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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Nov 16. 2020

가을앓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 음식 이야기

                                                                                                                                                                                                                                                                                                                                                                                                                                                                              

달큼한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친다. 산과 들도 이 바람에 취한 듯 빨갛게 노랗게 물들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올 가을도 여전히 서성인다. 어제는 재래시장을, 오늘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리는 수요 시장을 서성거린다. 어쩌면 때를 기다린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장마를 거친 탓인지 채소들이 시원찮다. 재래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내가 원하는 가을 무와  어린 갓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갓은 양평 언니에게 부탁해 두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나를 잘 아는 채소가게 아저씨가 무엇을 찾느냐며

 " 이거 강원도 고랭지 무야. 생채 만들어 먹으면 기가 막힐걸." 하지만 그냥 발길을 돌린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단하면서도 푸른 청이 많은 가을 무다. 갓도 김장김치 양념하려고 심은 밭에서 솎아낸  어린 갓이라야 제격이다. 그래야 그나마 어머니가  만들어 준 생채와 갓으로 만든 물김치 맛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머니 앓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는 요리를 참 쉽게 하셨다. 아침밥을 짓다가도 뒤란 텃밭에 가서 무를 뽑아다가 쓱쓱 채를 썰어 담가 놓은 멸치액 젓을 넣고 양념과 함께 버무리면 젓 냄새가 고소한 생채가 완성됐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조갯살에  싱싱한 풋고추를 송송 썰고 깐 마늘을 얇게 저며 살살 버무리면 매콤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젓갈이 탄생했다. 어머니의 유일한 레시피는 손맛과 눈대중이 전부였지만 언제나 맛있으면서도 감칠맛이 있었다. 우리 칠 남매는 어머니가 해 주신 것이면 무엇이든지  밥 한 공기씩 뚝딱 해치웠다.


그중에서도 제일 생각 나는 요리가 어린 갓으로 담근 물김치다. 어머니는 나박나박하게  썬 무와 어린 갓을 황태 육수로 담갔는데, 이틀을 상온에 3일은 냉장고 두면  붉은 보랏빛 물김치가 탄생했다. 색깔이 예뻤다. 그래서 갓김치는 눈으로 한 번, 맛으로 한 번 먹는 김치이기도 했다. 이런 김치를  삶은 국수에 한 국자 퍼올려 붓으며  붉은 보라색 국물이 하얀 면으로 스며들어 톡 쏘는 듯한 특유의 갓 맛과 어울려 국수의 풍미를 더했다.


 " 엄마,  이 국수 회령 시장에 가서 팔까.  불티나게 팔리겠는데."

"그럴까, 그러다 우리 금방 부자 되는 것 아닌지 몰러." 하시며 활짝 웃으시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지금처럼 날씨가 쌀쌀해지고 김장철이 다가오면 어떤 의식을 치르듯 나는 갓으로 물김치를 담근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담갔다. 어머니 손맛에는 턱없이 부족한 솜씨지만 담그는 순간도 먹는 순간도 어머니와 함께하는 기분이 들어 담근다. 너무나 일찍 내 곁을 떠버린 어머니 앓이다.


 가을 내내 나는 혹시 모를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서성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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