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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May 19. 2021

무착륙 관광비행 (aka.면세비행)

탄소중립 선언한 정부. 현실은 그 반대.

코로나 시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많은 이들이 침체된 경제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 복잡한 경제 및 사회 구조 속에 마법 같은 해답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시기에 정부 차원에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거라 짐작은 합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경제 부흥의 대안책으로 내놓은 한 결정에 강한 의문과 반발심이 들어 글의 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 결정은 2020년 11월 있었던 제5차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 겸 제2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면세점 쇼핑 목적 비행기 운영 1년 허용"한 것입니다. 무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뉴딜 관련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기에 더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도를 넘을 대로 넘어 면세 구매를 하면 항공권을 주는 마케팅을 한다. 항공권이 있어 면세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착륙 관광비행은 코로나 발발 이후 이미 국내선에 한해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대만 항공사에서 시작된 이 운영방식의 인기를 목격한 제주항공, 에어부산 그리고 아시아나는 인천을 출발해 국내 상공을 돌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 편을 2020년 10월부터 운영했습니다. 정부가 면세점 쇼핑 목적 비행기 운영을 허용했다는 것은, 국제선 또한 관광비행에 도입 가능하도록 하여 면세 소비를 유도하는 목적이 크게 추가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면세 소비로 매출을 늘려 보려는 항공사들이 인천 외 다른 공항에서도 무착륙 비행을 확대 운영했고, 항공편의 횟수도 더불어 늘렸습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납득이 안 가는 이 부적절한 항공편 운영에 날개를 또 하나 달아 준 것이 정부의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이유를 종합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조종자 자격 유지

두 번째, 유지비 및 주기료를 고려했을 때 운항을 하는 것이 이득

세 번째, 항공과 관광, 면세 업계 지원

첫 번째 이유에 설명을 더하자면, 항공안전법은 조종사들이 자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90일 안에 해당 기종의 이착륙을 각각 3회 이상 경험을 의무화합니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초대형 항공기 에어버스 A380을 6대 보유하고 있고, 이 항공기 조종사가 143명인데, A380의 시뮬레이터를 보유하지 않아 조종사의 자격 유지를 위해서는 빈 항공편이라도 운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토부에 이 기간을 늘릴 것을 요청하였고 시뮬레이터를 보유한 대한항공에 협조도 요청하였지만 (2020년 4월 기준, 출처: 한겨레), 국제기준을 변경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는 빈 항공기라도 띄워야 한다는 답변을, 대한항공은 소속 조종사들 훈련도 감당하기 벅차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2020년 6월에는 국토부가 90일이라는 기간을 210일로 한시 연장하였고 (출처: 연합뉴스*), 대한항공 또한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되면서 올해 초부터 아시아나 소속 조종사들을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착륙 비행이 늘고 있다는 것은, 정부에서 언급한 초반의 이유들이 무색하게 비행의 주요 목적이 면세 쇼핑이 되었고, 항공사들 또한 면세 구매에서 오는 이득만을 점점 노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배출되는 탄소량에서 비롯되는 추후의 환경문제보다 총이익이 훨씬 더 크기를 바랍니다. 눈 앞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면세 비행을 허용한 국가는 초래하는 결과를 어떻게 만회하려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이상하게 210일로 연장된 것은 기사화가 많이 되지 않았네요.

대충 봐도 다른 항공기보다 훨씬 더 큰 대한항공 소속 A380 항공기

유독 에어버스 A380을 이야기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하늘 위 호텔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초대형 항공기를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인데요, 프랑스 국영항공인 에어프랑스는 (에어버스가 프랑스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까지 A380을 처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09대를 보유한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어 24대로 두번 째로 가장 많은 A380을 보유한 싱가포르 에어라인도 A380의 퇴출을 선언하며, 초대형 항공기의 수를 줄인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럼, 대한항공(10대 보유)이 아시아나(6대 보유)를 인수하면서 우리나라가 조만간 세계에서 두 번째로 A380을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부피에 따라 늘어나는 운영비 및 연료비, 탄소세가 부여되기 시작하면 감수해야 할 경제적 부담, 항공기 여행을 지양하는 트렌드*에 따라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A380 운영을 줄이려는 것이 국제적인 항공사의 추세이고, 제조회사인 에어버스조차도 A380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투자 대비 성과가 부실하기 때문이겠지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합치면 총 380여 명의 A380 조종사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인데, 이 분들의 자격을 유지하도록 돕는 주먹구구식 해결책이 진정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을 남깁니다.


*Flygscam (플뤼그스캄) : 스웨덴어신조어. 항공기를 탈 때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환경공해로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의미. (출처: 나무위키)


정부가 언급한 두 번째 이유는, 비운항 시 유지비와 주기료를 (차로 따지면 주차료) 따졌을 때, 운항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인데요. 무게와 부피에 따라 측정되는 주기료만 보아도, 초대형 항공기 A380의 경우 한대 당 하루 25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경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착륙료, 조명료, 시설이용료 등등이 주기적인 고정비용으로 나가니 항공사의 고충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지만 여전히 이득 계산을 할 때 환경적인 요소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조만간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탄소세가 고려대상이었다면, 아직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비행운(비행할 때 발생하는 구름)이 미치는 온실효과를 수치화할 수 있었다면,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서 동반되어야 하는 서비스들이 (예를 들면, 공항까지 가는 교통) 모두 제대로 경비에 측정되었다면, 항공기를 운영하는 것이 보다 이득이라는 단순한 계산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항공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적인 이슈는 다음 글에서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에 대해 얘기하며,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반론이 있다기보다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된 것입니다. "항공과 관광, 면세사업" 지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필수"적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 곳들이 많은 한국사회입니다. 재난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코로나로 인해 더 감소하였고 (출처: 파이낸셜리더스), 코로나로 더욱 깊어졌을 사회취약계층의 고충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항공, 면세사업의 큰 파이는 재벌가에서 차지하고 있지요. 국영항공인 대한항공도 한진기업 소속이니 참 불공평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결국, 면세비행을 정부에서 권장하는 것은 특권층 강화하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관광사업을 지원할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진정 무착륙 비행인가요?

미국의 유명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에 뜬 포스트 "무착륙 비행에 대한 생각 - 도대체 왜왜왜 하는 거죠?"

글을 마무리하며, 해외에서 무착륙 비행을 보는 시각이 어떤지 살짝 공유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면서 50개가 넘는 국내 기사들을 읽었는데, 한겨레 기사 (링크: 무착륙 관광비행 탄소배출 논란… 목적지는 기후위기?)를 제외하고는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무착륙 비행에서 오는 이점만을 언급하고 있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래 레딧 사용자는, "돈 낭비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국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바보짓을 하는 것이고, 불필요하게 환경에 해롭다."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항공인증샷으로 다른 사람들을 인플루언싱하여 동일한 사진을 찍게 만드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도 국내 항공산업이 포화상태였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던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국내에 운영되고 있는 항공사, 항공기도 관리하기 힘들어 보이는 정부. 이런 와중에도 올해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킨 정부는 진짜 할말하않입니다.


더 읽을거리 :

뉴스1 : "한 번 띄우니 1200만원"…'목적지 없는 비행' 항공사별 실적 살펴보니

파이낸셜 뉴스 : 무착륙 국제선 관광비행객 1만명 넘었다

WIRED UK : The real reason Airbus is retiring its A380 superjumbo jet

BBC 뉴스 : Why did the Airbus A380 fail?

Fortune : Flights to nowhere: The psychology behind the COVID-era travel concept

중앙일보 기사 : 항공기 1대 주차비 2900만원···코로나 올스톱, 예상 밖 돈폭탄

한겨레 기사 : [가덕도 신공항 논란] 비행기·자동차 온실가스 배출량 따져봤다


메인사진 출처 : 연합/코리안헤럴드 기사 [From the scene] Getting on a ‘flight to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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