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왼손잡이 일상 4컷 일지 #우울증과 식욕
먹는 즐거움을 언제부턴가 잊어버렸다. 약을 먹으면서 생긴 일이다. 음식을 보고 기뻐하는 일도 없고, 배가 고파도 뭐가 먹고 싶은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점심은 팀원들이 먹는 음식을 따라서 먹는다.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라면 '날고기', '구운 고기', '따뜻한 것', '바삭한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의 이름을 말하기 어렵다.
우울증과 함께 식이 장애도 심해졌다. 가을에 겪었던 습관성 알코올 섭취가 겹치면서 소화기관이 약해진 것도 한몫. 그래서 식욕을 조절하는 신경 안정제를 함께 처방받고 있다. 치료를 시작한 후 한 끼도 제대로 먹는 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무엇이건 먹고 나면 '맛있다!', '잘 먹었다!', '기분 좋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마치 무슨 지우개라도 씹어먹었던 것처럼 기분이 썩는다. 속은 더부룩해진다. 그리고 요즘엔 음식을 먹은 후의 끝 맛이 '비리다'는 느낌까지 종종받는다. 입맛이 계속 까다로워진다. 생활이 더 피곤해진다. 그렇게 참아야 할 게 더 많아진다.
P.S. 아무런 생각 없이 덥석 먹는 건 맥주와 커피 뿐.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모처럼 저녁식사를 했다. 아예 비린 것을 먹자는 생각으로 연어초밥을 사 먹었다. 초밥은 그나마 덜 괴로운 음식. 음식을 이렇게 먹는데도 생각보다 몸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신체의 가성비가 몹시 나빠진 건지, 아니면 강인해진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