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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Feb 25. 2023

우에엥 부처에몽~~~~~!

내 종교적 가치관 1


인생이 허망하고, 부질없고, 두려워서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 



사이비 아니다!! 딱 박고 간다.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나마 모태불교인데 나 자체가 독실한 신자는 아니다. 그냥 불교 세계관을 좀 믿고, 좀 영향 받은 정도? 신천지 등의 사이비는 극도로 혐오한다. 교주를 위해 착취하는 구조에 갇힌 가여운 신도들을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그리고 20대 초반의 나는 사이비의 주요 사냥 대상이었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어떤 언어가 정확한가? 

사전에서는 종교를 '초월적 절대자에게 기대어 행복을 얻으려는 태도'라고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니고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라고 하면 맞다. 플러스로 종교와 관련된 생각과 가치관, 의견, 경험, 대충 그런 것.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진리와 내 신앙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내 믿음과 다르게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믿는다. 불가지론이란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는 이론이다. 초월적인 신과 종교적인 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주관에 갇혀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한낱 인간 따위가 (심지어 걔중 똑똑한 개체도 아닌 나는 더더욱) 직시할 수 있을리 없는데, 알게 뭐냐? 나는 인생의 한계가 주는 공포를 달래려고 온갖 종교적인 망상을 내 세계관으로 승인했을 뿐이다. 주관을 가질 수 있는 단일 개체로서 당당하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리와 내 가치관을 짧게 비교하자면 이렇다. 

진리: 지금으로는 불가지론 

내 종교적인 신념: 환생, 인간적 한계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을 뿐 사실 시간은 동시에 존재, 평행우주, 세상이 가진 총체적인 운명적 흐름 등 



걍 아래 글은 생각난대로 쓰는 것이다. 완벽한 흐름 그런 거는 ..




서론 요약: 절대 난 사이비 아님. 이 글에서 말하는 종교적 신념이란 세계에 관한 망상이거나 종교랑 관련된 생각이란 거임. 







①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부제: 우에엥 부처에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고전 문학책에서 신앙과 관련한 흥미로운 부분이 나와서 언급하고 싶다. 먼저 이 고전책에 대해 얘기하자면 바람둥이 토마시, 고통받는 아내 테레자, 자유를 추구하는 사비나, 잘살다가 중년 되어 탈선하는 프란츠, 이 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는 소설이다. 


아무튼 그 흥미로운 부분이 뭐냐면 자기표현을 어떤 대상에게 하느냐에 관한 분류다. 내 생각과 경험을 누구한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많은 사람한테 얘기하는 자: 작중 인물로는 예시를 들 수 없던 걸로 기억한다. (애니어그램 하위유형 이론으로는 SO인 사회적 본능 개념과 비슷한듯)

친밀하고 소중한 타인한테 얘기하는 자: 작중에서는 놀랍게도 토마시랑 테레자 둘다 해당한다. (애니어그램 하위유형 이론으로는 SX인 친밀 본능 개념과 비슷한듯)

속으로 숭배하는 대상에게 고해 바치는 자: 프란츠는 전 연인 사비나를 여신으로 숭배하며 기도를 올린다.


사실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고전 중에서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다 읽지도 않았고 깊게 파지도 않아서, 다음에 구매하여 정독할 생각이다. 내 친구 하나가 이 책에 대하여 소감을 나누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내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해보겠다. 인생을 무겁게 사는 프란츠는 자기와 전혀 다른 사비나를 빛과 자유의 여신 쯤으로 취급하며 우상화한다. 여자친구와는 별도로 두면서 사비나에게 속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전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정말로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죄를 저질렀고 어떻게 반성하는지 따위를. 


프란츠는 여러모로 나와 비슷한 인물이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 취향, 가치관 따위가 유사하다. 과거(유년기부터 20대 초중반까지)의 나는 진심을 부처님에게 올렸다. 

'이건 부처님이 내려주신 계시일 거야. 어떤 깨달음이 내포해있겠지.' 

'저는 언제 이런 구질구질한 환경을 탈출할 수 있나요?' 

'이 일은 혹시 저한테 주는 경고입니까?' 

'저를 성공하게 해준다면 그 덕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 구제를 원하시므로 윈윈 아닙니까?' 


왜 부처님이냐?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가 아니고 모태불교인 내가 진리 그 자체인 초월자를 상상할 때 갖다붙이기 제일 좋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비전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나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중생을 살펴보는데 특히 불교 집안인 사람들은 더 유의깊게 지켜본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보였던 (주변 아이들에 비하여 비교적) 철학적인 본성 때문에 스님 유망주였던 나는 자연스레 부처님에게 일방적 텔레파시를 전송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사고의 습관을 멈추었다. 이유는 많다. 근거없는 망상이라고 남들이 비웃을 걸 상상하니 낯부끄러워서, 예전보다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무엇보다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이건 정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인간들은 각자 주관과 역사, 행동 반경 등을 가진 독자적인 개체이다. 이들은 전부 무겁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라 우열을 가릴 수 없이 근본적으로 모두 평등하다(사람을 어려워하는 성향에는 이런 가치관 영향도 있는듯). 내가 상상한 부처님은 인간 출신 치고는 완벽한 진리와 닮아있어 꽤 존경할만한 대상이다. 그런 존재가 나를 편애한다니 모순이 따로 없다. 그걸 어렴풋이 느꼈기에 '착하게 살테니 복을 내려달라'고 딜을 자주 걸었지만… '진인사대천명',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그럼 유년기 시절의 나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오로지 내게 부처님이 귀기울여 주실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지? 아마 하나의 불만에서 출발한 것 같다. 나는 왜 힘들까? 그리고…. 

'왜 나는 남들보다 불운을 타고 났을까.' 

권선징악 법칙에 의하면 내가 겪는 고통은 내가 지은 죄와 동일한 값이어야 했다. 그러나 얼마 살지 않았으면서 성격이 유약해서 툭하면 눈물이나 짓는 어린양이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큰 죄였겠는가? 

그런 점에서 부처님은 내게 빚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초월자라면, 가엾고 영특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퍽 기특하지 않을까 망상했던 것도 같다. 

작은 죄업까지 경계하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치는데,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구업, 살생 같은 죄들이 받은 고통만큼 큰 죄라면 뼛 속 깊이 반성해보겠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나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 같다. 어린 내 시선에는 또래 중에서 나만큼 죄를 피해 조심조심 살아가는 이는 없었으나 모두 다른 죄값을 달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무거운. 



요약: 부처님한테 텔레파시 많이 보냈었음. 







② 불교 세계관은 도덕적인가




모든 이에게 복을 고루고루 내려주고, 권선징악 법칙을 공고히 하는 게 부처님이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는현실은 영 그렇지 못한 분했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 내가 보는 세상이 그래보였다. 


사람들은 나쁜 사람을 애써 무시하려고 이런 말로 위안을 찾았다. 가만 놔두면 알아서 돌려받으니 신경쓰지 말아라. 괜히 신경쓰면 너만 힘들다. 

어릴 적에는 이렇게 따지고 들었다(표현이 그런거지 따진 게 아니고 물어봄). 그게 확실해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아예 신경을 끄면 벌을 받는지 아닌지 모를테고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계속 잘 사는 나쁜 놈은 충분히 많잖습니까. 

심지어는 정당방위 보호법이 없어서 나쁜 사람에게 눈눈이이로 대하면 오롯이 죄로 쌓인다고 한다. 험담만 해도 구업이라는 죄를 짓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환생 사상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번 생에 돌려받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 죄값을 돌려받는단다. 이번 생에 지은 죄와 행한 선이 다음 생에 벌과 복으로 돌아오는 일이 제일 흔하다.  

그렇다면 불행한 사람들은 죄인들인가? 그들을 돕는 것은 죄값을 치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행위이며 어떤 피해자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인가? 약자는 죄인이다.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는 죄인이므로 다음 생에 약자가 된다. 약자는 약하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알거나 남을 괴롭힐 힘이 없어서 죄를 많이 짓지 않는다. 갚아야 할 죄가 적은 약자는 다음 생에는 약하지 않게 태어난다. 그러나, 인연법으로 인해 약자가 된 가해자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 고통을 주고 받아야 하는가? 순리가 이래도 되나? 

신이랄게 믿을 게 못되기 때문에 사악한 개체를 인간사회가 직접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왜 뜻대로 안되지? 법조인이란, 권력자란, 위정자들이란 철두철미한 사명을 가지고 업을 행해야 함이 자명할진대 왜 그릇된 행동을 하는가? 왜 저런 욕심쟁이 악당이 지배자 위치에 앉게 두는가? 민중은 흉계를 어떻게 간파하고 어떻게 의인을 선별하여 어떻게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거지? 이런 문제들은 내게는 너무 어려웠고 원통했다. (추가적으로 궁금한 것. 감옥에 가거나 용서를 받는 건 죄값을 받은 걸로 치나? 지옥에서 받을 벌을 계산하거나 어떤 위치로 환생할지 판단할 때 영향을 주나?)


중죄를 지은 사람은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지 행복한 돼지가 될지 선택할 권한이나 있는데 동물은 그저 살아가게 된다. 운이 나쁘면 최후에는 누구의 양분도 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몇몇 사람들은 가지고 태어난 자원의 한계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빈자를 혐오하는 발언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 가지고 태어난 자원이 물고 태어난 수저도 있지만 여기서는 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성향에는 장단점이 있어서, 초자아가 정권을 잡아 자책으로 고통받음과 동시에 죄는 덜 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윤동주 - 참회록), 그 반대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교정되지 못했거나, 순간의 판단이라는 가혹한 시험에 낙제했거나, 갖은 고초로 노상하여 자신의 허물을 돌아볼 여유가 없거나. 

이렇듯 죄를 짓게끔 부정적으로 세팅해놓고 벌을 준다니 너무하지 않나,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아주 악인이 아니라면 형편좋은 멍멍이와 형편없는 인간은 어떤 차이로 그렇게 설정되었는가?) 



그래도 이런 세계관을 많이 믿었다. 동물은 뉘우침을 못하기에 복을 짓지 못하고 계속 동물로 환생할 수 밖에 없어서, 우연히 특별한 의행을 하지 않는 이상 인간의 몸을 받기 힘들다길래,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있었다. 같은 얘기를 듣고 자라도 영향을 안받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에 관해선 1을 들으면 10까지 믿고 의심했다. 과연 스님 유망주다운 이유가 있었다. 


'저 착하고 힘든 사람들이 죄를 갚는 중이라면 덩달아 힘든 나와 그들은 서로를 미워해야 하는가?'

'나보다 힘든 사람 많을텐데 왜 나는 고작 이런 일로 힘들어할까.' 

'나라고 과연 옳기만 할까?'

무엇에서든 부정적인 가능성을 읽어내는 정신적 본성, 유년기에 가장 힘들다는 운명적 특징, 미숙한 언행, 사춘기 호르몬의 콜라보로 나름 힘들어했다. 그래서 부처님한테 편지도 많이 썼고. 

(정신적 특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인간실격이라는 고전문학의 주인공 오바 요조처럼 내향적 직관성과 신경증적 경향성이 발달하여 부정적 사고에 쉽게 발목 잡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본성이 같다는 이유로 어리석고 부정적인 오바 요조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불교가 싫다는 게 아니고? 불교 좋아해? 사실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기에는 내가 잘몰라? 

그냥 어릴 때 들은 얘기와 어릴 때 한 생각을 나열했을 뿐임. 지금은 이렇게까지 생각안함. 




요지: 악을 징벌하는 것도 자비를 행하는 것도 여러모로 부족. 







③ 여러분, 여러분이시여.




여기서부터는 힘빠져서 대충 씀…. 



나는 본디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부처님한테 이제 우편 안보낸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생각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사람을 곁에 두게 된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에세이를 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잘 다듬어서 이곳저곳에 내놓을 예정이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까지 꼭! 갑자기 죽지만 않는다면 할 수 있다. 원래는 노년기에 자서전을 출판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바뀌었고 언제든 준비되면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왜 꼭 그래야 하냐고? 내가 관종 성향을 조금쯤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청자를 중시하기 때문이 크다. 


청자를 중시하는 이유 첫번째는 공공연한 정보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단절되기 싫어서다. 


주관은 축복이자 저주다. 인간은 주관에 갇혔다는 한계가 있어 진리에 접근하기 힘들다. 즉 우리가 갖는 가치관과 사고는 거의 주관적이라는 거다. 진리는 총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주관보다는 객관이 진리와 닮아있다. 

남들이 알아주면 내 생각과 경험이 객관적이 되어서 정답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원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민주주의충이긴 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그저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아집과 오만에 갇히지 않고 보다 진실하게 외부 세계를 관측하려면 다른 주체에 접촉하는 게 선행 단계다. 그렇다면 뭐겠어? 나와 내 주관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거 아냐? 남한테 인정받는다는 게 동의를 얻어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존재를 알리는 것, 인식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게다가 나는 민주주의 신봉자이므로!!! 


무거운 존재들, 내가 주체라고 부르는 타인들, 나보다 더욱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나를 알아준다면 나는 나에게 갇히지 않고 저멀리 퍼질 수 있다. 내 안에 고이는 것은 생명력이 적다. 한 명이 잊으면 바로 휘발되고, 죽으면 초기화된다. 온갖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을 중시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이 심리가 존재의 근본 원리고 인간들이 서로 소통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행동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고 가장 흔한 것이 소통이다. 나는 사색형 내향인이니까 '내 생각'을 퍼뜨리는 것으로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외로움…, 고독감….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인연이란 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외로움을 배웠다. 

내가 가진 것들이 오래 갈 것 같지만 세상일에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당분간 안정적으로 단절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많은 변수를 제치고 일정 기간 동안은 보장할 수 있을까?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한테 인연이란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시기, 젊고 건강한 시기에나 좀 있지 나중에 노인네 되었을 때는 안 붙을까봐 겁난단 말이다.  

그렇다면? 자녀를 입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 나한테 보호받을 수밖에 없으니 성인이 되기까지 20년 정도는 함께 할 수 있다. 아, 인류가 이래서 자손을 가지는구나. 자손을 갖는 이유 중에 하나구나 이게. 


누군가는 천생연분을 믿겠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이번 생에 배당받지 못한 복일 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또다른 미신적 사고! 사람마다 복을 다르게 타고 났다고 생각하기.)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보호하기에는 영 미덥지 못한 사람이라 자신이 없고…. 

주된 매력이 찐따미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더는데 쓰기가 애매하고….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난 귀엽게도 찐따미가 뛰어나고 dweeb미까지 갖춘 사람이라 알랑알랑 굴지 못하는데 다른 귀여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도 귀염성이 있다는걸 증명할 수 있을까? 어떤 점으로 인해서 다들 반경 5KM 너머에만 있을까? 

에잉... 인터넷 방송 해야지!! 사실 내 꿈은 스피커였다. ㅋㅋ루삥뽕





요약: 생각을 말하고 다닐 것임. 안 그러면 쓸쓸하니깐…. 






다음 글에는 가상현실 체험이 보편화되는 미래를 왜 기대하는지와 

유년기에 가진 불교 세계관에 대한 의문을 어떻게 나름대로 답을 내렸는지 

사람들이 종교적 세계관을 믿는 이유는 뭔지  

그리고 내가 가진 다른 미신적? 종교적? 주술적? 사고는 뭐가 있는지 적겠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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