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 아홉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2.12.19 식당 앞 시멘트 바닥에 생긴 그림자: 가족사진이로구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해부터 3년간의 기록이 담긴 부모님의 일기이자 나의 일기인 그 책을 계기로 추억 속 한 도시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 어떤 까닭도 없이 가고 싶었고,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었기에 ‘욕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설렘이 더해져 있던 그 욕망이 나의 발길을 이끌었던 도시는, ‘충청남도 홍성’이었다. 그곳은 병상에 누워 있는 아빠와 바나나를 나눠 먹던 병원으로 가기 전, 아빠와 엄마, 나, 그리고 엄마 뱃속에 있던 내 동생이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도시다. 두 번이나 기차를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그곳으로의 제법 먼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곳으로 향하고픈 욕망이 솟구쳐 오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엄마에게 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조금은 힘들게 받아들이시려나 했던 약간의 염려는 무안할 정도의 기우였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던 듯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괜찮은 생각이라며 함께 설레하셨고, 그때부터 25년 전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셨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했다. 엄마의 기억 속 그 도시, 그 골목, 그 건물들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아빠의 건강 문제로, 조금은 편안한(?) 발령지로 오게 되었던 곳, 홍성. 이곳에서 우리 네 가족은 제법 많은 시간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우리가 살았던 5층짜리 아파트, 그 앞에 자리한 꽃밭 같은 텃밭, 유치원 버스가 섰던 작은 길 건너편 정류장, 군청 안 아름드리 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끝까지 고마웠던 우리의 이웃들.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수많은 찰나의 한 컷 한 컷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나의 기억과 엄마의 기억이 닿은 부분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울컥거리게 했다. 그리고 참으로 가고 싶은 곳, 집 근처 홍주성의 나지막한 성벽에서의 옛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떠나게 된 우리 가족 원정대의 인원은 둘이었다. 나와 내가 지어준 ‘뽕요한싼디’라는 별명의 소유자인 내 동생 - (내 동생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탤런트 ‘변요한’과 가수 ‘쌈디’가 아주 조금씩 담겨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꿔 이어 붙여 부르고 있다.) - 이었다. 허리가 불편했던 엄마에겐 긴 기차여행은 무리였기에, 아쉽게도 함께 못 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나만의 것인 듯했다. 우리가 충분히 만끽하며 담는 그곳의 사진들, 우리의 눈을 통해 지금의 홍성을 보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셨다. 엄마의 두 눈에 담긴 따스함이 나는 참 좋았다.
뽕요한싼디와 나는 오랫동안 기차를 타야 해서 새벽 일찍 출발했다. 예닐곱 시간이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기차는 자리가 없어 찻간 문 앞 계단에 퍼질러 앉아 가야 했고, 기차를 시간 맞춰 환승하기 위해 목구멍 가득 피 맛을 느끼며 헉헉 달리기도 했다. 참 진절머리 나게 기차를 탔다. 그 시간들을 버티기 위해 계속 먹었다. 우리 자리에는 씹고 삼키는 소리와 그 맛에 대한 평, 먹는 즐거움에 대한 예찬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 옛 홍성이 그대로 있으려나?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벅찬 걱정들이 마음 한 켠에 가득 있었다. 훗날, 이날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마음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대의 기차를 모두 타내고서야 우리는 홍성에 도착했다.
참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엄마의 기억을 따라 우리가 살던 골목으로 갔다. 기분이 묘했다. “아빠랑 엄마가 이 길을 걸었겠제? 이 건물 엄마가 말했던 거 맞제? 지금 우리가 보는 거랑 같은 걸 봤겠제?” 20여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엄마와 아빠의 옛 시간의 끝점에 닿은 듯한 그 기분은, 나의 뿌리에 물이 한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살았던 5층짜리 아파트로 걸어 들어가는 골목을 걷는 동안 보이는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신호등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게도 그 골목은 엄마의 기억 속 풍경을 그대로 간직해주고 있었다. 길 건너 정차된 유치원 버스를 씩씩하게 타는 나를 보며 “다 키웠네.”라며 기특해하던, 아파트 창문 안의 아빠 모습이 보일 것 같은 그 정류장에서 그 위를 쳐다보며 잠시 머물렀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지나는 버스 차창에 비쳤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건너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앞에 다다랐을 때, 그 옆 주택에 사셨던 분들에 대한 기억이 있어, 그 근처를 서성였다. 그때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는데, 2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를,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땅을 지금까지 지키고 계셨던 우리 옛 이웃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리 한 번에 서로를 알아보았을까,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살아 있으니 또 이리 만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참 와닿았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그 댁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엔, 어렸던 나의 기억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해가 지기 전 우리는 너무나 가고팠던 홍성의 어느 나지막한 성벽으로 향해야 했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건강하게 잘살자는 인사를 나누며 그 댁을 나왔다.
조금씩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옛 기억을 떠올리기엔 그 시간과 닮아 있어 좋았다. 엄마, 아빠와 저녁을 먹고 나와, 성벽을 따라 자라 있던 풀 잔디 언덕을 걸었던 우리들만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때 즈음 걷기 시작하여 한참을 걷다 보면 성벽 위로 달이 차올랐었다. 참 노랗고 커다란 달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달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기억한다. 그 성벽을 걸으며 20여 년 전 내가 생각했던 것이 다시 명확히 떠올랐다. ‘먼 훗날 다시 그 성벽을 걸을 것 같다.’는, 마치 헤어짐을 알았던 듯한 꼬맹이의 맹랑한 생각. 다시 그 풀 잔디를 밟았을 때의 그 첫발에 담긴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연신 “우와”를 외치며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흥분해서 뛰어다녔다. 그 성벽에서의 기억은, 내 삶에서 뿌리를 찾았던 가장 강렬한 시간일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는.
근처 찜질방으로 향하면서, 뽕요한싼디와 나는 하루 동안 느낀 바에 대해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느낀 감정들의 색채보다 훨씬 더 흐릿한 무언가였다. 분명 좋았고 즐거웠다지만, 뭔가 빠진 것 같았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건넨 한 마디. “나는 이때 태어나기 전이잖아.” , “⋯⋯.”
맞는 말이다. 내 동생 뽕요한싼디는 이때 엄마 배 속에 있었다. 평소 미안하다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오는 내 입에 큰 돌덩이가 하나 막힌 듯했다.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홍성에서 느꼈던 행복의 크기만큼 미안함이 몰려왔다. 시간을 되돌려, 고삐 풀렸던 성벽 옆 그 큰 망아지를 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여정을 마무리 지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지금부터라도 우리 둘이 함께하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부랴부랴 미리 챙겨두었던 화투를 가방에서 꺼냈고 낄낄거리며 패를 돌렸다. 찜질방에 있는 ‘얼음골’과 ‘쑥향실’을 오가며 온기와 냉기의 차이를 웃음 한가득한 비명으로 채웠다. 더불어 먹는 것만큼 귀한 추억이 또 있으랴. 홍성의 라면, 홍성의 식혜, 홍성의 달걀을 먹으며 그 밤을 불살랐다.
언젠가 내 동생에게도 뿌리 깊이 차오르는 물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새롭게 소중히 만들어야 했다. 그 시작은, 이곳 홍성에서부터였다. 부모님의 시간은 나의 시간으로, 그리고 우리의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뿌리에 차오른 그 물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주었고, 나를 의미 있게 움직이도록 했다. 그 물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흘러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건네며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의미의 새 출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