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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Dec 17. 2021

아버지는 모르시는 아버지의 신년 계획

아버지와 동네 마실을 다녀온 날

대전이라는 새로운 동네에 이사를 온 후 한 달 반. 부모님 모두 자유롭게 거동을 하시기가 불편하신 상태이기도 하시고, 이사와 정리, 어머니 수술 등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터라 부모님은 집 밖을 벗어나신 적이 별로 없으십니다. 어머니는 수술 이후 경과가 좋아지시더라도 어쩔 수 없이 독립적인 도보 이동은 어려우실 것 같으나, 두 분의 생활편의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아버지는 집에서 도보 30분 반경의 지리는 익혀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하여 저녁으로 햄버거를 사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에서 버스로 3 정거장, 지하철로 1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아버지와 함께 이동한 후, 그곳에서부터 집까지 천천히 아버지와 산책을 하며 걸어왔습니다. 햄버거를 먹으며 종로 3가 맥도널드가 어르신들께 얼마나 핫한 곳인지도 설명해드리고, 필요하시다고 하신 부모님 속옷도 사고, 약국에 들러 면봉이니 상비약품도 사고, 천천히 천천히 위치를 설명하고 집에 돌아오니 1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뭔가를 사드린 것보다는 '이제는 여기까지 어떻게 와야 되는지 알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훨씬 더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면서 제가 아버지께 꼭 사용법을 가르쳐드리고 싶은 앱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인터넷뱅킹", "네이버지도", "카카오택시" 그리고 대전의 공용자전거 서비스 앱인 "타슈" 등등이 있는데요.

인터넷뱅킹앱은 이미 설치를 하고 사용법을 하나하나씩 가르쳐드리고 있는데, 다른 앱들은 아버지께서 조금 어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도"와 "택시", "타슈" 모두 "지도 상에 내 위치를 표시하고, 이동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개념 상으로는 유사한 서비스처럼 보이는데, 그 3가지를 모두 어려워하시는 건 아마 서비스에 겹쳐있는 레이어들이 복잡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눈이 잘 안보이시는 어르신들이 보시기엔 지도앱 화면 상에 적힌 모든 것들(건물 그림, 텍스트 등)이 너무 작은 데다가, 글자라도 크게 보려고 줌으로 화면을 확대할 경우 너무 현재 위치만 핸드폰 화면에 나타나게 돼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의 거리나 경로를 볼 수는 없게 되니까요. 거기에 더해 "목적지를 입력하는 화면"과 "검색결과 목록 창", '해당 목록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세부 경로를 보는 창" 등등의 이동이 일어나야 하고, 택시를 부르거나 자전거라도 대여하려고 하면 결제 프로세스까지 더해지며 아버지 머릿속에 정리가 어렵지 않으시나 싶습니다.


2021년도 이제 거의 끝입니다 올해는 "부모님과 살림을 합친다"와 "어머니 허리 수술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 인터넷 뱅킹을 가르쳐드린다"라는 과제를 달성했으니까요, "아버지께 지도와 관련된 앱들의 사용법을 알려드린다"와 "어머니께 고스톱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드린다" 정도를 내년 목표로 세워봐야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또 뭐가 있으려나요.


코로나가 한참인 연말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계속 흘러갈 거고 질병도 언젠가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겠죠. 다들 건강하고 평온한 연말 보내셨으면 합니다. 한 해 마무리도 잘하시고, 새해 기대되는 계획들도 잘 세워보시면 좋겠구요. 어찌 됐든 연말이니까요 :)

(근데... 벌써부터 연말 인사를 하면 진짜 연말엔 무슨 인사를 하려고 이러는 걸까요 저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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