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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Dec 21. 2021

짜장면 예찬론

짜파게티 한 상자를 찬장에 채워 넣으며 하는 이야기

짜장면과 짬뽕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걸 고르시나요?

저는 곧 죽어도 짜장면을 고르는 사람입니다  그건 딱 짜장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짜장면을 먹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식감"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식탐이 많았던 저는 입 안 가득 음식을 채운 상태로 우걱우걱 음식을 씹어대면서도 다음 입안에 넣을 음식을 찾아 젓가락을 내밀어대는 아이였습니다. 왜 있잖아요. 입 안과 밥그릇 위와 젓가락에 동시에 음식을 가지고 있는 '식탁을 점유하는 자' 말이에요ㅋ


그런 식탐이다 보니 입안에 있는 음식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해서 음식 먹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음식을 다 씹지도 않고 그냥 입안에 음식을 한꺼번에 "꿀꺽" 삼켜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거죠. "입 안과 목을 꽉 채우며 꿀떡 음식이 넘어갈 때의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느낌"을!


식도와 기도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음식을 위로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식도 주위 기관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버둥거리다가, 음식이 아래로 쑥 내려갔을 때 갑자기 뻥 뚫리는 공간이 생기는 느낌!

입 안 가득 찬 음식을 꿀꺽 삼키다가 체하거나 컥컥거리기를 여러 번. 저는 드디어 음식이 식도를 꿀떡 넘어가는 순간의 쾌감, 그 짜릿한 맛을 알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음식을 먹다 보니 아무 음식이나 입에 채운다고 그런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일단 뜨거운 음식은 그렇게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우기도 힘들구요, 그런 음식이 식도를 꽉 채우고 넘어가면 그 뜨거운 느낌이 식도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감각을 마비시킨달까요. 그래서 국물요리나 찌개, 전골류의 음식들은 그런 식으로 먹지 않게 됩니다.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아삭 거리는 것들도 그런 식감을 주지 못합니다. 총각김치나 동치미에 들어간 무 같은 단단한 식재료가 포함된 음식은 잘 씹어 삼키기가 바쁘고 샐러드는 마구 입안에 넣어도 씹으면 한입 꽉 차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이런저런 음식 경험(?)을 하게 되면서 찾은 최적의 음식이 바로 짜장면입니다.

배달되어 오는 기간 동안 적당히 식었지만 아직 입술에 갖다 대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입안에 넣으면 입맛이 확 올라가는 달착지근한 카라멜과 MSG의 맛, 젓가락 가득 집어 입안에 욱여넣어도 입술을 매끄럽게 통과하여 입안에 섞이지 않고 자리 잡게 하는 기름기, 한두 번 씹고 꿀꺽 삼키면 식도를 가볍게 압박하며 위까지 그대로 미끄럽게 쓩.. 하고 넘어가는 면 특유의 식감. 하 정말 짜장면은 저처럼 한 입 가득 음식을 꿀떡 삼키는 사람을 위한 최적의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짜장면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체재가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으로는 평양냉면과 파스타로도 그런 식감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다만 평양냉면이나 파스타는 그런 식으로 먹으면 그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성비가 낮다'는 문제점과 식도 점막에 밀착되는 끈끈한 점도가 아무래도 짜장면 면에 비해서는 조금 단단하다는 점에서 짜장면의 왕좌를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장에 짜파게티 한 박스를 채워 넣으며 말이 많았습니다.

조만간 위에 적은 이 이야기를 저희 부모님께 마구 떠들어대며 짜파게티를 입 안에 욱여넣으려고요 ㅎ

저희 부모님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짜장면을 먹는다는 걸 아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이런 식탐 돼지를 키웠다니.. 하며 당황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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