는 거야?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 당시에는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게을러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거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부트캠프를 시작하고 섹션1(1~3주) 동안은 매일 똥글을 양산하는 똥싸개가 된 것만 같았다. 이상과 결과물의 광활한 간극이 매일 누적되어 나를 점진적으로 서럽게 만들었다. 그런 불만족은 학습 단계에서는 누구나 겪는 것임을 알지만 내가 만인의 위로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치울 수 없었다. 이런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면 괜찮지 하고 다독일 때 '이런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티스토리 스킨을 갈아치울 때, 엉성하고 이상한 결과물을 보면서 혼자 낄낄댔지만 지금은 이런 촌스러운 이미지마저 내 신임을 깎아먹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나를 조롱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 끈질기게 생각하는 편이다. 해결책과 더불어 고민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방향으로 염려하는가? 나도 몰랐던 비참함의 정서가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도피하면 안되는 일정들이 그동안 회피해왔던 체념과 자괴감을 건드렸다.
구상해왔던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이것저것 했지만, 죄다 실패했었다. 잘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니까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쓸모 없지 않았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그땐 몰랐었으니 이제라도 배우면 되는 거다. 그러니 슬퍼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고를 마무리한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사색형 내향인이라는 성격 특성 상 선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그치지 못했다. 잘 모르면서 왜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무작정 도전했을까? 왜 또 괜히 떠벌리고 다녀서 망할줄 알았던 사례로 기억되게 했을까? 대체 이 낮은 수준으로 꿈을 실현할 날이 오기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은 점점 뻗어나가서 '왜 나는, 왜 그때, 왜…'가 되었다.
기세등등해진 비참함은 또다른 실패 경험을 기억 저 아래에서 발굴하여 데리고 날아다녔다. 결국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아이디어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만들기만 하면 알아줄 거라고(설득력이 부족해 전해지지 않은 거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 말이 맞았던 게 아닐까 하고…. 왜냐면 세상에 이런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토록 부족한 나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꿈이 수치스러워진 이 상황을 손 쓸 도리가 없는 무거운 현실로 규정했다. 차근차근 하다보면 성장하니까, 이렇게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건 잘 알았지만, 당장의 초라함을 견디는 방법은 잘 몰랐다.
이제와서는 제대로 답변할 수 있다. 너는 왜 안했던 거야? 비참해서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무능하지 않다는 걸 누구에게든, 내 자신에게도 증명할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물론 최선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참하면 손을 놓는 모양이다. 나는 게으르면 울적한 것이므로 숨을 돌리면서 원인을 고찰해야 한다. 그리고 비참함은 매일 작은 성취감이나 진척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같다. 



▼ 찌질찌질 고뇌했던, 학습 세션 1 기간 동안 반복해서 했던, 쓰잘데기 없는 고뇌 맛보기   

원인: 
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런 퀄리티의 과제글을 세상에 내놓기 부끄럽다, 이래갖고 취업하겠냐, 잘하는 게 있긴 한걸까, 다들 한심하게 볼 거 같다, 나 너무 나대는 것 같은데 좀 자중해야 할 거 같다, 집중력이 부족한 거 같은데 ADHD면 어떡하지, 어른스럽지 못하다 등 


결과: 하 나 이따군가… 왜 글이 바로 안읽히지 왜 오늘 배운 게 파박 하고 느낌이 안오지 → 아니야 난 그래도 나름 주관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어. 브런치에 대중유행으로써 MBTI 장단점과 영향에 대한 글을 쓰자 → 안돼 뭘 쓰려고 했었는지 떠올려야 해서 최소 몇 시간은 작성에 매달려야 되는데다가 옛날에 기록했던 것도 찾아봐야 돼! 지금 중요한 건 오늘치 학습을 하는 거야 → 과제 부담스럽다… 뭘 어떻게 하란 거지… 또 저렴한 수준으로 완성해낼 게 뻔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과제를 보고 한심하게 여길 것 같아서 두렵다… → 아니야 난 그렇게 심각한 사람이 아니다 그 증거로 예전에 하려고 했던 1인+친환경+자동화+저비용 홈 솔루션을 고안해보자 → 빨리빨리 생각이 안나… 난 바보인가? → 생각 안날 수밖에 없는 게 이건 사전정보도 적어서 더 오래 걸리고, 지금 당장 시급한 사안도 아니야. 애초에 지금 학습과정을 제대로 익혀야 앞으로 이 분야를 잘할 수 있어 → 위클리 과제 어떡하지… 뭘 하란 말이지… 저런 고난이도를 이런 멍청한 내가 해도 되나… 하지만 위클리 과제 안하고 넘어가면 현직 멘토분께 피드백 받을 귀중한 기회를 날리는 건데 왜 혼자 괜히 겁 먹어서 포기하고 싶어하지? → 아니야 난 멍청하지 않아 성인이라 뇌 성장이 완성되었을테니 할 수 있어 자신감을 얻기 위해 제작년 여름에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궁극적 형태에 대한 예측을 브런치에 써보자 → 거의 다 까먹어서 오히려 좌절감이 느껴져 나이를 먹을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다… → 아니야 멍청하다는 표현을 아무리 자책에 한정했다고 해도 비난의 의미로 쓰는 건 도덕적으로 좋지 않아 멍청함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다면 그런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실수하지 않았더라도 한심하게 볼 수 있고 더 나아가면 자만과 오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 스스로를 멍청하지 않다고 평가를 바꿔 내리게 되어도 은연 중에 남을 무시하게 되어있어 실제로 자기확신 높고 오만한 사람들 대부분은 저런 인지적 오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야 이런 오류를 가지지 말자 사람을 비난할 때는 그 원인을 도덕적인 것에 한정지어도 모자람 없고 그 규칙은 나에게도 독같이 적용되어야 해 → 하지만 이상에 비해 현실이 너무 구려… 1년 반 이상 지났으니 자세한 내용은 까먹는 게 당연한 거라면 난 왜 진작에 생각을 기록해두지 않았지? 왜 항상 그런거지? 기록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구는 것 같아. 





데일리 과제가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



위 챕터에서 내린 결론에 대해 감정을 위주로 덧붙이겠다.

매일매일 엉터리 글을 양산하는데서 느낄 필요없는 죄책감까지 느꼈다. 앞으로 지식 정보글을 통합하여 완벽한 형태로 설명해주는 빅데이터 서비스가 나올텐데 그것이 내 블로그를 크롤링하는 동안 혼선을 겪을 것 같아서. 사람한테는 더욱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 뭐 어떻게 봐야할지 한 눈에 가닥이 안잡힌다는 점에서부터 단순한 인사이트를 부풀려 작성하는 사람들(특정 누구 말하는 게 아님)한테도 이미 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분석글이란 무릇 정확하고 상세하고 진솔해야 하므로 오래 고민한 흔적일랑 담겨야 맞지. 허나 내 과제에는 눅진눅진한 사유가 있는듯 없는듯 하니 있는말 없는말 붙여가며 쥐어짜낸 것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그리하여 숙고와 조언으로 차츰 개선해나갔다. 그 상세한 방법은 목록화하여 다른 글에 서술하겠다. 


내 딴에는 노력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과제를 완성하고 나면 그런대로 뿌듯해졌다. 드디어 똥글 생산자에서 과제 생산자로 전직한 것 같았다. 솔직히 보세요, W2 과제와 W6 과제를 비교하면 양식 사용부터가 다르다는 게 딱 보이지 않습니까?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지 않나요? 루브릭도 더 잘지키고 과제에서 요구하는 바를 더 잘 파악하고 근거도 더 제대로 붙인다. 나는 발전하는 존재다.


과제가 두렵지 않아져서 덜 회피하고 더 몰입했으니 평균 퀄리티가 비교적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제 더이상 데일리 과제가 부담스럽지 않다. 나도 나름 쓰는 놈이다 이제는. 







힘들 때는 왜 하고 싶었는지를 상기하자


아무도 나한테 못한다고 꾸짖지 않았다. 부트캠프 특성 상 호되게 일갈하며 자신감을 추락시키지 않고, 오히려 각자 시작점이 다르니 의기소침하지 말고 정진만을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기대가 높았던 탓이다. 이것만은 잘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또 기대하고 말았나보다. 난 언제나 순하고 둔한 사람이었는데. 

재능이 없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이 왜 나를 괴롭혔냐면 개인적 세계관 때문이다. 사회기능론자인지 천직론자 사명론자 호명 개념을 신봉하는건지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각자 타고난 천성에 따라 적절한 역할을 하면서 분업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 천직이 따로 있다면, 성취도나 만족감 따위에 한계를 느끼면서 반대로 PM이 천직인 누구 대신에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천직을 선택한 사람들로만 사회가 구성되어있다면 노동을 같은 값으로 투입하고도 더 높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고, 세상은 더 빨리 발전하면서도 개개인이 만족스럽게 삶을 구성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나는 내가 구상했던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없고 적성에 안맞다면 열망만 가지고 삽질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다른 일로 돈을 벌어 프리랜서를 고용하여 대리 제작을 맡겨야 하는가? 다른 아이템이 떠오를 때마다 그래야 하는건가? 지금 생각해보니 영 말이 안되는 고민이긴 한데, 당시에는 스스로의 자질을 물어뜯고 비평하는 것에 정신이 쏠려있었다. 그 바람에 뗌빵난 자존감을 복구시키는데 인지자원을 쏟아야 했고, 느리게 메꾸는 구멍 사이로 의욕이 줄줄 흘렀다. 


4주차에 벌써, 남들보다 일찍 번아웃이 온 건 이런 이유 때문인 거 같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로 결정했다. 고작 8주밖에 안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날려먹으면 나중에 더한 자괴감에 시달려야 하니까, 빨리 정신을 차리는 게 옳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PM이 되기에 적절한 인간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 다음은 왜 PM(서비스 기획자)이 되고 싶었는지를 떠올렸다. 왜 나는 여기까지 와서 그 힘겹고 오래 걸린다는 부트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는가? 왜 간절하게 합격을 바랐는가? 적성에 안맞는다고 판단하면 그만둘건가?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꿀 것인가? 당연히 아니고말고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것 아닌가! 왜냐면 강렬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부트캠프를 신청하기까지 과정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 시스템, 플랫폼에 열광함
- 나도 그런 걸 만들며 살고 싶음
- 특히 개인적으로 구상했던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했고 실패했음
-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됨.
-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자랑스러운 자녀이자 반듯한 젊은이 
- 아랫 세대가 기댈 수 있는 멋진 어른 
- it 전문성을 가진 민주주의 활동가 
- 믿음직한 시민사회 구성원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은혜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자유      



또한, PM이 된 이후를 상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조건을 지금 고민해봤자 뭐하는가? 나는 이미 부트캠프에 입단했고, 여기까지 돌아왔는데. 적성에 안맞다면 왜 그런지를 파악하고 성격과 가치관을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봤자 학습 의욕을 고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결과를 그리는데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다. 애시당초 지금 고민해봤자 정확한건 알 수 없다. 실제로 몇 년 일해보고 나서 직무 전환을 할지말지를 결정해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간단한 상상을 해보았다.   


사람들한테 노래 틀어주면서 나 사실 프로덕트 매니저가 아니고 플레이리스트 마스터라고 농담하기 (이거 정말… 흥분된다) 

“니 그거 그 p… 뭐라꼬? 뭔 직업이라캤노?” 
“아 pm이요” 
“그기 뭐꼬? 뭐하는 긴데?” 
“아 카톡 같은 거 있자나요 그런 어플 어떻게 만들지 기획하고 운영하는 대충 뭐 그런 사람이에요~” 

알아서 자기 꿈을 찾아갔단 점을 고평가 받으며 윗세대분들에게 반듯한 젊은이 취급받기 

직업활동에 성취감을 느끼며 운명에 감사하기

이전 직장에 연락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도움이 될만한 사이트를 기획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하며 자문과 협력을 구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미안함과 찝찝함을 해소하기 

숙원사업을 해치워서 승리감을 만끽하기 



플레이리스트 마스터가 된 가까운 미래의 나. 



그리고 만약 외로운 도시 서울에 홀로 살게 된다면, 
외로운 밤 매쾌한 먼지를 도려내는 울적한 야광등 아래 별 하나 없는 야경을 바라보며

서울이 얼마나 쓸쓸한 곳인지를 주제로 해서 작사 해야지. 

재밌겠다. 하하하핳!!!






내가 의외로 PM에 잘 맞을 거 같은 이유



앞 챕터에서 내가 PM 직무에 맞는지를 계속 점검했다고 밝혔다. 나의 어떤 점이 PM에 사맞디 아니하였고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는 제쳐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잘할 수도 있을 거 같은지를 서술하겠다. 



첫째, 인간 개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

당신과 잘 지내려면 내가 어떻게 맞춰줘야 하는지, 다시 말해 당신은 공략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다닐 정도다. 사람들 개개의 성향과 사용법을 세분화해서 그에 맞춰 대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기질을 파악하여 양육해야 하듯이 말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에, 당신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며 살아왔다. 내가 성격 유형 모델도 좋아하는 건 타인을 이해하여 무해한 사람으로 비춰지고자 하는 야망이 있어서다. 

(맞춰준다고 해서 내 개성이 옅어질 거란 염려는 하지 않는다. 난 좀 동그래질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성향은 패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영역도, 영감도, 미학도 세상의 어느 영역도 분석의 잣대는 피해갈 수 없다. 인간의 성향이 왜 세분화 가능하냐고? 별로 대단한 논리는 없다. 아래와 같은 직관을 가지고 그렇게 믿고 있는 거다.   

인류의 생존전략: 사회성과 우호성으로 협동해서 다같이 살아남음 - 즉, 개체 다양성은 유전자 보존을 위한 것 

그렇긴 하지만 사회 적응이 힘든 돌연변이 분명 있었을 것. 지금보다 자원 풍족하지 않고 무지하여 편견이 풍부했던 과거에는 도태되며 스펙트럼 넓이가 조정되지 않았을까? (바이러스나 전쟁 따위로 인구 수가 조절되는 것처럼….)

인류의 시초는 그 수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애초에 주어진 수가 적은데 그걸 조합해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엄청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일평생 사회화를 거쳐야 한다. 독특한 부분은 깎여나갔을 것. 특히 파레토의 법칙처럼, 형제 중 맏이면 보다 의젓한 것처럼, 타인의 선택에 영향 받으며 자신의 성향과 행동 패턴 등을 수정할 것이다. 

성향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그 스펙트럼은 불명확하고 연속적이다. 



둘째로, 의외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 대부분은 그냥 성향 차이거나 아직 미성숙해서라고 생각하고, 보통은 구태여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내가 악의가 없는 사람이거든. 만약 악의로 행동했다 하더라도 원초적인 아픔이나 수용되지 않은 욕구가 잔존해있어서 그런 것이 대부분일 거다.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 중에는, 상처를 받았거나(자기 보호)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건드려졌거나(협상하면 될 문제), 내 집단을 싸고 도는 것의 부작용으로 외부 집단을 배척하게 되어서(테러집단의 작동원리 중 하나)도 있다. 사람은 모두 성정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나밖에 모르게 태어났으므로 자라면서 타인의 시점을 알아가며 중용을 배운다. 그러니 어리석으면 지혜를 배우면 된다. 구체적인 근거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학습한 후에 말해야 할듯 싶다. 


물론 내 일이면 아무래도 감정이 끼겠지만 타인끼리 갈등에서 중재하는 것은 아마도 잘하는 거 같다. 아마도 잘할 것이다. 적당히 공감능력이 있으면서 왜 저럴지 고민하며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려 들기 때문이다. 내 일이어도 마찬가지로 왜 그렇게까지 나와 너는 했을까 하고 계속 고민하는 편이다. 


어차피 이렇게 찰나와 같이 가벼운 우리네 생에서 일순간 잘못한 게 뭐 그리 큰 일이겠는가. 3차원에 사는 우리는 회귀하지 못하고 일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에 갇혀있어서 오히려 대부분의 잘못에 있어 면죄부를 받는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니까 뭔 일 생기면 당연히 충격 먹겠지. 그래도 저 가치관에는 웬만한 사건에는 타인을 오래토록 진지하게 미워하지 않게 하는 내성 효과가 달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속 좁은 사람들에게 기피감을 느끼는 편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 인연을 쉽게 내치는 사람, 타인을 금방 미워하는 사람, 편견으로 판단하면서 자신의 주관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 등. 저런 성향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는 건 안다. 복수심이 강렬한 사람이 잇어서 외부 집단의 침략에 대응하며 우리 집단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고, 낮은 우호성과 외향성은 자원이 적은 상황에서는 소수 인원을 건강한 상태로 남게 해주고, 편견은 때때로 예리한 촉으로 변해 신변을 지켜주며, 위협에 빠르게 반응하여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알겠는데 내 유전자랑은 전략이 달라도 너무도 다르다. 특히 복수심에 미쳤는데 주관이 고장난 사람한테 걸리면 심각해진다. 





셋째, 그럭저럭 담대하다. 

내성적인 기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심하게 소심하지는 않다. 

대체로 과묵하지만, 해야 할 말은 상사든 교수든 상대가 누구든 어느정도 하면서 살았던 거 같다. 

발표도 떨지 않고 곧잘 한다. 물론 유창한 사람은 아니라 큰 자리에 가면 떨 수도 있지만, 그럴 땐 실수할까봐 걱정하는 것이기에 준비를 탄탄히 하면 오히려 자신있게 떠들 것이니 괜찮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갈등도 피하지 않으며 살았다. 피하는 법을 몰랐기도 했다. 지금은 어른스럽게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내 나이를 견주어보니 더이상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추태를 부리면 안된다는 걸 느꼈다. 

부드럽고 무해한 사람이 되어야지!! 원래도 그랬지만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무해하면서도 관대하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넷째, 자타공인 물음표 살인마 

물음표 살인마란 지겨울 정도로 질문을 쏟아부어 상대를 지치게 하는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사람이 가진 통찰과 경험은 꽤나 자주 유용하다. 사람책이라고 하지 않던가. 알때까지 파낸다! 죽기 싫으면 순순히 알려주시지! 



다섯째, 전체적으로 잘 흘러가는 지에 관심을 가짐

앞전에 패턴이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난 시점을 넓게 바라보는 편이다. 그 결과 중 하나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잘 조직되고 배치되어 공통의 과업을 잘 수행하는지 때때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 다른 사람과 함께 하려는 것이다.  



여섯째, 이것저것 하는 거 괜찮아, 좋아해. 

법을 조사하고 카피라이팅을 짜고 회의록을 쓰는 등 여러가지 중요하지만 성과로는 잘 안쳐주는 업무를 솔선수범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해외 pm 대상 아티클에서 읽었다. 같은 일만 쭉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것저것 할 수 있으니 활력소가 되어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법을 조사하는 일, 회의록을 써서 정리하는 일, 카피라이팅을 짜는 일 등 대부분의 기획 사무는 이전의 직장경험과 전공 교육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제일 중요한 일곱번째 이유, 개선점을 찾아내려는 사고 습관이다. 

일상에서 느낀 불편함이나 사회문제를 서비스로 풀어낸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자주 생각한다.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느낀 불편함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IT 서비스 말고도 최근에 본 영화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어떻게 보충했으면 좋았을지 등도 생각한다. 사고의 결과가 대단히 영특하지는 않긴 해도 개선을 퍽 신경쓴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거다. 내가 회복 탄력성이 높은 이유는 힘든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를 꾸준히 생각하고(사색형 내향인),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요청하기(물음표 살인마)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나는 PM 직무에 걸맞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pick me pick me pick me up hurry up





아무래도 만들고 싶어서



난… 난 꿈이 있어요. 내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내가 이런 놈이니까 신실히 믿지는 마시고
나보다는 내 꿈을 믿어보십시오. 아니 이거 진짜 이 세상에 필요하다니까?!

나에게 이 꿈은 무엇인가?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자, 살아있음을 뜻되게 하는 사명이다. 이것은 내가 설정한 인생의 과업이다. 가능하다면 청년 시절의 과업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청년 시절에 이루고 나면 다음 시기에는 다른 꿈을 더 꿀 수 있다. 아직 후 단계의 꿈은 없기 때문에 이 단계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꿈을 이룬 직후에 생에 미련을 놓겠다는 건 아니고, 꿈을 이루고 나서 돌연사 한다고 해도 대충 납득은 해주겠다는 뜻이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아득바득 살아남아서 이것저것 규탄하고 아무거나 증명하고 말테야. 

거창해보이지? 원래 거창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솔직히 현실적으로 어렵고, 나조차 날 못믿으니, 꿈을 이룬다는 것의 기준선을 적당히 타협했다.
완벽한 성공에서 → 아이디어를 완성하고, 내가 제안했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정도로 최하 기준선을 수정했다. 뭐 물론 실제로 구현해서 수정을 거듭하여 압도적인 기능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심지어 동종 계열 서비스를 우후죽순 출시하여 시리즈화까지 완료한데다가 세계적으로 소개되어 비슷한 서비스가 현지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 내 망상 속에서는 이미 진실된 일이지만 세상은 나의 욕망만을 위해 굴러가는 게 아니므로….

노인 되어서 지금 나를 탓하는 건 슬플 거 같으니까 말이다. 까딱하면 병 걸려서 죽는 연약한 인간 목숨, 기껏 열심히 잡아서 오래오래 살아남기까지 했는데, 제대로 못살았다고 과거를 미워하다니. 왜 더 열심히 못살았니? 정녕 이 정도니? 고민한 게 뭐가 되니? 이런 식으로 상상 속의 어르신이 막 꾸중하시는데 이쯤 되니 억울하다. 살아남게 해줬으면 됐지 왜 연속된 나의 순간들을 원망하고 그러는가. 하지만 나라면 이상에게 철처히 배신 당했다고 느꼈을 때 나 자체에게 화살을 돌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올까봐 미리 미래의 나에게 협상을 걸었다. 이 정도만 해도 용서해달라고. 최소한 '아이디어 기획서'를 완성하고 발표하는 것 정도는 사이드 프로젝트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양측 다 만족했다. 따라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미워하지 않을 예정이다. 








꿈은 장애물이 아니다



내 꿈이 나를 좀먹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원서를 넣는 회사는 나에게서 미완결된 꿈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너는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우리 일까지 진심으로 할 수 있겠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저는 관심사가 다양하거든요."
또 이렇게 의심할 것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만 열심히 하고 본업에는 집중 안하는 거 아니야?"
그럼 나는 뾰루퉁해져서 투덜댄다. "그런 멋대가리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사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불행을 차근차근 개선하면서 다같이 잘사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상당한 불행이 개선되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분업사회에서는, 우리 각자가 하는 노력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니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흐름에 올라타고 싶다.

회사의 비전과 신념을 뼛속 깊이 공감하는 인재가 내가 될 수 있다.


문제를 옳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서 문명이 발전한다는 명제에 열광한다. 어떤 허울 좋은 비전이든, 저 명제만 충족한다면 들끓는 가슴으로 합류할 수 있으니 오히려 충성스러운 직원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어쩌고저쩌고 플랫폼은 내가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흐름'에 관한 아이디어이지, 무조건 이걸로 먹고 살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이 미미하고도 자명한 차이를 낯선 면접관들이 어떻게 알아주게 할 수 있을까.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분명하게 있으면 취업은 꿈꾸면 안되는 걸까?  


분수를 알아요: 꿈과 일이 양립하지 못할 거라고 다들 착각하실텐데 솔직히 이 나이 먹고도 자기 분수를 모른다고 편견을 가져주시면 억울하다.

노력이 가상한걸 아니까: 인생 헛살지 않았다. 경영진들이 회사를 이끌기 위해 (특히 중소기업일 수록) 얼마나 열심히하는지를 배웠고, 별 생각 없이 사용했던 서비스들이 하나하나 손을 얼마나 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밥은 먹어야 해서: 최소한 내 한 몸은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밥벌이 공동체에 포함시켜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꿈이 소중한걸 아니까: 상식적으로 내꿈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남의 꿈을 함부로 하겠는가? 그것도 여러 명이 뭉쳐서 꾸는 비전을?

곧 내 꿈: 회사의 비전을 내 꿈으로 삼으면 된다. (신념형 인간이므로)

성장할 기회: 많이 배우고 겪어봐야 내 걸 완성도 높게 잘하는 기반이 된다. 일을 많이 맡아보고, 능숙해지기까지 하려면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태도임을 잘 알고 있다. 어찌 당당하게 나태할 쏘냐!





사고체계(?)의 비효율성



무슨 생각을 주로 하고 사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생각을 안하는 것 같은 사람도 어디에 뇌 기능을 집중해서 쓰는지 따라가 보면 된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샤워할 때, 잠들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는 매일 밤 수필을 쓴다. 이 글을 썼다가 저 글을 썼다가 한다. 정독해줄 한 명 이상의 독자를 가정하며 민감한 표현을 삭제한다. 유머를 섞어 문장을 가공한다. 이렇게 쓴 글이 머릿속 브런치 계정에는 한 150개 정도 쌓여있다.
이래봤자 죄다 까먹어서 말짱도루묵이다. 열심히 쓴 걸작들은 내 정신과 함께 까무룩 잠든다. 그렇다고 잠에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펜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고체계(?)가 이렇듯 비효율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고 살 순 없을까? 상상이 팽팽 돌아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스스로에게 상상이라는 선물을 주는 것으로 욕망을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니 엄청난 거 아님? 머릿속에서 나 아닌 것들을 움직여서 연속극을 만드는 게 별로 힘겹지 않다니 놀랍다. 머릿속에서 세상이 움직인다는 게 진짜 천재 아니냐? 난 어릴 때도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다음에 '난 절대 그렇게 안해야지, 대신 이렇게 해주는 게 좋겠어'로 이어졌단 말이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현실과 비슷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서 연습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겠지. R=VD 하는데도 유리하다고 하던데….

궁금한 문제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사람들도 부럽다. 난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할 힘이 있었지만,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어려워질 수록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 내가 해결하지 못한 고난이도 문제가 내 정신머리 뒤편에 숱하게 쌓여있다. 인간은 악한가 선한가, 어린 시절에 고민했던 이 질문은 내 나름의 답을 도출했지만 지성체에게 에로스 본능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이상적인가, 어른이 되어 궁금해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손도 대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다. 그럼 해야 하는 일을 총망라하여 로드맵이라도 짜면 좋을텐데. 어찌하여 내 정신머리는 이다지도 비효율적이란 말인가!



기억도 마찬가지다. 진짜 필요한 건 기억 못하면서 쓸데없는 건 비상하게 기억한다. 예를 들어보자. 파이썬과 자바 스크립트의 기초적인 문법을 공부했었지만, 기억나는 걸 말해보라고 하면 버벅일 것이다. 비슷한 걸 보여주거나 힌트를 주면 그제서야 아 맞다, 혹시 그, 이러면서 몇 개 던질 것이다. 근데 누이가 몇 년 전에 신나게 추천한 작품이나, 친구가 했던 친구의 친구 이야기는 희한하게도 술술 말한다. 이거 저번에 추천해줬던 거 아니야? 뭐뭐하는 내용 맞지? 너 저번에도 그 얘기 했었어, 그때 그건 어떻게 되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근데 이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친구들이 재학하는 학교 이름과 생일을 유년기까지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아무도 서운하다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나 혼자 내가 너무 무심한 거 같아서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고 기억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후로 나는 '굳이 그런 거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에게 내 나름 애정을 보이는 방법 중 하나다.



사람을 짝사랑하는 나….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별 쓸데없는 걸 기억하는 티를 내더라도, 그게 어렵지 않아서 흘려보내지 않았다고 이해해주십시오.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아무도 안 궁금해하고 회고라는 글 주제와 맞지도 않을텐데 갑자기 나열하는 내 장점! (오만함 주의)

사회문제를 찾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고심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성격적 특징 (지금은 휴식 중 당연함 부트캠프 진행 중)
- 공동체 의식이 높음 
- 넓은 이해심과 깊은 동정심 
-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의식적인 노력
- 정의로운 가치관

낭비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점

똑똑한 버섯처럼 생긴 점
- 잘생김이 묻었음      

끗. 




나만의 강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보자.   

내 필요에 의해 만든 노션 강의노트 양식과 그렇게 설정한 이유 설명글

마무리 회고

아이디어와 큰그림 → 안되겄지만 차근차근 정리는 해보자. 

이것저것 목록화해서 가지고 있기 → 이런거 어차피 좋아하니까 차츰 해보자.


또 뭐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이건 다 뻥튀기고 나의 진정한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흐느적 댄스다.
흐느적~ 흐느적~ 흐느적 댄스~ 

나는 흐물흐물 행성에서 온 흐물흐물 성인이다. 











회고라는 주제에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내밀한 엉터리 말이 쏟아낸 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내 매력이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은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수고하셨다. 

                  

                    


코드스테이츠 PMB 16기

부트캠프 회고록 

PM, 서비스 기획자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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