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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r 15. 2016

정신적 왼손잡이 #06.24시간은 길다

20150823. #06. 24시간은 길다.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굉장한 시련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우울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포'.

참나. 일할 땐 백수이고 싶고, 백수일 땐 일하고 싶고.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존재의 무거움이 어느 정도인가를 느끼는 한 달이었다. 한 개인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작은 일을 시작했지만 잘 되지 않아, 보름 정도를 일하고 사직서를 냈다. 쥐어짜인 에너지를 회복하면서 8월 한 달을 또 시체처럼 지냈다. 


내 생각의 총량이 무조건 평균 이상으로 과다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정도냐면, 주중에 생각하다 남은 몫을 꿈에서까지 하는 정도. '가볍게 생각해라', '넌 너무 예민하다', '네 노력이 없어서다' , '다른 일을 해 보아라' 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봤다. 그 무엇도 오래 가지 않았다. 불과 2, 3년전, 또는 작년에만 해도 으레 잘 하던 것들이 올해엔 눈에 띄게 잘 되지 않는다. 한숨만 가득하다. 


#1. 24시간이 너무 길다 


   학교를 벗어나 - 혹은 학교로부터 방출된 - 사회인이 되어서, 앞가림의 부담과 멀어지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느끼며 사는 것은 굉장히 정적이었다.상반기 대부분의 직장은 날 괴롭게 했고, 작년을 고생하게 만들었던 병환은 다시 깊어져 약값은 가늘고 긴 지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괴로움이 어느 정도쯤 오면, '도와달라'며 주변에 손을 내밀고 연락을 하게 되는데 그 선을 넘어가면 아예 입을 다물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실어증에 왜 걸리는지도 알게 됐다. 말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지고 힘겨워진다. 글 또한 그렇다. 모든 표현 수단이 퇴화한다.

모든 표현 수단이 퇴화한다.

   힘은 계속 줄어든다. 피로감은 무겁게 온 몸을 짓누르고 잠이 는다. 운동량이 많지 않은데도 금세 피곤하고 몸살이 난다. 몸살기운에 온 몸을 비틀고 베갯잇을 물어뜯다가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다음날 깨어난다.  급기야 커피 한잔 주문하는 일도 어려워져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옷의 무게가 느껴지고, 몸에 붙은 살의 두께가 느껴져 혐오감이 들기 시작한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만 들락날락거리다가 하루를 마감한다.  

"일상이 변화하거나 스스로에게 어떤 계기가 생기기 전엔, 지금을 이기긴 어려워요."

더욱 수척해진 내가 진료실을 떠나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기억에 남았다.
"24시간도, '살아내기'에 아주 긴 시간이에요."



#2. 가능성 없는 환자


   난 어쩌면 여기서 그만둬야하나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그녀에게도 고역일테니까. 그리고 약이 떨어지는 날, 마지막 상담을 해야지. 이제 됐습니다, 이제 됐어요. 이젠 더 이상은... 


(하지만 그건 그녀가 판단할 몫이다. 약물을 복용 중인 이상, 내 맘대로 어찌할 부분이 아니다.)

...이쯤 생각이 도달하자, '여기가 세상의 끝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이젠 어께가 탈골되어 영영 못써도 상관없으니, 마지막 한 구에 온 힘을 다하기로 했다. 

마지막 변화구.


#3. 균열 


   모 회사에 인턴 지원 서류를 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들 잘 할거라고 격려했지만 며칠동안 방안에서 손톱과 머리카락만 쥐어뜯고 있었다. 무서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게 썼던 자기 소개서를 다시 읽어봤다. 


   이대로, 이만큼의 자신감만 있다면 면접도 문제없을텐데. 지금의 무거운 나 - 머릿속은 텅텅 비어있는 멍청한 나를 거울에서 마주칠 때마다 혐오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다시 밖으로, 밖으로 나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시덥잖은 인터넷 서핑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소일했다. 옆 사람이 움직일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사람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거슬리다가, 또 평안했다가, 그러기를 반복했다. 움직인 것도 없는데 집에 오니 기절하듯 몸이 무너진다. 만화영화를 틀어놓고, 울적한 기분의 어느 모서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타자를 친다. 새 키보드를 써볼 겸 이기도 하지만 뭔가 그래도 적히긴 적힌다. 


문장이라는 것이 적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공포'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4. 올해의 목표는 '재활'이었다


   멀리 돌고 돌아서 , 수많은 가시덤불에 긁혀가며 겨우 몇 문장 적었다. 앞뒤로 무슨 생각을 적었는지 결이 보이지 않는다. 좋지 않은 글임을 안다. 2015년을 맞이할 때, 2014년의 힘들었던 삶을 일으키는 '재활'을 한 해의 목표로 삼았었음을 기억해냈다. 그 목표는 좀 더 길게 두고 이뤄야할 것 같다.아직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얼마나 의지해도 되고, 얼마나 믿어도 되고, 얼마나 위로를 구해도 되는 것인지 - 나는 얼마나 줄 수 있는 것인지. 서툴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더 살아도 되는 것인지, 앞으로 내가 - 혹은 내 삶의 환경이 더 나아질 것인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 자꾸만 멀리 걸었다. 

재활은 커녕 더욱 짓눌리고만 있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조금씩 다시 돌아서 걷고 있다. 발걸음은 무거워서, 발에 쇠뭉치를 달고 헤엄치는 것처럼 숨막히고 괴롭다. 



#5.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잖아요.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살 수 없어요. 타인으로부터의 애정이나 인정, 위로를 얻고 싶어하는게 대단한게 아니라 그건 굉장히 순수하고 기초적인 욕구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뜻대로 잘 안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경안정제를 2배 증량해줬다. 


그래도 사람, 이라는 거지. 갈수록 심했으면 심했지 덜해지진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세계는 자꾸 커지고, 나는 그 속에서 작아짐을 느낄 것이다. 첫 관문을 잘 넘겨야하는데, 참 큰일이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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