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를 떠나 더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향한 곳은 유카탄 반도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멕시코의 중심은 중부보다는 동부에 있었습니다. 과거 마야 문명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 동부의 유카탄 반도였거든요.
물론 지금의 멕시코 시티 지역에도 깊은 역사는 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이 현재의 멕시코 시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멕시코 시티는 거대한 호수였고,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가운데 있던 섬이었습니다. 이 호수가 스페인의 정복 이후 메워지고, 그 위에 만들어진 도시가 현재의 멕시코 시티였습니다. 그러니 멕시코 시티 땅의 대부분은 과거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땅입니다.
게다가 아즈텍이라는 제국은 14세기에 접어들어서야 탄생한 국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신비한 고대 문명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아즈텍 문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는 한국으로 치면 조선시대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야 문명은 다릅니다.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자리잡고 문명을 꾸린 것은 기원전 2000년 무렵입니다. 그러니 멕시코의 중부 지방보다는 훨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물론 마야인들이 처음부터 융성한 문명 국가를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도시를 꾸리고, 다양한 도시국가가 서로 경쟁하며 몸집을 불려나간 것은 기원후 약 250년부터죠. 당시 마야 문명에서 큰 도시들은 5만에서 1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마야 문명의 역사는 이렇게 성장한 도시들의 각축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야 문명의 정치 체제를 고대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 빗대기도 합니다.
어떤 도시는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어떤 도시는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큰 도시들은 주변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동맹체들은 서로 협력하기도 했고, 때로는 라이벌 관계로 대치하기도 했습니다.
마야 문명의 전성기였던 ‘고전 시대’에는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여러 도시국가가 성장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도시는 티칼(Tikal)과 칼라크물(Calakmul)이었죠.
특히 티칼은 이 시기부터 멕시코 중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남부의 코판(Copan)이나 팔렝케(Palenque), 약스칠란(Yaxchilan) 등이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죠.
마야의 고전 시대는 9세기 경 끝을 맺습니다. 칼라크물이 티칼을 정복하면서 티칼은 힘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하지만 정작 칼라크물도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죠. 언급한 다른 도시들도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왜 갑자기 도시국가가 몰락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도시국가 사이의 강력한 경쟁, 부양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인구 증가,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만 추측할 뿐이죠.
하지만 이후에도 마야 문명은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도시들은 몰락했지만, 새로운 패자가 등장한 것이죠. 10세기 경부터는 유카탄 반도 북부의 치첸 이트샤(Chichen itza)가 마야 문명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12세기 경에는 마야판(Mayapan)이 주도권을 쥐었죠.
마야판은 15세기 중엽부터 몰락했습니다. 전염병과 자연재해, 계속해서 이어진 전쟁은 도시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미 문명의 주도권은 멕시코 중부의 아즈텍 제국으로 넘어간 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야 문명이 쇠락하고 있었던 1511년, 마야 문명은 처음으로 유럽인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 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본격적으로 마야 문명에 대한 정복에 나섭니다. 이미 몰락기에 있었던 마야 문명은 스페인의 강력한 무기와, 그들이 가져온 새로운 병원균 앞에서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의 정복 이후 마야 문명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의 도래 이전에도 마야 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시들은 대부분 숲 속에 파묻힌 폐허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스페인은 그나마 남아 있었던 마야 문명의 도시와 유물을 파괴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마야의 원주민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죠. 그들의 문화와 종교는 우상 숭배로 취급되었고, 문명은 그렇게 지워져 갔습니다.
더 동쪽으로 넘어온 제가 도착한 도시는 칸쿤이었습니다. 카리브 해라는 넓은 바다를 접한 해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죠.
칸쿤은 유카탄 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니 물론 마야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도시였죠. 실제로 칸쿤 안에도 마야 문명의 유적이 작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시 외곽으로 나가면 더 많은 유적을 만날 수 있고요.
하지만 유적들은 모두 파괴되어 소규모로 남아 있거나, 넓은 숲 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죠. 스페인의 정복으로 마야인들이 대규모로 학살당하면서, 1970년대 지금의 칸쿤에 살고 있는 인구는 코코넛 농사를 짓던 인구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의 칸쿤은 그렇게 지워진 역사의 흔적 위에 세워진 계획 도시입니다. 원래 카리브 해에서 미국인이 자주 찾던 휴양지는 칸쿤에서 불과 250km 떨어진 쿠바였죠. 쿠바는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필리판과 함께 차지한 식민지였으니까요.
물론 필리핀과 달리 쿠바는 독립 국가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죠. 미국의 직접적인 군정이 실시된 때도 있었으니까요. 미국은 이후에도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정권을 후원하며 쿠바를 설탕을 공급하는 식민지로 이용했습니다. 당시에는 쿠바가 미국인의 대표적인 휴양지였죠.
하지만 1955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혁명군이 쿠바 섬에 상륙했죠. 4년 간의 내전 끝에 혁명군은 승리했습니다. 바티스타 장권은 붕괴했고, 쿠바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죠. 이후 지금까지도 쿠바는 미국의 적성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쿠바를 대체하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휴양지가 칸쿤이었습니다. 1974년부터 멕시코 정부 기금을 동원해 호텔과 휴양지가 조성되었죠. 칸쿤에는 고급 리조트가 세워졌고, 명품 매장이 들어섰습니다.
곳곳에는 미국식의 대형 할인마트와 프랜차이즈 식당이 눈에 띕니다. 이곳이 미국이라고 말해도 크게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쿠바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미국인은 이제 근처의 칸쿤을 찾기 시작했죠.
칸쿤의 인구는 80만을 넘었고, 한 해에 250만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문명은 이제 숲 속에 묻혔습니다. 화려했던 도시는 기단과 우물만 남아 박물관 한 켠을 지키고 있습니다.
칸쿤의 바다는 듣던 대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도, 어쩐지 풀숲에 묻힌 거대한 피라미드와, 이 바다 건너의 봉쇄된 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 휴양지에서도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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