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날, 서울에 위치한 한 패션쇼장. 키가 훤칠한 남성 한 명이 적막을 깨고, 런웨이 위로 미끄러지듯 등장했다. 그림자부터 멋졌다.
배우 정우성(43) 씨다. 이날 이곳에서는 특별한 패션쇼가 열렸다. 정 씨는 “잊혀졌던 열정을 되살리는 ‘열정 패션쇼’”라고 소개했다.
정 씨 말이 끝나자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매끈한 옷을 차려 입은 남성 모델들이 차근 차근 런웨이에 올랐다.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그런데 다른 패션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몇몇 관객이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한 것. 그 중 어떤 관객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굿맨을 굿맨답게...
관객을 울리는 이 ‘이상한’ 패션쇼의 정체는 뭘까?
“한때 나도 날아다녔는데”
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냉동 관리 업무를 하는 남진오 씨는 소싯적 ‘멋쟁이’로 통했다. 남 씨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다 보니, 진(Jean)이나 운동복 차림을 즐긴다”며 “한때 나도 좀 날아다녔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일식 요리사로 일하는 강병무 씨는 옷 가게에 가면 ‘아이들’ 옷부터 눈에 먼저 들어온다. 강 씨는 “옷 사러 갔다 가도, 아이들 옷이 마음에 들면 아이들 옷을 먼저 산다”고 멋쩍게 웃었다.
물류 일을 하는 유승철 씨는 “나도 한때는 좀 챙겨 입고 다녔다”며 “요새 모습을 보면, 너무 나한테 관심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40대를 보내고 있는 남 씨도, 강 씨도, 유 씨도 한 사람의 남편이기 전에 ‘남자’였다. 검정 선글라스에 청바지를 입고, 무스나 헤어 스프레이로 한껏 머리에 힘을 주기도 했었다. 여기에 가죽 재킷과 남방까지 걸치면 어디를 가도 주눅 들지 않는 멋진 남자들이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회사나 가게 상호가 적힌 유니폼이 더 익숙하다. 옷은 적당히, 대충 걸칠 수 있으면 된다. 먹고 살기 바빠지다 보니 “뭘 입지” 따위의 고민은 사치처럼 느껴진 지 오래다.
남편의 변신은 무죄!
캐주얼 정장을 입은 남성 모델들이 천천히 런웨이로 걸어 나왔다. ‘전문 모델’이라고 보기엔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오늘 패션쇼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남편들이었다. 한때 '멋진 남자'들이었던.
몇 년, 혹은 몇 십 년 간 보지 못했던 남편의 ‘잘빠진’ 모습에 아내와 아이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어떤 이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 참가자의아내는 “좀 찡했다. (남편은) 항상 가족, 그냥 가족이 먼저였던 것 같다”며 “가족도 가족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또 다른 참가자의 자녀는 “오늘만큼은 그냥 아빠가 (모든 모델들 보다) 더 나은 것 같다”며 웃었다.
좋은 남편으로 멋지게 사는 당신이 ‘굿맨’입니다
‘깜짝’ 패션쇼는 패션 편집숍 ‘웰메이드(Wellmade)’가 준비한 자리였다. 웰메이드는 최근 ‘굿맨을 굿맨답게’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는 남자들을 응원한다”가 캠페인의 콘셉트다. 이날 패션쇼에도 “잊혀진 열정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패션쇼(Passion•열정)’라는 이름이 붙었다.
웰메이드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은 바쁜 일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을 잊고 살아가는 남성들이 젊고 트렌디한 삶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 하반기부터 이탈리안 클래식 수트 중심이었던 ‘브루노 바피’가 '영 포티(Young Fourty)' 세대를 위한 젊음 감각의 비즈니 캐주얼 라인까지 확대한다”며 “상품부터 마케팅 프로모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