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15. #09. 잃어버리는 것들
#1. 환경과 개인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일정으로 산 지 3개월 가까이 되었다. 아침잠이 워낙 많기 때문에, 무사 출근을 위해서 근 2개월은 평일에 일절 술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에 적응이 되니 나 스스로도 여유가 생겼나 보다. 퇴근 후 맥주 한 캔 정도를 먹던 게, 조금씩 소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남에게 나를 보여야 하는 상황에, 타율에 나를 강제로 몰아붙여야만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입니까?
"그건 위잉씨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개인의 관계예요.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건 아직까지 사회에 적응해 살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소주는 싱크대를 청소하는 데에 썼다. 술을 먹지 않을 수 없다면 적어도 도수가 적은 걸 먹자는 생각을 했다. 작년 가을에 잃어버렸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 잃어버리는 것들
한창 술에 절어있던 2014년 가을.
일하는 중에 갑자기 동료 직원의 말이 간간이 들리지 않는 일이 있었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몇 분 단위로 계속 찾아왔다. 앉았다 일어나면 이명도 들렸다. 현기증도 느껴졌다. 혹시 귀지가 많이 쌓여서 그런가 싶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귀지는 별로 없었다. 고막도 멀쩡했다. 청력 진단을 했다.
메니에르 증후군.
보통 소음이나 노화로 인해 청세포가 망가진다고 하면, 보통 고음역대부터 잘 듣지 못하게 된다. 메니에르 증후군은 반대로 저음역대부터 약화된다. 뭐, 이름을 들으면 괜스레 겁나는 병명이지만, 증상의 80% 이상은 신체건강을 회복하면 자연적으로 완화된다고 했다. 원인은 건강 악화나 스트레스. 보통 큰 병치레를 해서 면역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스트레스로 '청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건강을 악화시킨 건 술의 탓이 크겠지만, 술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은 스트레스로부터 시작된 여러 감정들이 만들어냈다. 음악과 악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러다 귀가 멀고, 입이 막히고, 눈 앞이 가려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에서 부진한 게 싫어요. 그때도, 업무 지시를 잘못 들어 실수하는 게 싫어서 병원에 갔어요.
#3. 술과 약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또 뭔가를 차트에 적었다.
“그때도, 타인이 생활이나 능력을 지적하기 전에 끊었네요. 지금은 계속 술을 먹고 있는데,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없고 참 어렵네요."
모른다. 이젠 아무래도. 뭐가 들리는지, 뭐가 안 들리는지도 모른다. 술 밖엔, 딱히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음식을 겸해서 반주로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술 외엔 아무것도…
“술을 마시고 자면 절대로 수면의 질이 높아질 수 없어요. 깊이 잘 수록 꿈도 금방 잊게 되고. 위잉씨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일수록, 전에 말했듯이, 꿈의 영향이 크니까. 자는 게 두렵고 힘이 들면 그건 - 먹는 것 이상으로 더 괴로운 일이에요. 술을 계속 습관적으로 먹으니 더 센 약을 처방할 수도 없고.”
아마 괜찮아지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왜냐하면 - 더 이상 술을 사 먹을 돈이 없다. 술을 살 돈으로 병원비를 냈었고 지금도 그러니까.
#4. 블랙 코미디
아즈마 히데오의 <실종 일기 2: 알코올 병동>은 작가 본인이 1998년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병동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그린 만화다. 중독이란 정신 건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왠지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알코올 의존은 중독의 범주에 들지도 못할 만큼 경미한 것임을 깨달았다.) 작가 본인의 경험이라 그런지 몰라도, 치료 과정을 아주 덤덤하게 - 때론 우습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지금도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태. 병원에서의 치료를 완료했다 하더라도, 중독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두 번 다시 발현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웃으면서 읽다가도 괜히 긴장감에 침을 힘겹게 넘기게 된다.
의존증에서 회복하는 사람이 적은 건 병을 '부인'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존증이라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다시 음주를 반복하고 마는 것이지요. 물론 가족은 환자의 알코올 의존을 막고 음주를 컨트롤하려 합니다. 이 피해자이자 지원자인 사람을 음주의 '이네이블러(enabler)'라고 합니다...(중략)
... 가족은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환자를 컨트롤하지 말고, 이네이블링하지 말고, 마시든 말든 내버려 두세요. 마침내 본인이 신체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어떻게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바닥을 쳤다'고 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내민 손을 잡아 주면 됩니다. (내버려 두면 죽으니까.)
-아즈마 히데오, <실종 일기 2: 알코올 병동>, pp.51~53, 출판사 세미콜론-
저자가 말하는 의존증과 음주에, 우울증을 대입해서 읽었다. 책장 하나하나가 꽤 무거웠다.
#5. 그걸 내가 알면 이러고 있을 리가 없잖아
술을 많이 먹던 때에도,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도, 지금 병원과 회사를 번갈아 다니는 때도 줄곧 혼자였다. 그때의 괴로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 손을 내밀었는데도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아서'였을까? 그렇다고 술을 더 먹는 것도, 더 망가지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했다.
가족은 있다. 같이 살지 않으므로 내 손에서 술병이나 칼을 뺏을 수 없을 뿐.
늘 가족들은 말한다. '젊을 때 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못 쓴다', '약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고. 그럴 땐 눈물이 얼굴 속에 가득 차서 터져버릴 것 같은 먹먹한 고통이 느껴진다.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상당히 에둘러 말해두었기 때문에, 나 조차도 '다들 정신과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긴 한가?'라는 의문도 든다. 마침내 '네 의지로 해내야지.'라는 말로 종지부를 찍으면 그땐 길가의 전봇대라도 발로 걷어차지 않고서야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겐 결코 화낼 수 없어서, '노력할게요'라고 말하고 끊기 일쑤다.
저자는 술로 채우던 감정과 마음의 구멍을 만화로 메우는 중이라고, 짤막하게 코멘터리를 달아두었다. 가족과의 통화를 마치고 맥주 한 캔을 뜯었다. 우울증이란 참 성가시다.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가도, 또 죽기는 싫어서 발버둥 치게 된다. 그런 나도 나 자신이 싫다. 내가 봐도 한심하고 괴롭다. '넌 왜 그러니?', '그러지 않으면 되잖아.', '그런 생각을 왜 해?'라고 물으면 '나도 몰라'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우울증이란 그런 병이다. 뭐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괴로워 미치겠지만 인정하기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병.
빈 속에 부어서인지 맥주인데도 제법 취기가 오른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라고 주정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약은 먹지 않았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