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체계를 달리 구상해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과거 어린 시절, 그러니까 중학생 때
나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진 성별 체계를 혁신해보려고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놀랍게도 지구 모든 생물의 성별이 여자 아니면 남자더라고.
물론 자웅동체나 무성생식 등 암수가 번식한다고는 딱 잡아 떼기 어려운 개념이 있긴 하고,
또 성별이라는 게 번식을 위해 가장 단순화된 기본 원리니까 거기서 모든 생물체의 분화가 시작된 게 당연하긴 하겠지.
이해는 간다만, 그래도 다른 규칙이 있었으면 하더랬다.
복잡한 성기와 장기를 단순화했을 때
암컷은 오목하고 수컷은 볼록해서 그 둘이 교합했을 때 생식이 이루어지는 원리다.
도대체 누가 생각한건지, 아주 단순한 원리로도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새로운 성별 체계를 생각해내려면, 다시 말해
제3의 성별이 있거나 1개의 성별만으로 기능하게 하거나
남녀를 떠난 새로운 성별만으로 구성된 무언가거나 하려면
우선 간단한 원리부터 출발해야 했다.
오목한 것이 볼록한 것을 삼키는(이해하기 쉽게 말해서 볼록한 것을 오목한 부분에 넣는)
그것과는 차별되면서도 색다른 원리 없을까?
아무거나 생각하고선 우길 순 없었다!
우선은 다양한 생물종이 각기 다른 형태로 변형할 수 있어야 했다. 단세포종부터 고등생물까지 싸그리 가능해야 한단 말이다.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안된다. 아주 단순해야 한다.
지금의 성별 원리와 닮아서는 또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유성생식을 해야 종족 보존에 유리하니 최소 둘이 교배를 해야 하는데, 차이점을 두자고 셋 이상이 교합하게 하는 방식은 선택되지 못한 유전자가 많이 생기니까 낭비고, 또 멸종 위기 시에 개체 수가 빠르게 감소하기 딱 좋은 방법이고, 이를 어쩐담.
그래서 나는…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다.
원리는 생각해내지 못했으면서 새로운 원리를 갖춘 제 3의 성별이 갑자기 지구 상에 등장했다는 설정으로 새로운 성별의 이름을 지었다.
수자, 남자와도 여자와도 자기들끼리도 교배할 수 있다. 남자의 ㄴ과 여자의 ㅇ, 둘 중 어느 자음에도 치우친 느낌이 없으면서 동떨어진 자음을 찾아야 했다. 모음 또한 남자의 ㅏ와 여자의 ㅕ,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아예 아래로 향하는 ㅜ를 택하고 발음 편리를 위해 받침을 뺐다. 성별의 이름은 자주 쓰이는 기본 단어기 때문에 짓는데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느낌 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부르기 쉽고 어딘가 정감가고 익숙한 이름이 필요했다. 이름부터가 낯설고 거리감 느껴지면 새로운 꼴림을 가져다 줘야 하는 3의 성별이 배척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이상성욕 포르노스타로부터 출발해야 하니까. 어차피 성욕 특성 상 수자의 존재가 모두에게 파트너 대상이 된다는 것을 나중에 가선 공식적으로 용인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이전까지 차별 받느냐 문제가 있기 떼문에. 아니 근데 이미 여자와 남자 두 개의 성별이 있는데 굳이긴 하다. 이렇게 되면 자기들끼리도 교합할 수 있는 수자가 제일 최고의 성별 아닌가. 나머지 비효율적인 성별, 특히 불임개체인 남자부터 씨가 마를 것이다. 아니 근데 수자끼리 있으면 임신은 어떻게 해? 무슨 생각이었어 중학생 때의 나?
그때 노트에 끄적인 게 있었는데 애들이 교탁에 들고 가서 비웃었다. 아마 선생님도 비웃었던 거 같은데.
나는 생각했다. 그거 니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메모가 아니야. 난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구. 물론 결과물은 형편없었지만 말이다. 마치 어느날 장기가 없는 슬라임 과연 생존에 문제 없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슬라임의 내부 구조를 상상해보려고 했지만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빠른 실패를 거쳤던 것처럼.
그나마 열쇠고리처럼 서로 같은 모양을 빙글 돌려 교환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개체를 상상해보았다. 간단한지를 모르겠다. 몸에 이상은 없나. 너무 위험성 크지 않나. 원래 돌출된 장기가 다른 곳에 들어가는 건 괜찮은데 내장된 장기가 들어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기본 돌출, 내장 여부와 관련해서 개체마다의 다양성을 줄 수 없지 않을까? 그리고 교환하고 나면 어쩔건데? 태아는 누구 몸에서 자라는데? 위험한 환경에선 체내생식을 해야하니 체외생식은 우선 제외하고, 생각해보니 둘다 임신해도 될텐데, 그렇다면 임신 기간 동안 천적으로부터 보호는 어떻게 하는데? 생물종마다 다르겠지만 짝을 이루는 종은 수컷이 임신한 짝에게 먹이 갖다주고 돌봐주고 그러지 않던가? 대신 임신의 부담을 줄여서 태내에서 작게 덜 완성된 상태로 태어난다면? 근데 이러면 체내생식 후에 체외생식을 해야 하니 알을 낳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만약 한쪽이 불임이라면? 임신확률이 있어서 서로 결과가 다르다면?
이 방식은 어떤 자웅동체 종 하나의 원리만 가능할 것 같다. 이 번식 방법을 택하고 있는 생물종은 성별이 1개이며 1:1로 번식을 한다. 교합 후에는 양쪽 다 임신할 수 있는데, 각 태아에 모체의 기여도가 6~70%에 달한다. 적응이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어서 임신이 안될 수도, 태아 상태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운 좋게 양쪽 다 건강하게 낳더라도 신생아 상태에서 탈락하기 일쑤다. 만약 멀쩡하게 버틴다면 부모가 캥거루처럼 자기 안에 싸고돌며 키운다. 즉 성인 개체로 성장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많이(한쌍이 다) 낳는 것이다. 휴. 적으면 적을수록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들통나기만 한다.
그리고 진짜로 굳이다. 이런 생물종이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출아법을 응용한다면?
죽은 이에게서 30%를 떼어 내 것 세포 70%을 넣어 분화시킨다면?
여러 산 자들이 죽은 이를 조금씩 떼어서 자기 것과 합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은 이의 시체는 사라진다. 또는 죽은 게 아니라 늙은 세포를 번식용으로 활용해서 다시 어려진다면? 그럼 죽음이 따로 없는 게 될 수 있는데 번식이 의미가 있나.
응용 가능해야 하는데. 게다가 세포는 고체인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번식하려면 죽여야 한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유일한 번식 방법이어선 안된다.
어차피 잘 생각해보니 이 방법도 많은 자원을 투자한 세포와 조금 투자하는 세포에서 유지될 뿐이라 암수 번식과 똑같은 합성 방식이다. 생식 세포 단계에선 똑같다.
섹스 방식만 좀 다르겠지. 중요한 건 어떻게 다르냐인데 모르겠어!
대체 왜 이런 것도 생각 못하는 걸까.
내 지능에 대해 실망하게 된 첫 순간(처음이 아닐 수도, 나중 가서 회상하며 실망했을 수도)인 걸로 대충 기억한다. 아무튼 실망하는 요소인 건 확실하다. 다들 이런 안건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 나보다 쉽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생각해낼까봐 두려워서 남들에게 꺼내보지도 못한 얘기다. 혼자 품어온 작은 고찰거리.
딱 한명, 이런 상상은 도저히 안할 것 같은 사람한테 얘기한 적 있었다.
그 사람 반응은 이랬다: 생각한들 실제로 구현할 수 있어?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해? 너 진짜 4차원이다. 특이한 생각을 하네.
구현을 못하겠지. 애시당초 할 필요 없다. 다만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이 당연하고 단순한 원리를 뒤집을 방법을. 뒤집을 무언가를. 먼 우주에는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종족의 순리를.
ㅋㅋ 아무튼 이성과 성애에 대한 관심을 이런 식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난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집착하고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되려 내가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남자들은 이틀에 한번씩 자위한다며…?
원나잇 해본 사람 은근히 많다며…?
진짜야? 또 나만 모르는 세계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