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Mar 18. 2016

정신적 왼손잡이 #08. 성인의 꿈

151003 #08. 성인의 꿈

  내가 저녁에 복용하는 약에는 신경 안정제가 들어있다. 이 약은 현재 1년 넘게 변함이 없이 꾸준히 먹고 있고, 내성은 없는 건지 시간만 잘 맞춰 복용하면 그런대로 잘 기능하는 편이다. (수면 유도제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틈도 없이 나른해진다. 덕분에 야식도 잘 먹지 않게 됐다. 침대에 슬며시 기대면 여차저차 잠들게 된다. 

  밤 새고 공부하는 것도 대학교 3학년 때부턴 잘 되지 않았다. 원래 잠이 많기도 하거니와, 잠의 소중함을 그 무렵에 깨달았다고나 할까. 덕분에 난 아주 조금, 스스로에게 나른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었지만 - 타인으로부터 ‘보기보다 게으르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1. 어른의 꿈


  어린이의 꿈은 보통 그 시점에서 본 것들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나중에 추상화와 상상이 가능해지면 그 후로는 희망사항이 나타난다. 꿈에 포켓몬스터가 나왔으면 좋겠다거나, 하늘을 날고 싶다거나. 어릴 때 디즈니의 <피터팬>을 보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싶다며 하늘을 나는 내 모습을 크레파스로 그려 머리 맡에 놓고 잤었다. 악몽은 보통 그 쯤에 무서웠던 것이 - 동네의 큰 개에게 물릴 뻔했다거나, 계단에서 넘어진 일, 뜻하지 않게 본 공포영화, 치과에 간 경험 등-나타나는 경우.  

 

 "성인의 꿈은 보통 평소 생각하던 것들이 나타나요. 강하게 생각하던 것. 걱정이면 걱정이, 분노면 분노가 나타나요. 위잉씨가 걱정이나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면 그런 것을 느끼게 할 장소나 사람들이 나타나 그런 상황을 많이 연출하는 꿈을 꾸겠죠."

  

  성인의 꿈은 상징의 세계다. 평소 걱정하던 것, 염두에 두던 것이 기묘한 이미지와 상황으로 재현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불현듯 솟아 나기도 하고, 심신이 좋지 못하면 괴로운 꿈을 꾼다. 특히 섬세한 사람들은 꿈의 이미지와 감각까지도 선명해서, 수면의 질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꿈 때문에 하루종일 곤두서있거나 울적해있기도 한다. 그녀에게 ‘잠 드는 게 무서우면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징징댄 적도 있다. 내 꿈은 올컬러에 HD 뺨치게 선명하고 3D MAX 못지 않게 감각도 생생하다. (심지어 3개 국어 지원도 된다.) 게다가 꿈에서 본 상황이나 사물, 분위기를 실제로 마주하는 일도 잦다. 악몽이 굉장히 신경쓰이는 이유는 그것이다.



#2. 죽는 꿈


  죽는 꿈을 많이 꿨다. 다양하게 죽었다. 처음엔 괴물에게 머리카락부터 잡아뜯기고, 거대한 석궁 화살에 배가 관통 당했고, 귀신에게 목이 졸렸다. 차차 꿈은 더 잔인하고 정교해졌다. 납치당해서 협박에 의해 자살하거나, 영화 <쏘우>처럼 내 목숨이 담보로 잡혀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꿈 속에서 자살과 자폭도 많이 했다. 

끔찍하지만, 대략 이런 이미지였다. 

 식칼을 목에 꽂고, 형광등 전깃줄에 목을 매달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그때마다 무서웠지만, ‘죽는 꿈은 길몽이다’며 연금복권이나 한 장 사는 걸로 잊어버리곤 했다. 


그 후로는 죽지도 않고 아주 무한정 고통스럽기만 한 꿈을 꾸었다. (대체  내 무의식엔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싫어하는 사람과 다투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지는 꿈이나,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데도 내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꿈이나, 내가 정말 끔찍하게 싫어하는 방식으로 몸 어딘가를 다치는 꿈.


  특히 가장 우울할 때엔 무직이기 전, 일했던 직장의 상사와 꿈에서 질리도록 싸웠다. 뭐라도 해 보려고 기타를 샀을 때는 손가락이 죄다 부러지는 꿈을 꿨다. 최근엔 눈에 우산 살이 박히는 꿈을 꿨다. (‘눈’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하기로.)



#3. 애증의 찌꺼기


 무직일 때, 무력감이 아주 극에 달해서 ‘약? 그런 거 이젠 나같은 쓰레기한테 소용 없잖아’라며 폭음했다. 거기에 '에라 모르겠다'하며 약도 때려 넣었다. 다음 날은 죽을 맛이었다. 그런 짓을 몇 번 했으니, 위장이든 어디든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마셨던 이유는, 만취하고 잠이 들면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을 꿨어도, 다음 날 아침엔 숙취 때문에 꿈을 빨리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저녁에 먹는 약은, 술 마신 날엔 먹지 마세요. 약효도 떨어지고 간에 무리가 가요...”


 당시에, 헤어진 애인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잊지 못했다. 내가 차인 입장이라 당연히 마음을 그 사람보단 느리게 거두겠지만, 다른 애인들보다 그 사람의 기억이 꽤 진했다. 꿈에서 계속 그 사람이 나왔다. 처음엔 ‘그래, 내가 아직 못 잊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정도 마음도 추스리고 일상을 열심히 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중에 그가 나오는 꿈을 꾸면 - 아침부터 힘이 쭉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지난 겨울 쯤 부터는 그가 꿈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잔 여름, 엄청난 악몽을 꿨다. 헤어졌던 애인과 내가 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 사람은 그 때 즐겨입던 흰 맨투맨을 입고 있었고, 지금도 잠옷으로 입는 갈색 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엎드려 그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침대머리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 사람이 내 얼굴과 머리, 볼을 천천히 만졌다.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난 어색하게 그 손길을 피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계속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 왜 피하냐고 싱글싱글 웃기까지 했다. ‘겨우 잊었는데 왜 그러냐’며 그 사람의 손을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이 서슬퍼렇게 변했다. 그 사람이 ‘피식’ 웃었다. 


너, 아직도 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아니.” 라고 말하면서 깼다. 


 잠결에 외친 말이 목소리가 되어 내 귀로 들려왔다. 그것은 깊은 곳에 박혀있던 돌을 마침내야 뽑아낸 것처럼 힘겹고도 세차게 튀어나왔다. 꿈의 잔상이 번쩍, 하고 지나갔다. 나는 내 침대에서 깼다. 꿈에 나왔던 침구와 쿠션도 모두 같다. 기어이 참고 애써 잊고, 웃으려고 노력했던 실낱같은 노력이 ‘피식’, 하고 쓰러졌다. 냉장고로 걸어가 소주를 꺼내면서 생각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깼다. '아니'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를 내가 듣고 일어났다. 


내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을 보고 깼어야했는데. 


화장실에 가서 눈곱을 떼고 가래침을 한 번 뱉었다. 침대로 돌아왔다. 시끄러운 예능프로그램을 틀었다. 큰 잔에 소주와 콜라, 얼음을 채워넣고 천천히 저었다.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렇게, 숙취에 절은 아침에 또 소주 반 병을 먹었다. 여름은 참 조용하고 길었다.



#4. 눈을 떠도 꿈 속


긴 여름의 허리를 잘라내고 싶었나.  취중과 잠결의 경계선이 흐려지던 날에, 문제 행동이 한 번 크게 일어났다. 내 꼴사나운 모습을 본 그녀는 경악스러워하지도 않고, ‘아팠겠다’고 안쓰러워만 했다. 


“작년 가을에 심하게 술을 먹은 시점이 있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였어요?”


   작년 가을무렵 짧은 근무시간 동안 집약적으로 일하는 계약직으로 일했다. 월급은 70만원. 그 달 월급을 받자마자 보름만에 30만원을 술에 썼다. 퇴근하고 무조건 편의점에 들러 술을 샀다. 

  한 번은 ‘절대 술 안 먹어야지’라고 결심하고 퇴근했다. 영화관에 들러 혼자 영화를 봤다. 마이클 패스밴더 주연의 <프랭크>였다. 아. 마음이 너무 저렸다. 나 역시 함께 노래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터덜터덜 걸어나와 작은 일식 주점에 갔다. 바테이블에 앉아 레몬 진과 일본식 고로케를 시켰다. 혼자서 천천히 먹고 나니 4만원이 나왔다. 놀라서 테이블을 보니 빈 잔이 5개 있었다.  


  명절 무렵, 추석 선물 세트를 받았다. 석류 홍초가 들어 있었다. 소주랑 섞어먹으면 맛있겠다고 생각해서 소주를 샀다. 영화를 틀어놓고, 우동을 하나 끓였다. 홀짝 홀짝 먹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그 자리에서 두 병을 먹었다. 출근은 다음날 11시 30분. 어떤 정신으로 일 하러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마지막 배터리를 쥐어짜서 일하는 기계같았다. 


  또 어떤 날엔 지인들과 술 자리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남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선 멀쩡했는데, 집에 오니 갑자기 너무 서러워졌다. 얼굴이 상기됐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풀어놓으니 술기운이 훅 올라오기 시작했다. 책상을 쾅쾅 때리며 울었다.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외쳤다. 혼자, 흰 벽에 대고.  남몰래 좋아하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왜 내 마음을 모르느냐고 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날 좀 더 칭찬해달라고 애걸했다. 부모님과 형제를 불렀다. 사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책상을 하도 내리쳐서 손 마디가 다 부어올라 있었다.  당시 살던 집은 방음이 꽤 나쁜 집이었는데, 옆집 사람이 많이 놀랬으리라 생각된다. 그 때 이후로 그만큼 처절하고 후련하게 울어본 적이 아직까지 없다. 


그녀는 차트에 뭔가를 바삐 적었다.


“그럼 술을 먹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어요? 분명 의사는 먹지 말라고 말만 했을테고, 식이 장애 관련해서 식사 일기는 계속 쓰고 있었을 텐데.”


직무 수행에 이상이 생긴 적은 없다. 동료 직원도 상사도 가족들도 나의 사정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열연했다.  


다른 병이 나타났을 때, 나는 식사일지를 들고 의사에게 뛰어갔었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