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100가지 소소한 방법 #1
프로젝트 이름이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100가지 소소한 방법'인데 너무 길다.
앞으로는 대충 '사소한 효도 100가지'로 축약해서 부르겠다.
그 첫번째를,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아니 그냥 당연한 걸로 실천했다.
알아서 끼니 챙기고 미리 설거지 해놓기.
그래도 나름 발전한 거고 어머니도 좋아해주셨다. 진짜다.
분개하지 말고 우선 내 변명을 들어보시라.
나는 독립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작년까지는 바깥을 계속 들락날락거리다가 올해 이제 방구석에 콕 박혀있다. 일단 이런 전제를 두고.
원래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아하셨다. 내가 고등학생 때, 정확히는 언니가 고3일 때에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청소기랑 걸레질(우리 집은 매일 저녁, 집안 곳곳에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걸레질한다)을 도맡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설거지도 이때쯤 배웠던 거 같다. 내가 좀 착해진 거 같아서 뿌듯했었다. 내가 고3이 되었을 때는 언니가 도맡아했었다. 대학생이 되고서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와서, 가출도 하고 친구랑 놀다가 새벽 4시에 귀가도 해보고 그러느라고 좀 내팽겨쳤다. 이것만 들으면 완전 양아치인데 그래도 가끔 나서서 청소, 설거지 정도는 했다. 가끔 착륙하는 비행 청년 정도는 되었던 거다.
나는 종종 어머니께, 설거지 제가 할게용~! 이러고 아양을 부리지만 칼같이 차단하신다. 내가 하는 게 미덥지 않다는 이유여서다. 니가 나서면 일이 더 생긴다고, 제발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면서. 이해한다. 나는 귀엽게도 이런 분야에 요령 없고 서툴다. 설거지를 하면 꼭 바닥에 물바다를 만든다. 정말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나의 어떤 방심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는지 나도 정말 알고 싶다.
뿐만 아니라 대충 5분 돌리면 되겠지 생각하고 전자레인지 사용했다가 연기난 적도 있다. 둔감해서 부엌에 탄내가 진동을 하는데 눈치를 못채고 방에서 어머니가 출두하게 만들기도 한다. 김치찌개를 데펴먹으려다가 행주 끝부분을 두 번 태워먹기도 했다. 내가 끓인 라면을 먹은 동생이 작은 누나는 어떻게 이런 걸 계속 먹었냐고(나를 가엽게 여긴 동생이 종종 라면을 끓여주게 됨) 질색하고, 어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처음 마셨던 내가 믹스커피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었냐고(알고 보니 내가 물을 항상 정량보다 많이 넣었음) 화색했다.
자랑이냐고요? 아니요. 하지만 귀엽게도 서투른 걸 어찌합니까?
아마도 내가 뻔뻔한 게 맞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물바다를 만들고 나면 나는, 걸레로 적당히 닦으면 된다고, 남은 물기는 가만 놔두면 증발해서 피부에 촉촉하게 스며들 거라고 주장했다. 찹찹찹 밞으면서 싱잉 인 더 레인~이라도 부르면 되지 않겠냐고? 근데 과거에 결벽증이었을 정도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어머니가 듣기에는 그냥도 아니고 슈퍼 스트롱 헛소리였나보다. 그래도 나 진짜 그릇은 완벽하게 씻었다고 보장한다. 그걸로는 반박을 들은 적은 없다. 단지 요령이 없어 물을 많이 쓰고, 주변을 흠뻑 적시고, 시간을 오래 잡아먹었을 뿐이다.
사실 기분은 안 나빴지만 납득을 할 순 없었다. 누구한테라도 맡기면 훨씬 편하지 않나? 나는 편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간에 분담하거나 아예 떠맡겨버리는 양아치다. 직접 하는 것보다는 옆에 붙어서서 이래라저래라 나불대는 게 덜 지친다. 나라면 신데렐라 부리듯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갈굴텐데!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신 모양이다. 답답하게 처리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을 바에는 본인이 다 해치우는 축에 속한다. 언니가 그런 점을 물려받았다. 이 둘이 상사면 부하들은 편하겠다.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편하게 있던 것 아니겠는가? 언니와 어머니가 가정 내 상사로써 전반적인 가사노동을 처리하였기 때문에 나는 게으른 노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여기에 뻔뻔함까지 더해지다보니 나름 장난 아니었는데, 내 사소한 취미가 한 집 아래 두 명의 밥줘충(가사분담은 하지도 않으면서 강압적으로 보살펴주라고 명령하는 성인 가족구성원을 비하적으로 이르는 멸칭)은 공존할 수 없으니 니 밥은 니가 알아서 챙겨먹으라고 동생을 갈구는 것이었다. 아니 근데 이 말은 맞다. 가사노동 무임승차자가 많으면 운전자가 고생한다. 일단 나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가만히 있는 게 도움되는 집안일 트러블 메이커'라고 인정한 사람이고 동생은 나를 인정한 사람 중 한 명이니 말이다. 이 말은 즉 동생은 어머니의 잠재적 우군이고, 한다면 하는 애란 거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집을 비우실 때는 내가 아닌 동생한테 몇가지 당부를 하고 간다. 갈군 보람이 있어서 내 끼니도 자주 신경써준다. 나는 편해서 좋았다.
그럼에도 바뀌려고 하는 건 양심과 세월이 경고하기 때문이다. 이래가 혼자 살겠나? 어머니 혼자 독립해서 노후 보내는 게 꿈이라 하시고 언니도 서울이나 해외 가고싶다 하고 동생 집에 얹혀살 수도 없고. 그럼 결혼이 먼저 떠오르는 답인데 무급 가정부 해달라고 청혼하기는 사회적으로 조금 그렇지 않나? 가정주부만 조건이면 누군가 얻을 수는 있을텐데 나는 더 심각하다. 벌이가 시원찮은걸 감안하고서도 하나부터 여덟까지 챙겨줘야 한단 말이다. 이런 조건으로 결혼해줄 사람이 있긴 한가가 문제다. (하지만 모집하고 있다. 관심있는 분 연락해주시면....) 독신 혹은 동성커플끼리 일정부분 개인 공간을 두고 모여 사는 주거형태가 나중에 생길지도 모른다고 망상하고 있다. 그런 곳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집안일을 분담해 맡는 능력은 보여줘야 한다.
다양한 집안일에 해보겠다며 나서봤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불안해하셨다. 다림질을 하면 태워먹고 불낼 거 같다고, 화장실 바닥 닦는 걸 시키면 너무 빡빡 닦아서 미끄러지게 할 것 같다고, 뭐 대충 그런 이유들로. 사실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가르쳐주는 대신 익숙한 행동 루틴을 선택하셨다. 선단 공포증이 약간 있어서 과일 깎는 건 해보겠다고 말도 안꺼내봤다.
이런 점으로 인하여 세탁기, 빨래, 요리 등 대부분의 집안일을 제외하고 청소만이 내게 배당되었다. 아, 옷이나 수건 개는 걸 도와드리기도 한다. 근데 아직 빳빳하게 잘 못 개서 양말 전담해서 갠다. 양말은 완전 천재 수준으로 잘 정리한다.
하여간에 용감하게 얘기를 꺼내도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처음은 서툴더라도 하다보면 늘텐데 영 나의 가능성을 못 믿으신다. 그럼 답은 그거다. 결과물만 보여주자. 어머니 오시기 전에 미리 해놓으면 오실 때쯤은 바닥이 말라있을 거다. 일찍 시작해서 물기를 제대로 닦아놓는 것이 관건이다.
끼니에 관해서는 어머니가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서 같이 신경 쓰기로 했다. 피곤하게 일하고 와서 가족들 밥 먹는 것까지 신경써야 되냐고~ 작년에는 내가 나돌아다니고 어머니가 집에 계셨다. 그때는 해주시는대로 황송해하며 넙죽넙죽 낼름낼름 받아먹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일하시고 내가 집에 콕 박혀있으므로 개선해야 한다. '뭐 먹고 싶냐, 만약 시킬거면 미리 주문해라, 최소한 정해놓기라도 해라, 필요하면 재료를 빨리 사와야지' 이렇게 가족 구성원들을 갈구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자주 이렇게 알아서 챙기니까 어머니 짐이 덜었다.
당연. 원래 성인이니까 알아서들 먹어야 됨. 요리도.
근데 나까지는 챙겨줬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어머니는 좋아하셨던 거 같다. 가끔 바닥을 제대로 안닦았을 때는 거슬려하셨지만 열에 일고여덟은 불평하지 않으셨으니까 이번 작전은 성공이다. 당연함. 효의 근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