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Mar 06. 2016

정신적 왼손잡이 #02. 우울의 기원

150618. #02. 우울의 기원

      

자전소설이나 수필은 논픽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픽션이다. 아무리 내가 나의 과거를 회상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에 따라 기억들이 가공되고, 배열되는 순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으므로.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난 과연 의사에게 얼마나 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허언은 아닐까... 


마스크를 낀 내 얼굴을 다시 한번 스치듯 보았다. 예전보다는 눈의 초점이 많이 돌아온 것 같다. 분명 좀 더 잘 살고 싶다. 삶에 온갖 미련이 가득하다. 



#1. 영원히 모를 의미


    몇 번 약 시간을 거른 탓인지 무엇인지 다시 힘들어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라서 내 마음이 힘든 것인지 짜장 알 수 없었다. 술을 한 삼 사일 연이어 마셨다. 사람을 불러 함께 마시다가 집에 돌아오면 혼자서도 마셨다. 자다 일어나서 또 마셨다. 


  어느 날은 친구 P와 술을 마시면서 하소연했다. 나는 뭘까, 내 삶은 뭘까. P가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답했다.


내가 나를 다 알면  그때는 죽는 거야. 

삶이 뭔지 다 알면 그때는 살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 죽는 거라고.

그땐 죽어도 되는 거야. 


  즉 영영 모를 거라는 뜻이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고, 다시 우린 잔을 맞부딪혔다. 킬킬거리며 '우리가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웃다 헤어졌다.

       메르스가 여전하다.  병원 입구에서 다시 체온을 측정했다. 시원하게 손 소독도 했다.



#2.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포


  내 영양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야채와 과일은 고사하고 쌀을 먹어본 기억도 손에 꼽는다. 입맛이 좀처럼 없어서 원두커피나 술, 물, 탄산수나 우유 등 음료만 마셨다. 그나마  씹어먹을거리로는 빵 정도만 먹었다. 

  전화 한 통화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계속 미뤘다. 조금만 힘들어도 친구들을 불러 징징대고 털어대는 건 내 주특기였다. 이젠 그런 말을 할 힘조차 없을 만큼 현재가 버겁다. 앞뒤 전후좌우 사정을 다 설명하기도 귀찮다. 힘겨운 감정들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그땐 입부터 막히나 싶었다. 내 몸뚱이, 존재,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세계가 너무나 무거워 눈꺼풀도 입술도 아무것도 열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식사와 잠처럼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절망은 매미 울음소리처럼 지루하고 요원했다. 난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그걸 할 수 있는 도구도 모두 집에 갖춰져 있다. 좁아터진 자취방엔 책과 컴퓨터, 통기타와 화구도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떤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내가 살아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살아있다는 자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디지털시계 뿐이라서, 집 안엔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이따끔 몸을 달싹거릴 뿐. 내 심장소리도 숨소리도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울증이 왜 무서운지 알았다. 

  흔히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라고 은유하지만 내가 실제로 느낀 것은 동물 이상의 '괴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공포-'메두사'가 제일 적확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지금 이게 꿈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내가 죽은 건 아닌지. 확인해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빈 소주병 하나가 책상 위에 뒹굴고 있었다. 뚝, 뚝, 하고 액체가 흘러 떨어지는 묵직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서, 목구멍을 향해 빠르게 약을 털어 넣었다.

병원 입구에 서서 잠깐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힘든지  말할 수 없었다. 지난 주보다 경과가 나쁘다는 말 한 마디만 했다. 난 그녀가 먼저 내게 질문을 한다면, 그 질문에 답하는 것부터 말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상 위의 갑티슈는 언제나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고 책상은 깨끗했다.


  

#3. 해결될 수 없는 삶

 

        한국의 20대 대다수는 취업에 관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무도 그걸 우울증이라고 인정하지도, 지적하지도 않아서 그럴 뿐이다. 그래, 막말로, 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벌 수 있다. 학부생 때 21 학점을 수강하면서 동시에 4개의 아르바이트까지 해 봤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정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총력을 다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아 전문가를 찾아온 것.) 


    슬프게도, 가족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엉뚱한데에 화를 내는 셈. 본가를 떠나 서울살이 한지가 꽤 되었으나, 집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여전히 난 '걱정거리'다.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지도 않고, 걱정거리가 되기도 싫다. 이 부담감은 무직인 지금의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가족들은 내게 취업에 대해 캐묻거나, 나의 지금을 나무란 적이 없다. 모든 부담, 모든 괴물은 내가 만들고 있다.  


  문제행동이 격화되면 그땐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난 입원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뜻을 강력히 밝혔다. 생계가 정지되어선 곤란하고, 그만한 입원비도 없다. 3년 전 급성 장염으로 열이 39도까지 치솟던 날이 떠올랐다. 갖가지 검사를 받는 중 몇 번이고 어지러워 주저 앉았다. 그날 새벽 화장실에 갔다 오다 일어선 채로 기절했다. 아, 정말 죽을 것 같다, 죽는 건가, 라는 절망을 느끼며 혼절하는 와중에도 - 응급실 치료비를 지불할 수 없는 내 통장을 걱정했다. 멍 하니 서있다가 눈을 까뒤집는 날 보고, 놀라 뛰어오던 간호사분들이 떠오른다. 휠체어를 처음 타 봤다. 양 팔은 해열제와 진통제를 투약한 주사바늘 자국으로 가득했다. 기절하던 순간에 마지막 순간에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던 게 아련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부디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내게 '부탁'했다. 무리한 부탁일 줄은 알지만, 본인이 문제라고 느낀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격화될 염려는 적은 편이라고, 그러니 좀 참아볼 것을 권했다. 다음 주까지 난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야간에 복용하는 약에는 항불안제가 추가되었다.

"우울감에 괴로워하다가 문제행동을 일으키거나, 술을 마시거나 잠을 못자는 것 보다 - 차라리 약을 먹고서라도 잠드는 것이 더 나아요."

  


#4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

   가족을 비롯해, 내게 주어진 삶의 환경으로부터 굳어진 것들은 이제 와서 단 번에 고칠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내 문제행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  

"혹시 유년기에 물리적으로나 성적으로나 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가족이든, 친척이든. 아니면 학창시절이나, 애인과의 연애 중에서든 어떤 경험으로든요."

꼭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없이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없다. 가족들 간에도 체벌, 폭언이 오간 적 없었고 부모님의 부부싸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즉 가정 안에서 위협을 받아본 적은 없다. 외려 난 겁쟁이라서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무서운 영화조차 보지 못하고,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천천히 시곗바늘을 돌리다가, 멈춰 섰다. 물리적, 언어적 폭행 없이도-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엔 참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난 고등학생 때 전학을 했다. 전학하기 이전의, 1년 반 정도의 기억은 거의 삭제되었다. 그것을 잊는 일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여태껏 세상이 아름답고, 나는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생각 하나로 살았던 10대의 세계가 격변하던 시간. 그때의 괴롭힘-혹은 나의 부적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어려웠다. 


   말했듯, 자서전은 픽션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내 삶을 기억하고, 내가 글로 쓰고 다듬고 싶은 대로 삶의 기억이 재배열되기 때문이다. 다만 재배열할 기억조차도 없었다. 그 부스러기들 뿐이었다.  그때의 교복, 체육복, 학생증, 명찰 등을 모두 버렸었다. 나 스스로의 패기 있는 용단이었지만, 가족으로부터 '실패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그 시기. 일시적인 실어증에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들은 속에 켜켜이 쌓여서 언제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때마다 벽에다 몇 번씩 머리를 박아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그때 뭔가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이나 감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을 좀 더 이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상담시간은 종료되었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