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네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5.08.27 무심코 들어간 갤러리에서 본 어느 작가의 붓글씨 : 뭉클한 젊음]
나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 그곳 골목골목을 걸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열심히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 있던 20대의 나. 40대를 맞이하며, 여유 있게 걸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담고픈 마음이 생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마냥 출발해버리기도, 마냥 머물러 있고 싶지도 않은 묘한 느낌이 드는 지금이지만, 어느 작가분이 쓰신 문구 ‘뭉클한 젊음’을 살아내기 위해,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본다. 내 스무 살의 바다 내음 물씬 오르는 포항 골목에서의 따스한 기억이 마흔의 조금 더 소중하고 따뜻하게 자리 잡은 서울 골목으로의 시선으로 보폭을 넓혀가는 과정을 이야기해보면서 말이다.
기차를 탈 때면 매번, 삶거나 구운 달걀을 사 먹는다. 둥근 달걀 모서리를 소금에 살짝 찍은 후 베어 문 달걀은 흰자의 부드러움을 지나 노른자의 기분 좋은 텁텁함으로 닿는데, 물 한 모금 들이켜고 나면 그 맛의 조화로움 안에서 한참을 행복해한다. 그 달걀은 20년 전 기차에 탄 내 손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습관적으로 기차간 창틀에 달걀 모서리를 치면, 항상 20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전에도 분명 가끔 기차를 타곤 했는데 내 감성을 두드리는, 기차에 대한 기억은 딱 그 해부터인 듯하다. 20년 전, 나는 20살이었다.
그 해, 대학을 들어갔고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 낯선 학교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조금씩 학교에 정이 들었고, 같이 웃는 친구 몇도 생겼다. 수업 과제물을 내고 시험에 쫓기는 어려움은 늘 있었지만, 철없이 마냥 좋았다. 내가 선택해서 다양한 교양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친구들과 학교 식당 메뉴를 연구(?)하며 맛을 토론하는 재미도 매우 쏠쏠했다. 그런데 가장 따뜻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수업 듣는 강의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 앉아 있을 때였다.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강의를 들을 때나 친구와 삼각김밥을 까먹을 때나, 아니면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만, 딱히 갈 데가 없어 강의실에 머무를 때나,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낮 시간 강의실 창 옆 의자면 참 좋았다.
20년 전 그날도 햇살이 비치는 강의실 창 옆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수요일 오전 10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라도 기억하는 건,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정신없이 졸다가, 그 시간 항상 같이 버스를 타던 이름 모를 누군가 덕분에 무사히 학교 정류장에 내렸고 다행히 출석부 속 내 이름이 불리기 전에 도착해 좋아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랬던 그날, 수업을 한참 듣다가 햇살이 조금씩 창을 채워나갈 때 즈음 문득 기차를 타고 바다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따뜻해서일까, 놀고 싶어서일까, 아무튼 나는 조용히 강의실을 나왔다. 학점을 제법 신경 쓰던 때였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나오자마자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달렸고 기차역으로 갔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찾아본 포항 가는 통일호 통근 기차 시간을 놓칠까 뛰고 또 뛰었다. 다행히 기차표를 구입하고도 역 안 편의점을 들를 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나는 당당히 들어가 달걀과 물을 샀다.
통근 기차라 불리던 통일호는 지하철처럼 마주 보고 앉는 자리도 있었고, 일반적인 기차처럼 사람 뒤통수를 보고 앉는 자리도 있었다. 나는 마주 보고 앉는 자리를 선택했고, 앉자마자 달걀을 맛나게 먹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께도 달걀 하나를 드렸다. 모르는 분이었지만, 함께 달걀을 까먹으며 기꺼이 내 기차여행의 벗이 되어주셨다.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쑥덕쑥덕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즐거웠던 것은 분명했다. “철커덩철커덩” 반복적으로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 덕분에 대화는 둘만의 비밀이야기 같았다. 기약 없는 다음을 기대한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눈 후, 나의 종착역에 내렸다. 바다 냄새가 났다. 처음 가본 도시, 포항이었다.
네댓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통일호 기차표를 끊은 후, 역 밖으로 나갔다. 분명 기차로 향한 첫 마음은 바다가 보고 싶다였는데, 그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횟집을 찾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횟집이 어디냐고 길 가던 누군가에게 물었고 죽도시장을 소개받았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사라진 용흥동 옛 포항역에서 죽도시장까지 걸었다.
죽도시장 횟집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시장 안 골목들을 굽이굽이 지나야 했다.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앞치마 양쪽 주머니에서 잔돈을 찾아 내어주시는 아주머니, 떡집에서 나온 박스를 자전거 안장 뒤 만들어둔 길쭉한 합판 위에 싣고 있는 아저씨, 야채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다듬고 있는 할머니, 장바구니에 튀어나온 파 이파리를 접어 넣고 계신 아주머니. 내 기억의 몇 조각을 더듬어 나온 이들이다. 한 장 한 장 사진처럼 떠올랐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생기 있어 보였다. 그곳 햇살도 강의실 창에 들어온 햇살과 닮아 있었다. 그 덕에 내 마음은 따뜻함을 물씬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은 점점 짙어지는 신선한 생선 냄새를 따르고 있었다. 드디어 바닥 이곳저곳에 물이 튀어 있는 생선 가게들 앞에 도착했다.
아마도 지금의 죽도시장은 20년 전 그곳과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그 당시의 횟집 골목 입구에 서면 양쪽으로 다른 느낌의 생선 가게들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회를 쳐 드린다’는 문구가 적힌 횟집들이 나란히 있었고, 왼쪽으로는 좁은 골목 뒤로 굉장히 넓은 장소에 생선 좌판들이 펼쳐져 있었다. 좌판이 끝나는 쪽에는 나지막이 바다가 보였고 굉장히 가까이 있는 큰 배가 보였다. 일단, 왼쪽으로 향했고 생선 좌판들 사이를 신나게 코를 벌름거리며 걸었다.
“아가씨, 오늘 광어 신선하다. 이리 온나.”
내생에 이렇게 길을 걷지 못할 만큼 인기 있는 날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잡힌 신선한 생선이 무엇이다며 외치는 수많은 소리를 지났다.
얼마큼 걸었을까. 나무 도마 위의 칼질 소리가 귀를 잡아끈 곳에 섰다. 비닐 소재 빨간 앞치마를 맨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께 회 떠 먹을 맛있는 생선들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몇 명이 먹을 거냐시길래 혼자 먹을 거라니 놀라신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지시더니, “혼자라도 이것저것 맛을 보고 가야지. 내가 이것저것 담아줄 테니, 이거 가지고 다시 나가서 첫 번째 보이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매운탕 해달라고 해라.”라신다. 지금 떠올려 보면, 제법 비싼 생선도 맛봐야 된다시며 회 쳐서 싸게 내주셨던 것 같다. 거기다, 우럭 대가리도 챙겨주시며 소개해주신, 그 집 매운탕이 제일 맛있단다. 그렇게 할머니가 쥐여준 검은 봉다리를 흔들며 그곳 횟집으로 갔다. “포항에서 좋은 추억 가지고 가래이”라는 할머니의 마지막 그 말씀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돈다. 그 한 마디 때문에, 아니, 그 한 마디 덕분에 포항에서의 하루가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2층 횟집에서 만들어주신 매운탕은 할머니 말씀대로 진짜 맛있었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라-나름 대식가라 자부했지만, 정말 양이 많았다-그래서 혼자 왔다고 음료수랑 멍게를 서비스로 주신 가게 아주머니께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먹자고, 양이 너무 많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저녁 장사 전이라시며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소주 반병 나눠마시며 목을 축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기억 나는 것은, 멍게 향과 함께 아주머니 아드님이 나랑 나이가 같고 죽도시장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되셨는지 들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래도 낯선 분들에게서 깊은 친근감을 느끼며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던 20년 전 그날이었다. 회 쳐주신 할머니와의 추억도 함께 얹어서 말이다.
결국, 그날 바다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되돌아갈 기차 시간이 다 되어 뛰어나왔다. 다시 시장 골목골목을 지나는데, 딴에는 한 번 지나온 곳이라고 낯익은 간판도 눈에 들어오고, 제법 정겨웠다. 아까와는 달리, 햇살은 비치지 않았고 가게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들이 보였다. 가족들이 있는 집이나 제 몸 누일 집으로 가는 거겠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햇볕의 따스함이 빠진 그 길은 나만 맡을 수 있는 사람 사는 좋은 내음으로 가득 찼었다. 여담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맛있는 음식 먹고 차오르는 행복은 으뜸 중의 으뜸이다.
다시 마흔. 그날 만났던 사람들,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생선 냄새, 바다 내음으로 상기된다. 사람이 함께 사는 맛이 무언지 배웠던, 마음이 따뜻해진 그날의 느낌들을, 내 꿈인 그림책 만들기의 또 다른 소재로 슬며시 넣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