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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Dec 10. 2021

이럴 땐 비빔밥

아침 식탁을 차리다가 든 생각

요리 잘하고 음식 손 큰 저희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음식을 많이 먹지만 비린 음식 잘 못 먹는 저의 입맛 차이 때문에 상을 차리는 데 고생을 좀 하셨습니다. 제 입장에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건 저희 어머니가 자초하신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제 어렸을 때 기억을 돌이켜보면 저희 집 식탁에 올라오는 해산물은 일반적인 '고등어'나 '갈치'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넓이의 갈치나 염장되어 말려진 조기가 아니라 바다에서 막 잡아서 올라온 살 오른 조기는 뭐 매 끼니 식탁에 올라오고, 그때그때 제철 생선이라고 불리는 민어니 하모니 서대니 뱅어니 하는 생선들과 갯벌이나 바위틈에서 올라온 어패류와 해초류들이 날 것으로 혹은 조려져서 것도 아니면 염장되거나 무쳐지거나 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마구 식탁 위에 올라왔었어요.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데 이제는 '삼시세끼'에 나와서 청정지역 해산물로 인기 높은 '부처손'이라는 어패류 말입니다, '그런 거 뭐 먹을 게 있다 식탁에 올리냐'라고 타박하셨던 저희 아버지 말씀을 제가 기억하고 있단 말이죠ㅋ


암튼 평생 바다에서 나고 자라 신선한 해산물을 골라내는 안목이 뛰어난 아버지의 선도 감별과 그걸 엄청 맛있게 만드는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결합되었으니 그 음식 퀄리티는 더할 나위 없었을 것입니다만, 그걸 열 살도 안된 어린아이에게도 그대로 먹인 것이 사단이었습니다. 뭔가 씹히는 것도 아니고 녹는 것도 아닌 그 경계의 흐릿한 식감의 재료들이 바닷물 비릿한 향을 풍기며 입안에 들어왔을 때 아이가 그 비릿한 느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다. 그렇게 초기에 해산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다 보니 저는 어머니가 만드시는 해산물 요리는 구워져서 올라온 "갈치"와 "조기" 정도만 먹고 나머지 것들은 입에 대지 않았고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런 반찬 투정하는 아들 내미를 그냥 굶기셨으면 저의 이 입짧음도 과도한 비만도 없는 것이 됐을 텐데(과연?) 저희 어머니는 그걸 또 다 받으셔서 한 식탁에 "해산물"과 "육류" 반찬을 따로 차려 주셨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생선탕을 끓이셨으면 제가 먹을 고깃국을 따로 끓이고, 무침이나 회류의 반찬이 올라오면 제가 먹을 제육이니 소시지부침 같은 걸 따로 해주신 거죠. 덕분에 저희 집은 한번 식탁을 차리면 반찬이 십 여종은 그냥 넘어가는 그런 집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와 아버지는 행복했구요, 어머니는 고생하셨죠.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이제는 저희 집 식탁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반찬을 한두 개 만드는 것 정도의 수준으로만 요리를 하시구요, 나머지는 저희 첫째 누님이 반찬을 보내주고, 거기에 제가 인스턴트식품을 가공해서 상을 더하는 정도로 식탁의 수준이 변했어요. 그런 수준이 반영된 오늘 아침 식탁이 아래에 보시는 사진입니다. 분명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간소한 차림입니다만 생선에 고기에 나물들까지 꽤 반찬이 푸짐해 보이지 않으세요?ㅎ 


정말 저는 하는 거라곤 데우고, 차리고, 설거지하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렇게 상을 차리다 보니 한 반찬이 계속 식탁에 올라오지 않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반찬을 이번 끼니에 다 먹어 치워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족 각각의 입맛 하나에는 맞게 상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엄청난 노동인지를 너무 잘 알겠습니다. 찌개에 나물에 고기에 생선에 뭐 이것저것 올라가 있지만, 일단 어떤 건 벌써 며칠째 식탁에 올라오고 있어서 이미 맛이 빠질대로 빠진 느낌이고, 그렇다고 남은 걸 버리고 새로 반찬을 준비하자니 제가 요리를 할 실력도 안되고 어머니께서 직접 반찬을 만들기도 어려우니 하나라노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먹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어찌 됐든 주방보조를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언제까지나 같은 반찬들을 식탁에 올릴 수는 없는 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까 궁리하다가 왜 어머니들이 비빔밥을 만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각양각색의 반찬들을 모두 동시에 해치우는 방법은 비빔밥 밖에 없겠구나', '저걸 모두 한 그릇에 담고 참기름과 고추장의 맛으로 버무리면 깔끔하게 냉장고를 비울 수 있겠구나', '그래서 어머니들이 가끔 온 가족들을 모아놓고 비빔밥을 하시는구나' 하는 걸 말이죠


요리를 하는 것의 위대함과 가족들을 위해 삼시세끼를 차리는 것의 숭고함과, 차리고 치우는 과정의 수고로움을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어렸을 때 참으로 저희 어머니를 힘들게 한 아들놈이었더라구요. 아침 상을 보며 새삼 제가 어렸을 때 얼마나 호강으로 컸는지를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점심엔 저거 모두 비빔밥으로 해치우고 저녁에는 어머니 좋아하시는 족발이라도 시켜드려야겠습니다! 얼마나 어머니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드리면 이 죄송함이 덜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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