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흔적의 따스함_2
마흔 길 골목골목__다섯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20.01.09 어느 도자기공방 앞 도로: 자전거와 오토바이]
마흔 길 골목골목__다섯 번째
“내달리는 KTX 타고.”
[2019.01.31 곰탕 먹으러 가는 시장길: 곱게 빻아놓은 고춧가루 냄새가 짙다]
삼십대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던 나는, 가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고파 서울로 향할 때면 대부분 KTX를 타고 있다. 이제는 오랜 시간 기차 타는 것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긴 시간을 할애할 만큼 체력이 되지를 않아서일까, “쌩쌩” 정신없이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으로 시선이 덜 가서일까, 아니면 옆좌석 사람과 이야기 나누려는 마음보다 서로의 팔꿈치가 닿지 않으려 거리를 두려는 마음이 더 커서일까, 기차에서의 즐거움을 맛보고는 싶지만 최대한 짧고 굴게 느끼려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그래도 여전히 기차 안에서 달걀을 먹고 있다. 다만, 통일호 통근기차를 즐겨 타던 20년 전 그날들과 달리, 여행지로 갈 때가 아닌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먹는다. 왜일까.
내복을 입고 겨울을 맞이한 그 해 1월의 어느 날, 나는 상행선 KTX를 탔다. 표는 미리 휴대폰으로 끊어두었다. 이제는 기차표를 ‘끊는다’는 표현보다 ‘예약한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기차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당도했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놓은 역사 안으로 들어가 쉬엄쉬엄 화장실도 다녀오고, 어묵가게에 들어가 꽃게가 우러난 국물도 후후 불어 마셨다. 지그재그로 튼실히 꽂힌 어묵 2개를 삽시간에 해치 훈 후, 기차 들어오는 승강장으로 갔다. 기차 타기 전에 어묵을 먹는 일은, 나의 기차여행에서 새롭게 생긴 재미이자 꼭 해야만 되는 미션 같았다. 그래서 달걀이 어묵에 밀려 후발주자로 자리잡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날도 즐거운 미션완료. 기차에 타서는 접이식 작은 식탁을 펴놓고 월간지 책자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잠들었다.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KTX 안에서 정신없이 자다가 서울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 소리에 깼다. ‘오늘 걷게 되는 골목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자다 깬 후의 멍함은 기차 밖 찬바람이 볼을 스치면서 이런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뀌어 갔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듯 바삐 역사를 벗어나 지하철 환승 후 2호선을 타고 중림동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보았던 서울 설렁탕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많은 설렁탕집들 중에서 이곳 장소를 선택한 것은, 지하철에서부터 골목이 많은 곳을 지나야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렁탕집으로 가기 위해, 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왼쪽에는 커다란 건물들 앞에 자리잡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 고기집이 보였다. 제법 큰 나무를 감싸 앉은 듯한 모습이, 꼭 어릴적 할머니댁 길목 구멍가게를 닮아 있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던 할머니댁에서 느꼈던 온기가 이곳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기집 입구로 들어오는 손님이 비 덜 맞으라고 지붕 위에 우산 하나 걸쳐 놓은 모습에 눈길이 계속 갔다. 오른쪽으로는 기와 모자를 쓴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붉게 적힌 ‘철거’라는 글자가 몇 집 보였다. 어떤 이들이 살았을까,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처음 가본 골목에서 정을 떼야만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 자리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골목 풍경을 두 눈에 한참 담는 것이었다. 언젠가 이곳을 살았던 이들, 기억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나도 그 길을 걸었고,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기억하겠노라 다짐하며 연거푸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훗날 내가 사는 집이 처하게 될 상황을 이제는 아는 나이여서일까. 어릴 땐 새로 지어올리는 건물을 간혹 신기하게 올려다봤지, 허물어지는 집들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저기 코스모스 길이 참 예뻤는데, 이제는 완전 다른 곳이 되었어⋯⋯.”라는 말씀 뒤 여운이 주는 쓸쓸함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쌓이면서, 그 사라짐에 대한 쓸쓸함이 무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20대에 맡았던 사람 사는 내음과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그 내음이 좋지만, 사람이 사는 온기가 더 아련하게,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철거 글자가 적힌 건물들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골목에서 만난 첫 집 앞에 담아놓은 새빨간 고춧가루들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왔다. 한참을 보고 서 있는 내 표정이 참 행복해보였나 보다. 방앗간 사장님이 나오며, “고춧가루가 그리 마음에 들어요?”라신다. 절로 “네” 소리가 나왔지만, 그 외마디 대답만 하고 가기에는 내가 첫 손님일 것만 같은 너무 이른 아침이라, “네! 많이 파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외치자, “아가씨도!”라신다. 그 분 덕분에 골목 들어서기 직전에 느꼈던 그 쓸쓸함이 따뜻함으로 감싸지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떡 가게를 지나 김밥 가게로 가기 직전, ‘아파트’라는 글자가 보였다. 5층짜리 길다란 한 동짜리 아파트였다. 다시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지금 걸었던 가게들이 그 아파트 1층에 자리한 상가들이었다. 입구만이라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와, 계단을 올라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집별 우체함이었다. 하얀 바탕에 다양한 꽃들이 한 집 한 집의 우체통마다 모두 그려져 있는데, 정말 특이하고 예뻤다. 마침 2층에서 내려오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뭐하냐고 물으셔서 우체통이 정말 예쁜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별 게 다 예쁘다며 웃고 가셨다. 처음 보는 내겐 이색적인 우체통이었지만, 매일 보는 이들에게는 그러는 내가 더 이색적으로 보였는가 보다. 아파트에서 나오며 그곳 경비실 안 아저씨께 향해 인사드리자, 모자를 벗어 인사를 건네주신다. 참 따뜻한 곳이다. 아파트 창에 걸린 명태가 정겨웠다. ‘오늘 저녁에 명태국 끓여드실라나?’ 나도 배고픔이 밀려온다. 속도를 내어 걸었고, 골목 끝에 이르자 큰 도로가 나왔다. 드디어 곰탕집에 다다랐다. 곰탕 한 그릇을 시켰고, 뜨끈한 뚝배기에 나온 곰탕은 깊었다. 오늘 만났던 이곳의 사람들처럼.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새우젓이 조금 그리운 맛이었다.
도시의 미술 작품들을 보는 것도 참 좋지만, 이처럼 지하철에서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 골목골목을 걷는 것은 더 좋다. 일부러 지도에서 알려주는 목적지로의 가장 빠른 길을 두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다녀보곤 한다. 목적지에서 주는 기쁨에, 뜻밖의 만남과 즐거움을 선물로 얹어 받을 수 있어서일까. 역시 이날도 또 다른 대박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닭을 봤다.
‘느림’이 주는 소중함을 간판에 담아놓은 자그마한 카페가 있는 미아동으로 향하며 탔던 지하철 5번 출구에서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서 5분 즈음 걸었을 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퍼드덕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닭이었다. 내 무릎까지는 충분히 닿을 정도의 크기였고, 벼슬이 보였다. 수탉이었다. 그 닭은 내 앞을 지나 세탁소 앞 아스팔트 위 주차된 차 밑에 들어가 앉았다. 중년부부가 달려 오시며 그 닭 좀 몰아 달란다. 2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닭을 키우는데, 저 닭만 이상하게도 자꾸 지상으로 날아서 도망을 친단다.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닭몰이가 시작되었다. 세 명이서 길목을 막아서서 한참을 닭을 몰았다. 우리가 지칠 때즈음, 그 닭은 이제 그만 할게라는 식으로 알아서 혼자 아저씨께 걸어갔다. 닭이 우리랑 놀아준 듯한 이 묘한 기분은 뭘까. 어찌 되었든, 닭은 아저씨 손에 잡혀 다시 그 집 옥상으로 향했다. 기막힌 닭몰이 무용담을 잠시 나눈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커피 마시러.
[미아동 하늘을 날던 수닭 검거 장면: "잘 논다 간닭!"]
커피집 간판글자 중 ‘느림’이라는 단어가 참 와닿았다. 천천히 달리던 통일호 기차의 창 밖 풍경이 그려지고, 속도는 늦지만 꿈을 향해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는 내 인생 열차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을 인정받은 것처럼 푸근했다. 나는 그 집 커피를 홀라당 털어먹은 후, 맛있는 커피콩 한 주머니를 사서 나왔다. 그 콩을 갈 때 나는 향기가 다시금 나를 이곳의 행복한 기억으로 이어줄 것 같았다.
중림동의 그 길과 미아동 이 길이, 내 머릿속에는 압정으로 꽂은 듯이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 아마도 좋은 내음이 닮아서인가 보다. 훗날 내가 만들고픈 그림책 속 이곳저곳은 이 길들에서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20년 전 그날과 마흔인 오늘.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내 여행에서의 감흥 소재 거리나 찾게 되는 장소, 느끼는 방식들은 다 달라져 있어도 세월을 뛰어넘어 변치 않는 분명한 한 가지는 ‘사람 사는 정겨운 내음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20년 전 달걀 한 입 베어물며 시작한 나의 여행은, 고맙게도 마흔 살 초입에 서 있는 내 입으로도 이어져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