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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r 09. 2016

정신적 왼손잡이 #03. 그때 왜 그랬어

150624. #03. 그때 왜 그랬어


      애써 잊었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는 건 괴롭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진단할 수 있다면, 진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 뽑아야 했다.        

   당시 내 고교시절을 함께했던 몇 안 되는 동창 J에게 어렵사리 연락을 취했다. 도대체 그때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겼던 건지, 그들은 누구였고  내게 그런 행동을 했던 건지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J 역시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나는 적응하지 못해 2학년 때 학교를 떠났고, J는 무사히 졸업했다. 

시간이 흘러 사범대생이 된 J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로부터 에너지가 넘쳐서, 누군가를 충분히 보듬고 달랠 만한 배포가 있다. 난 그런 그를 부러워하면서 동시해 타박했다.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도 했다가, 넌 그런 선생이 되면 안 된다, 고 참견질도 했다. 내 멋대로 인 나를 향해 J는 웃으면서 술잔과 시간을 내주었다. 나의 용건을 들은 J는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웃음기가 가신, 애써 웃어주려는 J가 달라 보였다.  


  필동 인근의 작은 술집에서 서로 술잔을 채웠다. J는 조심스레, 그의 판단과 생각을 토대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떻게든 조심스레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이 보였다. 잊고 싶었던 것을 다시 알아 새기느라 매우 고통스러웠다. 술이 넘어가면서 식도를 확, 긁어댄다.



#1.  왜 하필 나  

 

        J는 10대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 얼마나 섬세하고 때론 잔악한지, 무식하고 비열한지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잔을 비우며 고민했다. 누구나 똑같이 힘들었는데  열일곱 살의 내가 너무 멘탈이 약해 엄살을 부린 것이었나? 진짜 그 애들이 나빠서 누구라도 나만큼 괴로웠을 상황이었나? 

  J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그저 지금의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신경 쓰라고 했다. 

  

이유는 그냥이었다.

 대체 왜 하필 나였을까.   


지금 그들은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 몇몇은 졸업도 했다. 걔 중에는 경찰대를 나온 사람도 있다. 의대생도 있다. 금수저 문 덕택으로 사업하는 사람도 있다. 


   악성 난시였던 내 안경을 숨겨서 수업을 못 듣게 했던 사람. 쉬는 시간마다 축구공을 내 머리에 던졌던 사람. 발표 중에 내 별명을 불러 창피를 준 사람. 그리고 날 도와주지 않았던 선생님들은 부록 (고교 내내 수업시간에 존다는 이유로 열렬히 맞고 괴롭힘 당했으므로, 난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강의실에서도 종종 경기를 일으켰다.) 왜 너희는 날 괴롭혔을까. 왜 선생님들은 날 구해주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 시절의 나에게 뭔가 하자라도 있길 바랐다. 내가 그들에게 위해를 끼쳐서 그들이 내게 보복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았다. 


 정말 어처구니없고도 서럽게도, 이유는 '그냥'이었다. 그냥 내가 만만해서. 나를 놀리고 괴롭히면 재미있어서. '그냥'이었다. 서럽고, 어이가 없었다. 



#2. 그런 말 하지 마

 

  난 술을 많이 마시면 목소리가 잠긴다. 고함을 몇 시간 지른 사람처럼 목이 쉰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낄낄 웃다가, 머리카락도 한 번 쓸어 넘겼다. J는 묵묵히 잔을 맞부딪혀주었다. 빈 잔이 늘어 갔고, 우린 좀 더 독한 술을 마셨다. 저녁 식사를 겸해서 안주를 먹었다. 나중엔 독한 술을 아무것도 곁들임 없이 목에 털어 넣었다. 그때 그 사람들을 욕하고 미워하기를 몇 시간. 반쯤 테이블 위로 무너져 있는 나를 보고 있는 J에게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너무 멘탈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 건 없어. 누구에게나 괴로움의 정도는 다른 거야. 남이 보기엔 아니어도 네가 괴로우면 괴로운 거야.


 "차라리 고등학생 때 아주 심하게 이지메 당해서 몸 어디라도 다쳤다면, 지금의 괴로움에 꽤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


"어디 다쳐서 못썼던지. 남들이 들으면 바로 '아, 힘들었겠구나'라고 알만하게 괴롭힘 당했다면 - " 


 ... 그런 말,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너무 허무하고 어이가 없어서 못 참겠다..."


... 일어나자. 차 끊긴다.


   웃지 않는 J의 얼굴을 본 건 오래간만이었다. 
  J와 헤어진 저녁. '집에 잘 가고 있느냐'는 J의 메시지에 답장하려다 그만 잠들어버렸다. J는 다음 날까지도 메시지를 보내 나의 생존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독서실로 돌아갔다. 

  



#3  완결되지 못한 문장들


"그냥, 이었대요."     


결론은 '그냥'이었고, 나는 억세게 운 나쁜 인간이었다. 그녀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표정이다. 나의 부모님에게서 혹은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보고 싶었던 그 모습. 날 제발 가엾게 여겨달라고 그렇게 애걸했는데도 보지 못했던 그 표정... 그녀는 그 점도 소견서에 친절히 적어주었다. 단순히 사춘기에 누구나 겪는 -왕따든 혹은 일진 짓이든- 그런 일이라고 하기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의 독성이 크다. 물리적 폭력으로 인한 가학의 경험은 전혀 없다. 그러나 계속되는 나의 망상과 악몽은 자꾸만 나를 수척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성, 자존심, 자존감, 삶의 선이 자꾸만 흐려져서..."


     그녀는 내게 술을 먹지 말란 말은 하지 않았다. 나를 계속해서 걱정했지만 '술을 먹은 날엔 취침 약을 먹지  마라'는 복약지도를 전할 뿐이었다. 

     난 예전보다 더 , 그녀의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 끝을 계속해서 흐렸다. 말을 매듭짓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 하는.' , '~하게 된...'식으로.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가 표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알아들었다. 나를 잘 알았다. 다그치고 혼을 내면 더 할 것, 더 엇나갈지도 모를 사람이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병원을 한번 더 찾아가 보고 약을 조절하거나- 혹은 상담을 좀 더 길게 하는 개인 의원들을 찾아가 보는 쪽을 권해주었다. 다소 멀긴 하지만 그녀는 친히 좋은 병원을 소개해주었다. 그게 분당이었든 일산이었든- 거리가 얼마였든 들를 의지는 충분했다.



 

#4   내게도 한 사람이라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말할 필요도 물어볼 필요도 없으니 누구든 한 번쯤 척추와 늑골이 뻐근할 만큼 세게 안아줬으면 좋겠다. 여름이라 몹시 징글징글하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를 세워두고서 동네 천변에 쭈그려 앉아 지켜봤던 물오리떼가 생각난다. 풍성한 깃털 덩어리들이 둥실 거리며 함께 떠 있는 모습. 그렇게 사람도 서로 몸과 체온을 비비며 사는가. 사람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면- 내게도, 한 사람이라도 어디 없을까, 하는 간절함에 눈 앞이 흐려진다. 오른손은 계속해서 술을 따르고 있다.


 술을 마시면 꿈도 안 꾸고 잘 잔다. 나는 내일의 내가 몹시 궁금하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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