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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r 16. 2016

정신적 왼손잡이 #07.예전같지 않아서

20150829. #07. 예전같지 않아서

  2014년  10월쯤 경미한 알코올 의존을 겪었다고 밝힌 적 있다.(그 이야기도 차차 풀어내려 한다.)그때는 다른 치료 목적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일부 복용하고 있었다. 무튼 약이란 걸 먹기 시작한 건 2014년 여름부터였다. 작년도 올해도 여름이 너무나도 길다. 길고 느리고 나른해서 하루에 숨을 몇 번을 쉬는지 셀 수 있을 만큼.



#1. 내 맘 같지 않은 시간

   암막커튼을 산 이후 잠을 깊게 잘 수는 있었지만, 방 안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일상은 더욱 단조로워졌다.  과거의 행복이나 활기를 그리워하고, 지금을 후회하며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자면서도 악몽을 꾸었으므로 24시간 중에 편안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는 무겁고 끈적거렸다. 잠도 잘 수 없고 아무 의욕도 없었다.  길고 어두운 해저터널을, 사지에 추를 달고서 헤엄쳐가는 기분이었다.

계속 가라앉는다. 바닥에 언제쯤 닿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내 맘 같지 않은 시간들이다.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어른이 된다면 난 어른 안 될래.

지금보다 더 힘든 시간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면, 난 이제 더 버틸 자신 없으니 그만 살래."


아무 말도 글도 쓸 수 없던 8월, 만취 상태로 언젠가 저렇게 주정한 일이 있었다...



#2. 나는 쇠퇴했습니다만.


   내가 무직이었던 기간은 두 달 반 정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대체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싶지가 않다. 그만큼 괴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포에 묶여있다가, 이젠 사람들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제 나아질 가능성이 가득한데. 뭐든  그때가 닥치면 하게 된다고들 하지만, 두 달 반 동안 나 자신이 너무나 쇠퇴해버렸음을 알고 있기에 두려운 것이다. 병원 문 앞에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선 어린애처럼.


   사람을 만나서 실컷 떠들며 입이라도 풀어야 할까?라는 걱정이 든다. 한때는 어디 가서 말이라면 지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자꾸만 친구들과 사람들에게서 자신감이나 칭찬을 구걸하고만 있다. '나 이제 출근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라면서. 누가 들으면 참 재수없다고 욕할 만한. '이제 그만 해라'라는 말에 상처받고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구걸을 그만두었다.


   나 스스로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안다. 그러나 남이 나를 함부로 말하고 다룰 문제도 아님을 안다.'의지가 없어서'랄지, '세상에 감사할 줄을 몰라서'랄지, '네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랄지, '넌 구제불능이다'랄지. 이런 말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정작 앓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슨 말을 해달라고 하기도 참 그렇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한번 꼭 안아주거나, 악수 한 번 나누는 거다.



#3. 기대하고 또 기대하고


  초등학생 때 성장통으로 왼쪽 다리를 두 달간 석고 깁스로 묶은 적이 있다. 묶여있던 다리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필요했던 조심스러운 재활치료 시간을 기억한다. 지금껏 여러 가지 일들이 한껏 내 기대를 벗어나 준 덕에, 내일의  긍정은커녕 내일 자체를 기다리지 않은 적이 많다. 재활한다 하더라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한번 더 믿어볼까. 한번 더 기대해볼까.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이다. 조심스러운 시간. 기대하는 설레는 시간.


출근한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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