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도전기 #1
0. 집단지성을 꿈꾸기까지
제일 먼저 이 주제로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떠한 연유로 나는 집단지성 플랫폼을 만드려 하는가? 내가 만드려는 집단지성 플랫폼이 어떤건지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일단 tmi 좀 잔뜩 뿌려보겠다.
1. 어린 시절에 받은 메세지와 영웅의 꿈
내 이름은 몇 안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음은 흔하지만 뜻이 정말 멋져서 좋아한다.
물처럼 세상을 영화롭게 하라.
상선약수의 정신을 담은 이름이다.
물은 아래로 흘러서 가장 낮은 곳을 풍요롭게 한다. 생명을 이롭게 하고 자연과 어울리며, 융통성이 있다.
나는 여기서 낮고 천한 곳까지 이른다는 부분을 유독 깊이 새겼다. 독실한 대승불교 신자인 어머니와 큰이모께서 바르게 자라서 중생을 위하라는 당부를 자주 하셨기 때문이다. 이 두 분은 내가 스님하면 잘할 거 같다고 출가하길 바라셨다. 기도를 통해 세상의 평화를 빌고 신자에게 위안을 주는 스님도 상당히 이타적인 직업이라며.
스님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조금 더 와닿고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위하고 싶었다. 그래서 들은 체도 안했다. 아니지, 들은 체는 했는데 부모가 바라는 장래는 고작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속이 썩은 나는 속썩이는데에 재능이 있었다. 헤헤
이름 뜻이나 어른들의 당부만 동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영웅처럼 사는 게 제일 멋진 삶 같았다. 공주, 부자, 천재 등 여러가지 멋진 역할 중에 영웅이 가장 칭찬 받으니까.
유치원생 때는 다들 그렇듯이 공주가 되고 싶었다. 나는 커서 여자스타들처럼 제일 예쁜 공주님이 되어야 할까…. 자학발언은 아니고 그냥 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엔 적성이 맞지 않았다. 사람마다 적합한 직업이나 역할이 다르므로 공주 역할은 나한테 적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보고 못생겼다고 말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귀엽다는 말을 귓구녕에 달고 살았다. 그냥 어린 시절부터 자기 객관화를 그럭저럭 잘했다.
철이 쬐금 들었을 적에는 천만장자가 되고 싶었다. 필요한 자질이나 재능은 모른다. 그저 용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모았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이 너는 커서 돈을 잘 모으겠다고 대견해했다. 부자가 될 가망이 있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한테 박수 받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대부분은 동경하면서 멋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런데 저기 가난한 사람들이나 내 경쟁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 욕심쟁이, 독선주의자, 자린고비 같은 별명들은 이런 사회에서 부자가 되면 꼬리표처럼 달라붙을 것이다. 금융이나 대량생산법칙 따위는 전혀 몰랐으므로(지금도 깊게 알지 못한다) 가난이 존재하는 건 부자들이 빈자들의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한정된 재화를 노오력으로 많이 꺾어간 거니까 범법은 아닌데 그렇다고 존경받을만한 업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난이 수치가 아니듯이.
천재가 된다면 어떨까?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천재였으면 좋겠다고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공부를 깊게 파서 척척박사님이 된다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서 답답할 일도 없을 거다! 그러나 어린 내 생각에는 대단한 지성을 뽐내고 박수 받는 것은 스님만큼 간접적인 직업으로 느껴졌다. 학문의 중요성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부자는 되고 싶은데, 천재도 되고 싶은데! 그럼 내가 부자가 되어서 왕창 기부를 하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구하면 어떨까? 중요한건 천재냐 부자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모로 가도 사회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웅이다.
그래서 내 꿈은 쭈욱 영웅이었다.
얼마나 뜨거운 단어야. 굉장히 멋있어.
2. 정치인
중학교 1학년 때는 장래희망이 정치인이었다. 나라를 좋게 만드려면 당연히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내 적성에 안맞을 거 같았다. 소방관은 일단 몸 쓰는 일에 타고나야 할 거 같고, 사회복지사는 사람들한테 사근사근 구는 재능이 있어야 할 거고. 반면 정치인은 어떤 비전을 제시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거니까 그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던 진로 중에선 그나마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내 꿈을 알게 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야 소심한 네가 할 수 있겠어?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상처받진 않았다. 다만 수치스러웠다. 내가 가진 단점이 공공연하게 노출이 되어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단 점이.
난 내 소심한 성격을 인지하고 있었고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직업인 것도 알았다. 다만 어른이 되면 이래저래 성장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조소에 대응하지 못했다. 믿음에 뚜렷한 근거가 없었고 대체할 화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볼꼴못볼꼴 다 봐야 하고, 돈이 많아야 하고, 사람을 잘 다룰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 비전만을 밀고 갈 수 없고 계속 조율해야 한다. 사람들이 내 말을 따라줄까? 게다가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도 감수해야 한단다. 어린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였다. 적성에 맞는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3. 비법서
정치인이 비전을 강력 주장하면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직업이라면 비전을 만들고 정돈하는 직업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나는 세상 모든 면에 완벽한 이상이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경우의 수와 세세한 디테일, 커다란 흐름에 정통하면 최선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걸 알아내서 책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모든 사회문제의 빈틈없는 대안이 적혀있고, 절대 망하지 않는 이상적인 국가 제도가 소개되어 있으며,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 도덕적 정답이 즐비한 비법서가 있으면 멋지겠다. 사람들이 참고하여 현실에 적용시키면 극락낙원이 될 것이다!
마침 이런 부분에 가망이 있었다. 운동, 공예 이런 거 다 못하는데 탐구하고 기획하고 창조하는 부분은 그나마 할줄 알았다. 재능은 몰라도 일단 적성은 이런 쪽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어릴 때부터 사색형 인간이었고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할 때도 사색형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 후로 계속 고민했다.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어리석고 사악한 나와 너에게 올바른 도덕을 강요할 수 있을까?
사회문제는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파면 팔수록 골치가 아팠다. 골똘히 생각해도 답이 안나왔다.
괜찮다. 원래 사람이 자랄 수록 머리가 굵어지고 배울수록 이해력도 높아지고 그러는 거잖아?
어른 되면 척척박사님이겠지! 노인 쯤 되면 비법서 제작해서 극락을 만들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 수줍게 신선을 꿈꿨다. 열심히 성찰하고 지혜를 보강하고 도덕의 극치를 쌓으면, 게다가 미래 과학 기술로 질병에 굴하지 않게 되면 신선 비스무리한 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굵어진 지금도 '신선' 이미지를 멋있게 생각한다.
4. 윤리와 사상
차근차근 하나씩 정복해나가자. 복잡하고 가변적인 사회문제보다 우선은 근본이 되는 질서, 원리, 진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근본 원리 위에 사회의 구체적인 면면이 작동할테니까. 학생 입장에서 사회구조나 사회문제를 제대로 알기엔 한계가 있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반박당하지 않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도덕적 딜레마 마저도 양측의 입장을 완벽하게 조율하여 정답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마침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윤리와 사상을 가르쳐주었다. 선각자들이 일궈온 사상이 귀에 잘 들어왔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기존에 나온 여러가지 사상을 수집해서 비교해보고 생각의 폭 자체를 넓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현학적인 표현만 쓴다고 지적했으며 종종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또는 말도 안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때도 많았다. 내가 이대로 철학과에 가도 괜찮겠지만, 아리까리한 항목 앞에서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다양한 입장들이 마치 말장난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철학이 실제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철학은 스님처럼 등대가 되어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고통을 달래주지만 형이상학 특징 상 직접적으로 해결해주진 못한다. 그즈음 유교 실학 사상이 멋져보였다. 나름 자기 가치관을 정립했으니까 이제 관심의 방점을 옮길 때가 아닌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아직 어린 내가 이대로 철학만 선호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조금만 관심을 돌려도 금방 까먹는다는 단점이 있었으므로 사회적인 부분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이 글은 2023년, 2022년에 작성하고 미완성 상태로 묵혀둔 글이다.
두 편으로 나누어서 일단 완성된 부분까지만 올린다.
원래 집단지성 도전기 매거진에 넣으려고 했는데~
일단 4차원 매거진 안에 넣어둔다.
난 정말 이렇게 꿈으로 가득찬 놈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