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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r 21. 2016

정신적 왼손잡이 #10. 자국

151031. #10. 자국

지난 화(#03. 그때 왜 그랬어)에서 건져냈던 고등학생 때의 기억들은 더 또렷해지기 전에 다시 묻어버렸다. 언제 또 불쑥 튀어나올지 몰라서 더 깊이 묻었다. 아예 이대로 잊혀버리길. 교복에서 벗어난 지 근 1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 이게 뭐람.


가을이 제법 짙어진다. 날씨가 건조해지면 호흡기관이 덜컹거린다. 어릴 때부터 호흡기가 약해서 천식이나 기관지염, 목감기와 비염을 달고 살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얼굴의 절반을 덮는 방한대를 쓰고 병원으로 향한다. 제법 방한대를 쓴 사람들이 거리에 많다. '다양한 색깔의 방한대를 사 볼까?'라는 생각을 슬쩍 하면서 병원 문을 세게 민다.



#1. 움찔


"위잉씨가 아침에 먹고 있는 약, 장기 복용해서 좋은 약이 아니에요."


그렇다. 약대생 D도 나에게 같은 말을 해줬다. 향정신성 의약품에 해당한다. 의사의 처방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다. 영수증을 끊어보니, 정신의학과에서 처방을 받아도 비급여 약품이라 약값도 비싸게 나왔다.  


"초기에 효과가 좋기 때문에, 보통 3개월 정도만 처방하고 그 후엔 줄이거나 대체하죠. 근데 이미 내게 오기 전에 위잉씨는 이 약을 1년 가까이 먹고 온 상황이어서... 이제 이 약의 효과가 느껴지지 않을 때도 됐는데."


아직까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엔 식이 장애나 강박 장애에 효과가 있으니 체중이 많이 떨어졌을 텐데, 지금은 어때요? 이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의 가장 큰 차이가 뭔가요?"


잠이다.



#2. 괴로움은 저울로 쟬 수 없다


  흉악 범죄의 피해, 자연재해, 전쟁 등 큰 사고를 겪어야만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끔찍함의 정도로 판단할 수 없다. 바다에서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본 사람은 물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계단에서 굴러서 다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계단에서 괜스레 긴장한다. 시시해 보여도, 개인에겐 어쨌거나 괴로운 일이다. 나의 경우엔 '졸음'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다. 높은 수준의 교육과 엄격한 관리로 이름난 사립학교. 1학년 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밤 10시 30분까지 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지금 돌아보면 예민한 내 성질머리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

   피곤한 생활은 둘째 치고,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일이 너무 벅찼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니 수업 수준도 당연히 높았다. 도저히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다. 초조했다. 한편으로 지루했다. 학교 생활은 무엇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기숙사에 돌아와도 공용 샤워실 자리다툼을 하거나, 밀린 빨래를 하다가 널브러지기 일쑤. 

  수업 시간에 조는 일은 당연히 많아졌다. 커피를 열심히 마셨다. 학교에서 밥을 억지로 먹이지 않았다면 필시 위에 구멍이 뚫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훗날 장에 구멍이 뚫렸지만.) 커피가 아니라 사약이라고 할 만큼 진하게 타서 먹었다. 하지만 잠은 달아나지 않았다. 



#3. 잠은 원수


   수업 시간에 졸 때마다 맞았다. 교탁으로 불려 나가 맞을 때도 있었고, 문제를 풀다가 졸면 선생님이 자리로 다가와 직접 때리기도 했다. 잠이 오면 교실 뒤의 사물함에 책을 올려놓고 일어서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제발, 제발, 잠아, 오지 마라. 난 수업을 듣고 싶단 말이다. 수업을 들어야 공부를 따라갈 수 있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진단 말이다. 카페인과 내 애원은, 슬프게도 통하지 않았다. 맞아도 잠은 달아나지 않았다.    나중엔 잠을 쫓으려 일부러 제도 샤프로 내 허벅지를 쑤시기까지 했다. 허벅지가 피떡이 될 때까지 쑤셔도 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맞았다. 손으로 등을 맞았다. 머리에 꿀밤을 맞았다. 목덜미를 맞았다. 교편으로 머리를 맞았다. 꼬집혔다. 머리를 잡아 뜯겼다. 계속 맞아도, 잠은 깨지 않았다. 저녁에 운동장을 돌며 운동도 해보고, 커피도 더 마셔봤다. 주말에 넉넉히 잠을 자도 다시 수업시간만 되면 졸렸다. 그리고 계속 맞았다.


 괴로웠다. 잠이 싫고, 잠을 자는 내가 싫었다. 나중엔 '수업시간에 너무 존다'는 가정통신문까지 날아왔다. 진짜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닐까 싶어서 부모님과 내과에 갔다. 피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차라리 기면증이라서 치료해야 하는 거라고 해줬으면 했다. (물론 이 말을 했다가 부모님께 크게 혼났다.) 병이라고 진단서라도 끊어주면 - 적어도 학교에서 덜 맞을 테니까. 내가 나를 좀 덜 싫어할 테니까... 결국 그 날은 내과에서 비타민 링거만 맞고 돌아왔다. 



#4. POWER OFF


 전국 단위의 대회에서 2등 상을 탔다. 이름이 호명되자 앞으로 나갔다. 상을 받고, 교장 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다시 내려왔다. 같은 분야의 대회에서 교내, 교외 상을 몇 번 수상했다. 상장 수상이 이루어지는 전교 조회일은 매일 두들겨 맞던 내가 그나마 호강하는 순간이었다. 못해도 입선 상이라도 받아오니, 선생님들은 그 분야의 대회 소식이 들려오면 날 먼저 찾았다. '매일 수업시간에 졸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저런 재주가 있구나'라는 인지도가 생겼다. 나도 조금은 숨 쉴 틈이 생긴 게 아닐까. 조금 안도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이었다. 그 날 아침도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시간에 졸았다. 수학 선생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만 졸라고 야단쳤다. 나는 일어나 책과 연필을 들고 교실 뒤로 나가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잠을 깨려고 일어난 급우들 몇몇이 서 있었다. 책을 챙겨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위잉, 넌 앉아. 수학 안 해도 된다. 그냥 자."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넌 상 받은 걸로 입학 사정관제 써서 대학 가면 되니까, 수학 안 해도 돼. 그냥 자, 계속 자. 쭉~ 자."


... 아닙니다.


"뒤에 나가 서 있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자라니까?"


.....(아닙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그 학기의 여름방학이 돌아왔고, 나는 학교를 떠났다. 

시시해 보여도, 개인에겐 어쨌거나 괴로운 일이다. 괴로움은 저울질 할 수 없다.


#5. 자국


 '대학 강의 시간에는 졸아도 아무도 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 아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몸이 아는 데엔 3년이 걸렸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그랬다. 수강 인원이 100명이 넘는 대강의실에서도, 혼자서 경기를 하며며 잠에서 깼다. 강의 중에 졸다가 깰 때면 항상 머리를 팔로 감쌌다. 옆 자리에서 동기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 깨워주면, 그 손길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뒤틀며 일어났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좀 심해서 '히익!'하고 소리를 낸 적도 있다.


 졸음과의 싸움은 처절했다. 한 번은 융통성이 좀 없는 기관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쉬는 시간도 알려주지 않았다. 업무도 지루했다. 너무 힘들면 휴대전화 알람을 한 5분 정도 맞춰 놓고, 화장실 양변기 위에 앉아 쪽잠을 잤다. 화장실에서 잠을 청한 일은 그 후로도 꽤 많았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하는 비애감과 함께 일어나면, 또다시 지루하고 괴로운 잠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지금의 회사는 분위기가 꽤 자유롭다. 신기할 만큼 자유롭다. 이른 아침이나 식후엔 책상에 엎드려 10분 정도 잠을 청하는 사원들이 많다. 급한 업무가 있는 게 아니면 그들을 깨우지 않는다. 잠을 깨기 위해 담배를 피우러 간다던지, 커피를 사러 간다던지 하는 일들도 '여차 저차 해서 잠시 다녀오겠다'고 팀원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 


 인터뷰 원고와 씨름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잤다. 15분만 잔다는 게 40분 가까이를 잤다. 다행히 내게 딱히 급한 업무는 없었다. 괜히 '나태해 보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일어나자마자 동료 직원들과 사원 분들께 사과했다, '낮잠을 많이 자서 죄송합니다!'라고. 


"에, 위잉씨 낮잠 잤어요? 난 자는지도 몰랐는데. 뭐, 요즘 피곤한가 보네~ 이따 같이 커피 사 먹어요."


지금은 낮잠에서 깰 때 경기를 일으키진 않는다. 단, 일을 하는 중에 잠이 오면 공포에 상응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느낀다. 깨야 한다. 무조건. 자면 안 된다. 제 발 저려서 낮잠을 이실직고할 정도로, 잠이 죄스럽다. 머리와 몸은 나았지만, 아직 정신과 생각 속엔 그 '자국'이 남은 게 아닐까. 잔다는 이유로 열심히 맞았던 그때의 자국.



#6. 진작에


"잠을 안 오게 해주는 게 좋다는 거죠? 업무의 능률이 오르는 것. 근데 약의 효과보단 그냥 커피를 마시고, 약은 바꾸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했으면 해요. 약을 먹으면 정신이 드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이 약이 신경을 예민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잠을 깨는 게 목적이 아닌 약이라, 그게 좋은 효과도 아니고."


내가 이 약을 처음 처방받은 것은 4학년 2학기 때부터였다. 이른 오전 수업에, 똘똘한 정신으로 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진작 내가 이 약을 먹었다면 대학교 4년 간 수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커피값을 다 합쳐도 약값이 더 쌀 것 같은데... 묘하게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주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는 이미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 기민함을 목적으로 약을 먹을 순 없어요. 커피로 어떻게 안 될까요? 그래도 계속 약, 먹어야겠다고 느낀다면..."


처방전을 받았다. 4주치. 전과 같은 약이다.
약봉지가 두껍다. 괴롭다.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마다,  그 약을 삼킨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그 약. 회사에 도착해 아침 업무 회의를 마칠 쯤이면, 약 기운이 온몸의 핏줄을 타고 슬슬 퍼진다. 그런데도 왠지 더 찌뿌둥하다. 기지개를 켰지만 그리 그리 시원하지가 못하다.  오늘 점심에도 역시 커피를 사러 가야겠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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