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로백수 Dec 16. 2021

방에서 놀다가 뜨끔했던 이야기

211215_TV보시던 아버지에게 호출당한 날

"아들아 나와 봐라"

안방에서 TV를 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거실로 나오시며 방에서 노트북으로 놀고 있는 저를 부르십니다.

무슨 일이 있나 나가보니 거실 TV를 켜서 한참 방송 중인 대선 정당 정책 설명회를 보여주시더라구요.


"이건 왜요 아버지?"라고 제가 물었더니, 출연진 중에 한 명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우리 사촌의 고모의 어쩌고... 고향이 어쩌고... 너랑 같은 대학을 나왔고... 어느 정동 소속이었는데... 당을 바꿨다가.. 구청장을 했고... 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래서요 아버지? 제가 뭘 알아야 되는 건데요?"

"아니 이 사람이 우리 사촌의 어쩌고... 고향이 어쩌고.. 너랑 같은 대학을 나왔고..." 하신 말씀을 다시 시작하십니다ㅋ 본인이 아는 사람이 TV에 나온다고 자랑을 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주변 지인들을 보며, 그분들이 삶을 열심히 사는 동력 중에 "자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봅니다. 자식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본인이 보다 나은 현실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하고, 나중에 자식을 결혼시키거나 사회에 내보낼 때 본인이 보다 나은 기반이 되어주기 위해 일정 수준의 사회적 지위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자식이 "자네 부모님은 뭐하시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금이라도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 보인 달까요?


그러다 세월이 흘러 부모가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고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시간이 오게 되면,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기반이 되어주고 싶어 했던 부모의 그 마음은, 본인이 키운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되는 듯합니다. 저렇게 반듯한 자식(?)을 내가 키웠다, 나의 지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뭐 그런 마음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일생의 역작 같은 걸 보며 느끼는 성취감 같은 거 말이에요.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자식도 없어서인지, "제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직위" 같은 것을 특별히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언젠가 돌아가시고 나면, 제가 개차반처럼 살아도 저만 행복하다면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구요. 그게 제가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는데 말입니다. 가끔 제가 회사를 그만둬버려서 저희 부모님께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옆에서 들어보면 부모님이 통화 도중에 "그래서 대현이는 지금 뭐 하고 있대요?"라는 친척들의 질문을 받으실 때나, "그 집 자식은 뭐가 됐고.. 결혼을 했고... 그 자식이 영재고를 갔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전화 목소리에 기운이 빠지시는 느낌이에요 ㅎㅎㅎ


TV에 나온 그분이 저랑 고향이 같고,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정말 본인이 아는 사람 중에 저렇게 TV에 나와 정당의 정책을 설명할 정도로 잘 난 사람이 있는 것이 진심으로 신기하셨 던 것 같구요. 하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면 가끔 생각합니다. 속 편한 백수의 삶을 선택하지 말고 진짜 좀 애써서 사회의 출세를 도모해 볼 걸 그랬을까요?^^"


※사진은 아버지가 보여주신 TV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출연하신 분은 이 이야기의 사연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저의 정당 지지 여부와도 하등 아무 관련이 없음을 사족처럼 덧붙입니다 :)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는 바쁘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