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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음악 속 강렬한 고음, 작품의 무기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마이클리, 백형훈

by 위키더뮤지컬

2004년 정식 라이선스 초연 이후 어느덧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 예수의 생애 전 마지막 7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강렬한 락 음악과 함께 예수를 인간적 고뇌에 휩싸인 인물로 재해석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뮤지컬 거장인 작사가 팀 라이스 &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청년 시절에 쓴 이 작품은 특히 살인적인 난이도의 넘버들로 정평이 나있는데요. 이번 시즌 무대에서 초고음의 노래들을 여유있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내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2013년 삼연부터 지저스 역을 맡으며 인생 캐릭터란 호평을 받고 있는 마이클리, 지난 시즌 뉴캐스트로 합류해 색다른 개성의 유다를 연기한 백형훈입니다. 이들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두분 다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돌아오셨네요.


마이클리 : ‘수퍼스타’는 제 인생에 있어 참 소중한 뮤지컬이에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팀 막내로 ‘수퍼스타’에 참여했던 제가, 어느덧 한국에서 이번 시즌 최고참 배우가 되어 연기하게 됐다는 사실이 감회가 새로워요.


백형훈 : 이 작품을 보고 배우의 꿈을 꾸게 된 한 사람으로서 다시 돌아오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지난 시즌에는 어떤 장면이든 열심히 해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공연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한 회 한 회 지나가는 게 아쉽더라고요.


Q. 이번 시즌에 새롭게 다가온 점은 없었나요?


마이클리 : 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마음이 참 무거웠어요. 하느님이 진짜 계시다면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마이클리는 천주교 신자다.) 제 마음 속의 질문을 모으고, 일종의 ‘의심’하는 마음을 담아 연기하다 보니 이번 시즌에는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더 달라진 거 같아요.


백형훈 : 저도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는데요. 유다를 바라볼 때 단순히 배신자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인물을 분석하다가 “나라고 유다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후반부에 십자가에 지저스가 못 박히는 장면에서 제가 객석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관객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서고요.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공연 사진_제공 블루스테이지 (1).jpg 사진=블루스테이지 제공


Q. 유다로서 지저스를 어떻게 바라보고 연기하고 계신가요?


백형훈 : 작품 안에서 주는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어 그 안에서 충실히 하려고 하지만, 성경에서 ‘배신자’라고만 언급된 인물을 연기 하기 위해선 각자 공부한 자료들과 개인적 해석을 조금씩 반영하긴 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유다를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 ’직소’의 내용이 많이 공감됐어요. 예수를 향한 유다의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인데요. 저 역시도 예수를 향한 유다의 감정이 단순한 이성애, 동성애를 넘어 그의 행동과 발자취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생각했거든요. 특히 유다가 죽기 전 부르는 넘버에서 마리아의‘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멜로디가 리프라이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가장 확실하게 깨닫는 것 같아요. 지저스에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마저 유다에겐 사랑이었다는 걸요.’마리아처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의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와요.


Q. 지저스 입장에선 유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마이클리 : 간단하게 말하면 유다는 지저스의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모든 이야기를 거울 보듯 투명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유다는 예수를 제일 사랑하니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거죠. 유다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배신하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요. 지저스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죠.


Q. 배우로서 서로를 바라봤을 때는 어떨지도 궁금하네요.


백형훈 : 연습을 할 때 ‘The last supper’ 장면에서 연출님이 우는 모습을 봤어요. 창작진들은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 연습 장면을 지켜보다 보니 그런 일이 드물거든요. 그때 제가 마이클 형을 봤더니 행동은 모질게 대하면서 눈이 너무 슬픈 거예요. 유다보다도 더요. 유다의 입장에선 ‘왜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이 당신의 표정, 눈빛과 다른 거야?’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때 정말 놀랐던 것 같아요. 역시 한 역할을 오랫동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어요.


마이클리 : 솔직히 말하면 형훈이를 보면 제 머릿속에서 아들이 저절로 그려져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니까요. 유다 중에 가장 막내이기도 한데, 싸울 때 특히 마음이 너무 아픈 것 같아요.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공연 사진_지저스 역 마이클리_제공 블루스테이지.jpg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공연 사진_유다 역 백형훈_제공 블루스테이지.jpg
사진=블루스테이지 제공


Q.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보니, 한편으론 배우로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이클리 :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지저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죠. 배우로서 제가 가진 책임감은 현실적으로 연기하는 거예요.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제 인생의 경험을 담아 연기에 녹여내야 하죠. 인생 자체가 우리는 왜 사는지, 나는 누구인지, 왜 여기를 오게 됐는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더 깊게 삶의 이유를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런 경험을 녹여 연기하고 있어요.


백형훈 : 종교가 없는 제 입장에서는 이 스토리가 한 사람의 일대기로 보였어요. 종교적인 작품이지만 신화를 덜어내고 보면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더라고요. 첫공을 보고 엉엉 울기도 했어요. ‘왜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으로 보니 오히려 편견이 사라지더라고요. 보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보시면 더 작품을 잘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Q.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저스를 추대하고 비난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보면 작품 제목처럼 ‘지저스’와 ‘수퍼스타’의 삶은 많이 닮았단 생각이 드는데요. 뮤지컬 계 스타의 삶을 살고 있는 마이클 씨에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마이클리 : 지저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있긴 했죠. 하지만 원하는 모습 그대로만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사람들이 지저스를 사랑하는 거고요. 물론 저는 수퍼스타는 아니지만요. 제 인생은 저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는 마이클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면 스트레스가 너무 많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나답게 사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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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다는 평소 관객들이 떠올리는 형훈 씨의 이미지와는 굉장히 다른 결의 캐릭터이기도 하잖아요. 기존의 결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본인에겐 도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백형훈 : 저는 외적인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진 연기나 캐릭터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어색할 것 같거든요. 저의 외적인 이미지 중 유다가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찾아가는 방법을 택했죠. 그래서 마냥 끼를 표출하는 자유로운 느낌의 유다보단 지저스가 의지할 수 있는 의젓함과 때려 부술듯한 에너지를 가진 유다를 그려보려고 했어요. 물론 쇼적인 장면도 있기 때문에 제 안의 저를 꺼내기 위한 노력도 과감하게 했죠. 앙상블 분들과 함께 안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요. 평상시엔 부끄러움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유다로 무대에 오르면 그런 감정이 사라지더라고요. 제 재능을 120% 끌어올려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Q. 탄탄한 실력을 갖춘 배우라도 유다의 넘버는 가혹할 만큼 어렵잖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넘버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백형훈 : 보통의 넘버들은 쉽게 말해 관객들의 도파민을 터뜨리는 고음 구간들이 있잖아요. 근데 유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 치고 가다 보니, 곡을 끌고 가는 것 자체가 참 어렵더라고요.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달리다 보면 끝까지 가지 못하니, 1막부터 커튼콜까지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곡을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Judas’s death’인 것 같아요.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와중에 고음이 쉬지 않고 이어지거든요. 감정만 다 쏟아내면 노래를 못 부르니, 감정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게 참 힘든 넘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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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쟁쟁한 연말 대작 라인업들 사이, ‘수퍼스타’만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마이클리 : ‘수퍼스타’는 한 인간이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이야기를 최고의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자부해요. 특히 뉴욕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일본 등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해봤지만, 이번 시즌 버전의 음악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버전이예요. 첫 송스루를 하면서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귀 호강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백형훈 : 요즘 말로 소위 ‘영업’하는 느낌으로 말하자면, 고음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무조건 보셔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음을 시원하게 내는 걸 싫어하는 분들은 없으시잖아요. 물론 고음을 잘 낸다고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위해 고음을 무조건 소화해내야 하거든요. 감정을 담아 기인 수준으로 다양한 음역대를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노래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 공연전문인터뷰어 이우진

공연사진 : 블루스테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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