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할 때, 20대 초반에는 이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고 30대 초반에는 이 사랑이 유지되길 바랐다.
하지만 어느새 빗물은 소리 없이 벽을 타고 흘러내려 틈을 갉아먹는다. 연애가 끝나감을 알게 되는 5가지 순간이다.
전에는 종일 쥐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충전도 모자라 보조배터리까지 들고 다니며 수시로, 아니 24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말은 곧 '내일 연락할게'라는 말과 다름없이 돼버렸다. 전화를 끊기 아쉬워 밤새도록 재잘거렸던 일은 먼 과거로 사라졌다. 내내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만졌던 핸드폰은 이제 그냥 비싼 시계에 불과하다.
"오늘은 OO랑 만나고 주말에는 △△이랑 만나기로 했어"
'월화수목금토일 24/7' 그의 시간은 온통 내 것이었다. 딱히 약속을 잡지 않아도 주말이면 으레 만나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부쩍 약속이 늘어난다. 오늘은 이 친구, 주말은 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서로의 삶 속에서 천천히 서로를 지워간다.
"도대체 예민하게 왜 그래? 뭐가 문제야?"
별일도 아닌 문제로 다툼이 부쩍 늘었다. 하다못해 만날 장소를 정하면서부터 사소한 실랑이가 오간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이젠 꼭 짚다 못해 싸움으로 만들고 만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그가 이제 점점 미워 보인다.
"뭐할까?"
오랜만에 시간을 맞춰 나온 데이트. 여느 때처럼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지만, 체온은 느껴지지 않는다. 길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사람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고 떠들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갈 곳은 없다.
영화를 보려 해도 시큰둥, 전시회를 갈까 해도 시큰둥, 맛집 찾기는 더욱 질려버렸다.
띄엄띄엄한 연락, 잦은 다툼, 서서히 벌어지는 틈은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은 상대방이 이미 그 사실을 눈치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그 또한 다른 모습의 사랑이자, 혹은 미련 내지는 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