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단복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600여 명 모든 대표팀 선수들의 신체 치수에 맞게 수작업했다"
"(지카 바이러스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섬유에 방충 처리를 했다"
"흰색 원단의 바지는 나노 가공을 해 때가 타지 않게 했다"
선수에 대한 배려심이 돋보이는 이 단복 디자인은 삼성물산 패션부문 김수정 실장이 총괄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단복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뽑은 '가장 멋진 단복' TOP5에 선정되는 등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김수정 씨는 현재 패션 브랜드 ‘빈폴맨’에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리우 올림픽 단복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다.
‘19년 차 디자이너, 올림픽 단복 디자인은 제게도 영광이었죠’
안녕하세요. 이번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을 총괄한 김수정 실장입니다. 학창시절,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놀러 다니기 바빴던 제가 디자이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컬렉션을 보고 나서였어요. 화가를 꿈꾸던 제게는 단순히 몸에 걸치는 옷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느껴졌죠. 그때부터 의상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년 차 디자이너로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올림픽 단복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디자인했다는 건, 제게 분명 행운이자 영광이었죠.
대한민국 국가대표에게 딱! 방충 가공을 통한 바이러스 예방 기능까지
2016 리우올림픽 단복은 수백 명의 한국 대표 선수들을 세계가 보는 큰 축제에 멋지게 소개하자는 목표 아래, 빈폴 디자인 팀이 똘똘 뭉쳐 약 4개월 동안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단복은 K-WAVE에 힘입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이자’라는 컨셉으로 한국의 미와 활동성,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한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의 미’가 컨셉트였던 만큼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살려 화려하면서도 단아하게 한국적인 모티브를 재구성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한 법이니까요.
재킷 앞쪽에 흰색 라인은 한복의 동정(한복의 저고리 깃 위에 조붓하게 덧꾸미는 흰 헝겊 오리)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바지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져 남성의 한복 바지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했어요. 단복에 사용되는 ‘색’ 하나하나도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는데요. 화려한 한복의 색감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남성은 빨강과 파랑 물방울 무늬의 넥타이를, 여성은 브라질과 한국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 초록, 빨강, 파랑이 섞인 스카프를 만들었죠. 특히 스카프는 여러 색상의 천을 붙여 만든 전통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습니다.
또 안전과 건승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 전통 매듭을 활용하여 브로치를 개발했는데요. 여기에 사용된 빨강과 파랑은 대한민국을, 노랑과 녹색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색으로 두 나라의 융합을 담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편안함을 위해 디자인만큼이나 크게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소재입니다. 덥고 습한 브라질 기후를 고려해 통풍성이 좋고, 소취 기능이 있는 리넨 소재를 사용했어요. 작년에 빈폴에서 개발해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기도 했던 신소재인 딜라이트 리넨인데요. 스트레치성이 좋고, 구김이 안 가며 물 빨래가 가능해서 국가대표 선수단들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답니다. 쉽게 더러워질 수 있는 흰색 원단의 바지는 나노 가공을 해 때가 타지 않게 했죠. 와인이나, 커피, 케첩을 쏟더라도 더러워지지 않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옷이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16 리우 올림픽 단복의 가장 핵심은 ‘지카 바이러스 막는 섬유’! 최근 브라질의 지카 바이러스로 선수들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컸는데요. 선수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정장 브랜드에서는 이례적으로 섬유에 방충 처리를 했죠. 경기에만 집중해야 할 선수들에게 안전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한 벌의 재킷을 만들기 위한 3시간 30분, 178개의 공정…
세계인이 모이는 큰 축제에서 우리 선수들이 품격 있고, 세련돼 보이게 하기 위해서 600여 명 모든 대표팀 선수들의 신체 치수에 맞게 단복을 수작업했는데요. 아마도 단복을 제작하면서 이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올림픽 참가 선수 명단이 개막식 일주일을 앞두고도 계속 바뀌다 보니 주말에도 지방까지 내려가 선수들의 사이즈를 재야했어요. 또 종목의 특성에 따라 신체 사이즈가 다르다는 점도 굉장한 변수였죠. 예를 들어 사격 종목 선수 한 명은 소매길이에 비해 가슴둘레가 훨씬 커서 옷의 가슴판을 다른 이들보다 더 넉넉하게 제작해야 했거든요. 경기 전까지 체중 감량 또는 증량을 해야 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요. 선수들의 몸에 딱 맞는 단복을 선사하기 위해 브라질로 직접 가 개막식 입장 전까지도 치수를 재는 등 많은 공을 들였죠.
패럴림픽을 위한 단복까지 맡게 되었을 때는 워낙 특수복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 단복보다 훨씬 더 어려웠는데요. 전문 업체와 협력하여 패럴림픽 선수들을 위한 단복까지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단복의 재킷 한 벌을 제작하는 데에도 178개의 공정이 필요하고, 소요 시간 역시 3시간 30분으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요. 많은 정성이 들어간 만큼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진심으로 선수들을 응원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선수단들이 제가 직접 디자인한 단복을 입고 개막식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 짧았던 4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나더라고요. 세계인들에게 우리 선수들을, 우리 한국을 멋지게 소개할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다음 올림픽 단복의 디자인을 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대한민국 대표 선수단을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