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2022)
*<어비스>, <타이타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촬영 내내 자신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없었고, 촬영 중반 감독 자리까지 빼앗겼음에도 훗날 높아진 그의 이름값을 이용한 제작사의 마케팅으로 그의 데뷔작이 된 <피라냐 2>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후, 고열과 함께 꾼 악몽에서부터 출발한 각본, 그리고 그 각본을 쥔 채로 펼친 운명을 건 프리젠테이션으로 그의 사실상의 데뷔작인 <터미네이터>가 탄생한다. 그렇게 시작된 카메론의 성공 신화는 할리우드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필모그래피 유일한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1989년 작 <어비스>조차도 유산을 남겼으며, 2년 후 그 유산에서부터 태어난 <터미네이터 2> 속 T-1000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역 캐릭터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09년 <아바타>를 공개하며 온 세상에 3D 열풍을 불러왔다.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아바타>를 쫓아 너도나도 3D로 제작됐다. 그러나 그 후로 <아바타> 속편의 개봉이 끊임없이 연기되는 가운데 3D 열풍 역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카메론은 <아바타: 물의 길>로 다시 한번 3D 기술을 중심부로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이 속편은 3D를 포함해 영화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다.
카메론은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로 정리했다. 그는 이 영화의 뛰어난 기술적 성취로 그 말을 증명해냈다. 다시 말해, 카메론은 OTT 서비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극장을 벗어난 공간에서 영화를 즐기게 된 현재에도, 여전히 극장이라는 공간이 유효함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렇게 카메론은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새로운 시네마(영화이자 극장이자 영화 산업)의 길을 엿보고 있다.
대략 3시간 분량의 <아바타: 물의 길>은 공학적으로 설계돼 총 3부의 구성을 보인다. 처음 한 시간에서는 전편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속편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해양 도시에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다음 한 시간가량은 이 영화가 우직하게 견지하고 있는 조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한 편의 해양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황홀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남은 한 시간가량의 시간 동안 성수기 블록버스터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액션이 펼쳐진다.
초반 1부가 <아바타>와 <아바타: 물의 길> 사이의 13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용됐다면,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본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롭게 창조된 해양 마을 ‘메트카이나’가 소개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 영화의 주요 뼈대다. 그렇게 카메론은 다시 한번 자신의 영화에 물을 끌어들였다.
카메론의 필모그래피에서 ‘물’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어비스>와 <타이타닉> 등 두 편의 장편 영화를 제외하고서라도 다양한 해양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정도로 물은 카메론에게 중요한 예술적 재료였다. 그리고 카메론이 창조해낸 세계에서 물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경외를 넘어, 미지를 품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비스> 속 심연에서 인간들을 관찰하던 외계인들은 영화 초반부 신비롭게 빛나는 모습을 등장해, 영화의 후반부 거대한 해일로 폭력에 찌든 인류를 심판하려고 하면서(감독판) 공포를 야기한다. 그러나 이내 에드 해리스가 분한 버드의 희생정신에서 인류의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면서 퇴장한다. <타이타닉>에서 물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는 인류의 자만으로 빚어진 타이타닉을 집어삼킨다. 영화의 초반부, 깊고 어두운 심해에 인류의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만들어졌던 거함이 녹슨 채 잠들어있는 장면은 물에 대한 경외와 공포를 담은 카메론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아바타: 물의 길>을 ‘시네마의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한 번 바라보면, 물에 대한 카메론의 시선은 영화에 대한 시선, 더 정확히 말하면 극장에서 관람(혹은 체험)하는 영화에 대한 시선으로 옮겨가게 된다.
현재까지 <아바타> 시리즈 5편까지 계획된 상황이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물의 길>의 개봉을 앞두고 만약 흥행에 실패한다면, 이미 촬영을 완료한 3편으로 이 프랜차이즈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카메론의 그 선언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관객들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오지 못한다면, 즉 <아바타: 물의 길>로 관객들의 경외 어린 시선을 얻지 못하고 ‘시네마의 길’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 프랜차이즈는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바타: 물의 길>은 뛰어난 영화로 다가오지만, 분명 ‘천의무봉’에 가까운 영화는 아니다. 이후 이어질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이 영화 전반에 걸쳐 넓게 펼쳐진 서사는 어딘가 듬성듬성 비어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약점에도 이 영화는 뛰어난 기술적 성취만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 쏟아부어진 약 5,000억 원의 자본과 같은 막대한 물량 공세만이 영화의 미래를 위한 단 하나의 길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어찌 됐든 카메론이 만들어낸 이 번쩍번쩍 빛나는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샀으며 그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또, 이후 속편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훗날 또다시 극장을 찾을 이유를 만들어줄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물결 속 위기에 빠진 시네마는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자신이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