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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트리 WIKITREE Nov 16. 2016

고시생이 피운 희망, 예술인에게 번졌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거리 / 위키트리


 

서울 관악구 고시촌 일대에 '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고시촌에는 운동복을 입고 큰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한쪽 팔에 책을 가득 안고 학생들은 웃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쪽에는 장발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고시촌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던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라실 수도 있겠지만, 혹시 어떤 일 하시나요? 조금 고시촌이랑 어울리지 않아서요?"


기자 말에 이 남성은 조금 당황해하다가 말을 시작했다. 이봉식(25·남) 씨는 "저는 그림을 그려요. 그냥 언젠가부터 신림동에 살고 있네요"라고 했다. 이 씨에게 신림동 고시촌에 예술인이 많이 살고 있느냐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엄청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영화제도 하고 모임들도 있는 것 보면 조금 있긴 하죠. 고시촌에도 예술인은 있어요"라고 했다.



이 씨 얘기를 시작으로 주변 부동산에 들러 얘기를 들어봤다. 


정말 예술인들이 고시촌에 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림동 고시촌에도 홍대, 이태원처럼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서울 관악구청에 따르면 그 수를 전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근 예술인들 유입이 늘었다고 한다. 


신림동 C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요즘 신림동에 음악하고 그림 그리는 애들이 많이 산다. 아무래도 홍대나 이태원 같은 곳들은 집값도 비싸고 그래서 이곳으로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고시촌에는 '예술인'들이 희망을 품고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관악구청은 '고시촌 단편 영화제'를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열었다. 이 영화제는 고시촌이 가진 의미인 '희망'을 모토로 시작됐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한 '고시촌 단편 영화제'에는 작품만 모두 328편이 출품됐다. 


  

이하 관악구청 제공



고시촌 영화제 관계자는 "많은 분이 고시촌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다. 고시촌은 미래를 위해 땀과 열정을 쏟아부었던 젊은이들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누구나 고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고시촌 영화제도 영화를 꿈꾸는 예술인들에게 열려있다"고 했다.


고시촌 영화제는 지역이 가진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 초청작 감독 인터뷰


 

이경자 미술 감독과의 대화(오른쪽)


 

고시촌 영화제뿐 아니라 신림동 고시촌에는 관악구청이 지원하는 '작가하우스'도 있다. 작가하우스는 창작 공간이 필요한 예술인들에게 관악구청이 주거 비용을 월 20만 원 씩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고시촌에는 '사법고시 폐지', '로스쿨 도입', '5급 공채 축소', '강의 온라인화' 등 여러 이유로 빈방들이 생겨나고 있다. 관악구청은 비어 있는 원룸을 예술인이 '창작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생활고를 겪고 있던 예술인들은 월세 부담을 덜면서 고시촌에서 활동하고 있다.


셔터스톡


 

관악구청 관계자는 "작가하우스는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지원 프로그램이다. 신촌이나 이태원 등은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현상) 때문에 임대료가 비싸다. 문화 예술 사업으로 지역 경제도 살리고 예술인들도 돕기 위해 '작가 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모두 10명이 작가하우스에 입주해있다"고 전했다.


이 예술가들은 고시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스마트폰 영화 만들기' 등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청년들이 고시촌에 예술을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고시촌에는 청년단체 '작은 따옴표'도 있다. 청년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작은 따옴표'는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고시촌에서 운영한다. 


'작은 따옴표' 예술인들 / 이하 '작은 따옴표' 제공


 

'작은 따옴표' 장서영(24) 대표는 "서울 홍대에서도 물론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두리에도 이런 문화 공간과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하게 됐다"며 "작은 따옴표는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 여기에 오면 친구도 만들 수 있고 음악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음악도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열려있다"고 했다.


공연 중인 예술인들


 

장서영 대표는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말 많이 따뜻한 감정을 받게 된다. 보통 예술인들은 이해받지 못하고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 꿈을 못 꾸게 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여기 만큼은 꿈을 이루면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다. 어디서도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따옴표는 예술인들이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예술인들 교류를 위한 행사 등도 추진하고 있다. 


고시촌에 살고 있는 예술인들과 소통을 자주 하는 그는 고시촌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장서영 대표는 "이미 고시촌에는 예술인이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살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예술가들이 많다는 것은 동네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그런 자연들이 곳곳에 있는 관악구에서 잘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가들이 창작은 이곳에서 하면서 창작물들을 가지고 홍대나 다른 곳까지 가버린다. 이런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시촌에 예술인이 많아지면서 장서영 대표 같은 의견을 내놓은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시촌 주민 이지혜(22·여) 씨는 "고시촌은 예술과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꿈꾸는 만큼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 예술인이 고시촌에 많아졌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며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관악구에서는 '고시촌 영화제', '작가하우스' 등을 통해 예술인들과 지역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많이 이뤄냈다고 생각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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