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 일곱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20.01.14 봉덕동 큰길 가 카페: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의 공간에 서서]
3년 전 11월, 단풍이 참 고와서 걷기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읽어내려가는 동화책, 그리고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 한 편이 어우러진 전시가 열리는 작은 갤러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오르막이 연이어진 골목 계단을 계속 오르다가 왼쪽으로 깊숙이 꺾어 들어가야 보이는, 주택건물을 개조한 쥐색 대문의 갤러리였다.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제법 긴 ‘헤맴의 시간’이 여행 일정에 덤으로 왔었다. 그래서 성북초등학교 양쪽 고불고불한 골목들을 한참 걸어 다녔다.
오르락내리락, 골목이 살아 있는 동네 같아, 걷기가 재미있었다. 분명 길을 찾아야 하는데, 목적을 잠시 접어두고서 길을 구경하고 있었다. 헉헉거리며 오르던 골목에서는 기와지붕의 오목한 틈새마다 모여 있는 노란 은행잎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모퉁이를 돌 때면 커다란 나무 아래 누구나 쉽게 앉았다 갈 수 있는 쉼터가 있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젖히며 내려갈 때는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계단 위에 쌓인 은행나무잎들을 고이 모아둔 두루마리 휴지 비닐이 떡하니 있었고, 둥근 호박을 겉결 대로 잘라 집 담장 위에 차례로 놓아 햇볕에 말려두고 있는 집도 보였다. 반대편으로는 남의 눈에 띌까 싶어 몰래 담벼락에 딱 붙어 있는 듯한, 날씬한 단풍나무 한 그루도 보였다. 걸음걸음마다 가을의 운치가 자연스레 스며 있는 골목이었다. 그 운치는 곳곳의 마을 분들의 따스함이 더해져 한층 더 깊숙이 다가왔다.
큰길로 나와서 10분 정도 걷다가 삼거리로 갈라지는 신호등 앞에 섰다. 건너편에 벽돌이 멋스러운 카페 한 곳이 눈에 담겼다. 카페 창문 안으로 보이는, 줄지어 서 있는 모카포트와 커피잔들이 숨 쉬는 항아리처럼 온기마저 느껴졌다. 들어가 뜨끈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골목을 휘젓고 다니느라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전시는 예약된 시간이 있었기에 더는 그 앞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갤러리 갔다가 다시 이 길로 내려오게 되면 꼭 들려야지.’ 마음먹고 발길을 돌렸다.
내가 예약했던 시간에 갤러리 전시 관람에 참여한 이들은 딱 네 명이었던 것 같다. 함께 둘러앉아 자기 생각도 나눠볼 수 있는 전시였기에, 네 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목소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내 또래 여자분과 전시 관람을 마친 후, 길벗이 될 수 있었다. 갤러리를 나와 같이 골목을 걸어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곳에서부터 성북동성당을 지나 길상사에 이르는 길을 걷기로 했다. 돌로 쌓아둔 대문집 담벼락 아래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높디높은 담벼락 위에는 빨간 단풍나무가 있었다. 한참 가을 중인 것 같다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고,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을 따라 시선이 머문 큰 집을 보며, “아는 사람 있어요? 난방비가 어느 정도 나올까요?”라며 서로 너스레도 떨었다. 그리고는 잠시 어두운 성당 안에 들어가 침묵 가운데에,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 후, 길상사 흙길 위 박인 맷돌 징검다리까지 꼼꼼히도 밟으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기도 했다. 그곳의 단풍나무는 참 풍성하고 참 붉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앞에 포즈를 취해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기도 했다. 그 단풍나무 아래 사진 덕분에, 그날 알게 된 길벗의 목소리는 둥글다는 느낌만 아스라이 남았지만, 얼굴은 기억한다. 그렇게 식후 산책을 다니듯 편안하게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걸었던 가을 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골목을 걷다 보니, 해질녘이 되었다. 해가 들어가며 약간은 쌀쌀해졌고, 살갗에 남은 한기도 없앨 겸, 각자의 길을 가기 전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아까 봐둔 카페가 가고 싶은데 그곳으로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내 길벗은 흔쾌히 따라주었다. 내가 그 벗에게 커피를 살 충분한 이유였다.
우리는 카페 안 창가와 가장 가까운 구석자리에 앉아 몸을 녹였다. 따뜻한 물 한 잔으로 금세 한기는 사라졌고, 그 벗은 시원한 커피를, 나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원두커피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내 커피는 상큼한 꽃 향이 났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커피 한 모금에 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놓았다. 사는 곳도 다르고, 생김새도 많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를뿐더러 어제까지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누구보다도 더 깊이 있는 속내를 내비치는 길벗이 되었다. 서로 묻지도 않은 집안 이야기도 술술 흘러나와 전 생애를 훑듯이 대화를 이어갔는데, 이상한 건 참 편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각자인 듯, 그러나 나란히 함께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나의 여행길 벗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인연을 이으려 노력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마주친다면 다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날, 우리는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품어주었고, 서로의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날 그 벽돌집에서 마신 커피의 향은 우리가 머문 카페 분위기를 훈훈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내 여행길 벗의 따스한 위로도 그 향을 따라 몸에 흠뻑 배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커피 향을 맡으면, 그날 카페 조명의 밝기가 어떠했는지 느껴지고 함께했던 고마운 글쟁이 그 벗이 떠오른다. 언젠가 그 벗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 전시회에서 보았던 소책자 속 한 문구,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에 대한 변화된 나만의 해답을 함께 나누고 싶다.
혼자 마셔도 카페 안 모든 이들과 함께 마시는 듯한 느낌이, 그날 내 길벗을 만났을 때의 감정과 닮아 있어 좋아하곤 했다. 모두에게 힘들었던 2020년을 살아낸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커피 한 잔 마음 편히 나눠마시기를 바라본다.
추신: 나는 쓴맛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만다린’이라는 커피를 좋아한다. 항상 즐겨 먹었다. 그러나 서른 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 ‘만다린’ 커피를 자주 마시지 못한다. 진하게 자주 마실수록 속 쓰림은 어김없이 더 자주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고 계속 먹고 싶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면 더 소중하게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신다. 여러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히 마신다. 다만, 아껴두었던 커피에 대한 식탐을 자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