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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Dec 08. 2021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와 수산시장에 장 보러 다녀온 이야기

두꺼운 비닐 차양막으로 덮인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왁자지껄한 시장의 활기가 훅 느껴지는 수산시장.

허리 아픈 어머니의 지령으로 "생물 오징어"와 "자반고등어" 같은 반찬거리 수산물을 사러 온 부자는

입구에서부터 살짝 얼어붙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뭐 사러 오셨어?", "뭐 찾으세요 아버님?", "오늘 생선 물이 좋아요" 등의 여러 멘트들과

함께 입구 부분의 여러 상인 아주머니들이 한꺼번에 말을 걸어오고 손을 잡아채려고 하시니, 아버지도 저도 그분 중 어떤 분의 가게에 가야 할지, 나머지 분들의 제안은 어떻게 무시할지를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선비 같은 분이십니다. 좋은 말로 하면 그렇고, 나쁜 말로 하면 체면이 너무 중요한 분이랄까요

잠깐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실 때도 입고 있던 실내복을 굳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시고,

역대급 더위가 찾아왔다는 여름에도 남사스럽다며 집 앞에 나갈 때는 반바지를 입지 않는 분이세요.

어머니는 부부싸움을 하실 때 가끔 "남자가 호탕하지 못하고 소심햐다"며 타박을 하실 때도 있지만,

남들을 대할 때 예의를 다하려고 애쓰시는 분이시라 남의 눈치를 좀 보시거든요.

그런 분이시라 당신에게 여러 명이 달려들어 말을 걸어오는 걸, 다 상대하실 수도 없고 무시하실 수도 없어서,

순간 잠깐 얼어붙으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바다와 함께 하신 분. 생선을 보시는 안목이 없지는 않으신 분이라, 말없이 차분히 가게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십니다. 가격을 물어보시거나 흥정을 하시는 일도 없이 묵묵히 진열된 생선들을 보며 걸어가시던 아버지가 걸음을 멈춘 곳은, 그 많은 가게 중에 유일하게 남자 사장님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가게였습니다. 그리곤 몇 마디 하지도 않으시고 바로 이것저것 사시더니 집에 가자고 하시더라구요.


"아버지, 왜 그 가게를 고르셨어요? 그 가게 물건이 좋은 건가요?"

가격을 묻거나 흥정을 하신 게 아니니 가격을 기준으로 가게를 고르신 것 같지도 않고, 까막 눈인 제가 보기엔 그 가게의 물건들 특별히 싱싱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아버지가 그 가게를 고른 기준이 궁금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께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혼자 있잖냐"


아버지는 호객행위를 하는 시장 아주머니들 틈에서 혼자 말도 붙이지 않고 묵묵히 생선을 손질하던 그 남자 사장님이 좀 안쓰러우셨던 걸까요? 아니면 본인이 당황할 정도로 말을 걸고 호객을 하지 않는 그분의 응대법이 편안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왠지 아픈 부인을 대신해 시장에 장을 보러 온 당신의 모습이 다아주머니 틈 사이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구요. 어찌 됐든 왠지 앞으로도 수산시장에 오면 아버지는 이 가게만 가실 것 같은걸요 ^^"


활기차고 억척스러운 시장 아주머니들과 생선을 사러 오신 아주머니들의 활기찬 대화가 넘쳐나는 수산시장.

아버지와 아들이 말없이 종종 걸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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