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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Jul 07. 2021

책갈피 : 자본주의의 미래 (새로운 불안에 맞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원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6명의 가족이 살기에는 꽤나 작은 집이었다. 30평이 채 안되었으려나. 학교 마치기가 무섭게 따로 약속이랄 거 없이 아파트 앞 잔디밭에 동네 친구들이 모두 모여 공놀이나 땅따먹기 등을 하고 아버지 퇴근시간에 맞추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엄마가 준비한 (성역할을 나누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당시 내 추억일 뿐) 푸짐한 저녁을 다 같이 먹으며 시끌벅적한 저녁을 보내고는, 각 방이 없던 우리는 한 방에 모여 같이 잠을 잤다. 이웃집들과 맛있는 것을 하면 나눠먹고, 이웃집 부모님이 약속이 있다 하면 그 집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 먹고 같이 공부도 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하루하루 있었다.

출처 : 7 Quotes by Famous Authors That Will Make You Reminisce Your Childhood - Penguin Random House


20년이 훌쩍 지나고, 지금의 나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부동산 가치나 몇 평에 살았는지를 떠올리며 불우해할까? 아니다. 나무에 오르고, 아파트 앞의 살구를 같이 따먹고, 동백 씨를 줍거나, 등나무 뒤에 작은 아지트를 만들어 비를 피하던 그때가 나에게는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반 그룹을 나누거나, 주공아파트 사는 친구들에게 별명을 붙인다는 현실이 꽤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유모차 브랜드, 명품 가방의 유무, 또 그 속에서도 명품의 급에 따라 개인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슬픈 현실이다.


30년 남짓 살았지만, 벌써 유년기의 추억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유독 급격히 변하는 한국의 도시들은, 더 이상 내 추억이 진득이 묻어있는 공간이 없어 참 아쉽다. 점점 많은 도시들이 특색 없이 닮아간다.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메트로폴리스들이 닮아가고 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랜차이즈를 들여오는 것이 성공의 열쇠처럼 보이고, 꽤 이름이 알려진 프랜차이즈 몇 가지 정도 들여와야 겨우 "도시"라는 이름을 붙일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도시라고 다를 것이 없다. 2011년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 한국에서는 안 가기가 더 힘든 스타벅스가 손에 꼽았지만, 2019년 기준으로 175 지점으로 늘었다. 벨기에에는 맥도널드 같은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가 자리 잡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최근 들어 그 수요가 무섭게 늘었다. 내가 사는 곳의 지역 카페, 식당들이 큰 위기를 느끼고 지역에 유치를 하지 못하도록 데모를 하는 중이다. 에피소드식으로 얘기를 하자면 입이 아프도록 (아니, 손가락이 아프도록) 할 말이 많다. 이 많은 변화들이 "자본주의"라는 개념 안에서 얘기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이유로 폴 콜리어의 책, "자본주의의 미래"를 의미 있게 읽었고 공유하고 싶어 졌다.


영국 개발 경제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폴 콜리어는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던 자본주의 허점들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고, 윤리를 기반으로 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래의 소개글은 핵심을 잘 간파한 한겨레 책 리뷰에서 가져온 부분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3가지 균열의 비극


폴 콜리어가 주목하는 자본주의의 실패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괴리의 심화다. 여기에는 부의 격차와 이에 따른 사회심리적 불안까지 포괄된다. 번창하는 대도시와 망가진 지방도시 사이의 지리적 분단, 초고소득층에 이르는 고학력자와 교육받지 못해 지속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 사이의 새로운 계급 분단, 세계 무역에서의 승자와 뒤처진 자 사이의 분단으로, 콜리어는 범주화한다.


북미 지역과 유럽, 일본 등의 대도시는 나머지 지역들을 크게 따돌리며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나머지 지역과 단절되고 있다. 콜리어의 지적처럼, 이제 수도인 대도시가 더는 그 나라를 대표하지 않는다. 대도시 안에서도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있어 격차는 더욱 심화한다. 주된 지배층으로 새로 떠오르는 이들은 “잘 교육받은 고학력자들로, 새로운 숙련 기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은 윤리적 우월성까지 지녔다고 여기며, 서로 강력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반면,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이들은 위기다. 기술변화와 세계화로 이들이 기존에 맡아온 반숙련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중장년층과 청년층이 일자리 상실의 최대 피해자다. 이들은 고학력자들에게 분개하고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물론 그들 서로에 대한 신뢰마저 놓아버린다. ‘황량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극단화’는 자본주의를 뿌리부터 흔들 가장 위험한 요소다.


자본주의는 관리 대상... 더 잘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잘 작동하려면 생산성을 달성할 뿐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도록 자본주의를 관리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그가 역설하는 것은 윤리적 자본주의의 재구성이며, 이는 극단을 피하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요구로까지 이어진다. 대도시와 지방 사이에 발생한 지리적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토지와 건물의 가치 상승을 과세 대상으로 포착하는 것이 필요하며, 소득뿐 아니라 대도시라는 위치까지 세율 결정의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분단에 대처하는 정책수단으로는 학교 교육의 재정비, 일자리 안정, 주택 보급 정책 등을 열거하는데 ‘온화하면서도 강하게 개입하는 사회적 모성 주의’를 철학으로 제시한다.


출처 :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열쇠는 ‘호혜성의 윤리’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어, 뼈가 있는 문장으로 현상들을 정의하면서도 고상한 언어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게하는 폴 콜리어의 화법이 좋다. 밑줄 친 구절 중에 다시 읽어도 맘에 쏙 드는 몇몇 문장을 살짝 공유해볼까 한다.


제 1장, 새로운 불안에서 그는 포퓰리스트를 이렇게 묘사했다.


Rivalling the ideologues in seductive power is the other species of politician, the charismatic populist. Populists eschew even the rudimentary analysis of an ideology, leaping directly to solutions that ring true for two minutes. Hence, their strategy is to distract voters from deeper thought through a kaleidoscope of entertainment. The leaders with these skills are drawn from another tiny pool: the media celebrities.


"매력적인 권력을 가진 이데올로그에 필적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정치인, 카리스마 있는 포퓰리스트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이데올로기의 기본적인 분석마저 실패하고, 순간적으로 진실처럼 보이는 솔루션에 바로 돌입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전략은 변화무쌍한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해 유권자들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런 스킬을 가진 지도자들은 대게 미디어 유명인사들을 토대로 하고있다."


이 부분은 현 시대의 정치, 정치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단이었다. 장기적인 타당성 조사없이 민심을 얻고자 손바닥 뒤집듯이 만들어 내는 정책들은 위험하다. 예를 들면, 내가 살던 곳의 시장은 다음 선거 당선을 위해 KTX 역 개통이나 산업단지 유치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떠벌리곤 했는데, 이런 정책은 단순히 시민들이 부동산 차익에 눈이 멀도록 하는 뜬구름 같은 것들이었다. 또, 코로나 발발이후 주먹구구식으로 생기는 지원금은 꼭 필요한 곳에 가면 좋겠지만, 제대로된 조사나 지원 없이 급히 적용되는 정책은 구멍(grey zone)을 만들어 분배가 공평하지 못 할 염려가 있다.


제 3장, 윤리적 국가에서는 신뢰의 붕괴에 대해 뼈 때리는 말을 했다.


In a complex society, myriad interrelationships depend on trust. So, as trust collapses, co-operation begins to fray. People start to rely more upon legal mechanism for enforcement of good behaviour (this is good news for lawyers but not necessarily for the rest of us).


"복잡한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상호관계들이 신뢰에 의존한다. 그런 이유로, 신뢰가 붕괴하며, 협업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바람직한 행동을 강제화하기 위해 법적인 구조에 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이 점은 변호사들에게 좋은 소식이지만, 나머지 우리 모두에게는 그렇지않다.)"


정치, 언론,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기본적이라고 믿던 가족, 학교에 대한 신뢰마저도 무너지고 있는 사회이다. 신뢰는 보여지는 가치가 아님에도, 건강한 사회를 위한 근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위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뜨끔했다. 왜 나는 세금 내는 것에 냉소적이었던가, 왜 비영리단체에 후원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나와 같은 질문에 답은 하나였다. 나는 정부가 내가 내는 세금을 필요한 곳에 쓸거라는, 비영리단체가 정치적 개입없이 바른 곳에 후원금을 쓸 거라는 신뢰가 없었다.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병가를 내거나 육아휴직을 내면 실직의 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상호 신뢰없는) 회사라면, 회사와 내가 같이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희망 따위를 가지기 힘들 것 같았다. 다방면의 신뢰회복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이 틀림없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 깊이 생각에 빠지게 하는 책, 다시 한번 읽으며 현명한 폴 콜리어의 시각을 책으로나마 빌리고 싶어지는 책, 언젠가는 필사를 하고 싶은 책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가치인 윤리가 하루하루 붕괴되고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위협이 눈에 띄게 점점 나타나고 있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능력주의(Meritocracy)가 팽배해 차별이 일상화된 우리네 사회가 무섭다. 다시 윤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폴 콜리어의 제안은 전혀 이상주의자의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지 않았고, 윤리적 국가, 윤리적 기업, 윤리적 가족, 윤리적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런 저명한 경제학자가 있고, 그의 책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믿기에, 여전히 나는 세상에 낙관적인 시선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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