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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더슈탄트 Nov 27. 2023

[캐나다] 01. 변화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칸쿤에서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걱정이 많았던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그렇게 끝냈습니다. 이제 걱정할 만한 여행지는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토론토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영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이제 식당에 들어갈 때 혹시 메뉴판을 읽지 못할까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날씨도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더웠던 11월의 칸쿤을 뒤로하고 토론토에 오니, 드디어 겨울이었습니다. 위도가 높다 보니 해도 짧아졌습니다. 4시 반이면 벌써 해가 지더군요.


토론토의 저녁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많이 띄었던 것은, 역시 인종의 다양성이었습니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족을 마중나온 인도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인지, 어떤 사람들은 전통 복식인 샤리까지 차려 입고 나오셨더군요.


 시내로 나가도 분위기는 같았습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인도계가 아닌 직원을 찾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물론 동아시아인도 자주 보였죠. 토론토 대학교에 방문했을 때에도 인종의 다양성이 그 어느 대학보다 돋보였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유럽의 선진국에서도 물론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론토는 그보다 더 다양한 도시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캐나다 인구의 26.5%는 백인이나 원주민이 아닌 소수 인종입니다. 토론토의 경우는 이 비율이 55%까지 높아집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시적 소수 인종(Visible Minority)’에 속하는 것이죠. 영국이나 런던과 비교해도, 각각 10%p 정도 높은 수치입니다.


 여행자로서, 또 아시아인으로서, 이민자가 많은 도시를 걷는 것은 많은 점에서 안심이 됩니다. 사람들이 저를 겉으로만 보고 여행자인지, 이곳에 오래 거주한 이민자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니까요. 이민자가 많은 곳에서는 차별에 대해서도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궁금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캐나다를 선택했을까요? 이곳에 이주해 삶을 꾸려나가기로 결정한 1세대 이민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토론토 차이나타운


 사실 세계적으로 캐나다의 위치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북미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으니까요. 캐나다를 미국의 변두리나 아류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죠


 하지만 캐나다에는 캐나다만의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유럽인이 도래할 때부터, 분명 미국과는 다른 역사가 있었죠. 헨리 7세의 후원을 받은 영국 함대와, 프랑스의 함대가 각각 뉴펀들랜드와 가스페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 캐나다라는 국가의 출발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지역은 7년전쟁 이후 1763년 영국에게 할양되었습니다. 영국은 광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갖게 되었죠.


 하지만 원래 프랑스가 지배했던 퀘벡 지역은 지금까지도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캐나다 곳곳에는 프랑스어 안내문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캐나다의 특수한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이죠.


 미국이 독립할 때에도 캐나다는 달랐습니다. 영국에 대항해 미국의 13개 주가 전쟁을 일으켰지만, 캐나다 식민지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13개 주는 캐나다 식민지에도 독립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몬트리올을 무력으로 점령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이 독립한 뒤에도 이런 갈등은 이어졌습니다. 미국에 있던 왕당파 세력이 캐나다 식민지로 대거 이주하면서, 양측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죠. 특히 1812년에 다시 벌어진 미국과 영국 사이의 전쟁은 사실상 미국과 캐나다의 전쟁으로 치러졌습니다.


캐나다와 영국의 국기


 물론 전쟁 이후 미국과 캐나다는 빠르게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미국은 북부의 캐나다 식민지 대신, 서부의 넓은 땅으로 침략의 대상을 바꾸었죠. 캐나다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고, 곧 독립 국가가 되었습니다.


 캐나다가 유일한 접경국인 미국에 비해 작은 나라인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영토는 조금 더 크지만, 경제나 인구 규모에서 크게 밀리고 있죠. 미국의 인구는 3억 3천만 수준이지만, 캐나다의 인구는 3천 8백만으로 10분의 1 수준입니다. 미국의 GDP는 23조 달러를 넘었지만, 캐나다의 GDP는 2조 달러에 미치지 못합니다.


 꼭 미국 뿐만은 아닙니다. 영국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죠. 여전히 캐나다의 왕은 영국의 찰스 3세입니다. 영국에 있는 국왕을 대신해 캐나다를 다스리는 총독(Governor General)이라는 직책도 형식적으로 남아 있죠. 캐나다는 1982년까지도 헌법을 개정할 때 영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영국이 패권국이었던 시대에도, 미국이 패권국인 지금 이 시대에도, 캐나다는 조연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던 셈이죠. 캐나다가 세계의 무대에서 중심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토론토 대학교


 하지만 그런 변두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도 있는 것이죠. 중심에 선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들어낸 변화도 있는 법입니다.


 미국이 노예 해방을 두고 남북전쟁을 벌이던 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는 이미 노예제를 폐지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탈출해 캐나다로 자리를 잡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냉전 시대 미국이 국제적인 분쟁에 깊숙이 개입한 반면, 캐나다는 중립국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덕분에 캐나다는 자유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러 분쟁에서 중재국으로 활동했습니다.


 UN 평화유지군의 창설을 처음 제안한 사람도 캐나다의 총리 레스터 피어슨이었죠. 미국은 캐나다에 베트남 전쟁 개입이나 미사일 기지 설치 등을 요구했지만, 캐나다는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토론토 CN타워


 캐나다는 지난해에만 40만 명 이상의 영주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60만 명 이상의 임시 이민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캐나다의 인구는 지난해 100만 명 증가했는데, 그 96%가 이민을 통한 인구 유입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캐나다의 카페 ‘팀 홀튼’에서도, 인도계 세 명과 동아시아계 한 명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 아니라, 캐나다를 선택한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어쩌면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기 때문에 캐나다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의 이민자는 늘어나고 있고, 언젠가 이들이 캐나다라는 사회를 견인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캐나다에서 만들어낼 변화도 있겠죠. 그 변화는 캐나다를 넘어 세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심이 아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변화가 있습니다. 주연이 아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양한 출신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캐나다에서는, 가까운 시간 내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까지 캐나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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