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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Aug 12. 2017

오늘도 우리는 옥자를 죽였다

:: 영화 옥자




1. 제목을 가진 대개의 예술이 그러하듯, 제목은 언제나 작품이 가진 거대한 메시지를 요약해야 한다. 특히나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영화와 같은 장르라면 이는 더욱 필수적이다. 평균 90분에서 100분의 굴곡을 단번에 파악하게 하는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이면서도, 전체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집약하는 것. 은유적인 동시에 직관적인 것. 영화에게 제목이란 소재이자 주제이며 서사 그 자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들은 직관적이다.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미확인 물체에 대한 영화 <괴물>, 아들을 구하기 위해 범인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마더>, 세상 어딘가로 꼭꼭 숨은 미해결 범죄 수사에 대한 영화는 원작인 연극 <날 보러와요> 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목을 <살인의 추억>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옥자 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신작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란다 기업은 유전자 조작 실험을 가한 돼지를 식품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물 실험에 대해 반감을 품기 때문에, 미란다 기업은 갖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옥자 역시 그 도구 중 하나. 슈퍼 돼지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한 옥자는 미국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런 옥자를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산골 소녀 미자.




ⓒ옥자 포스터


위와 같은 서사를 지닌 이 영화의 제목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옥자'다. 영화의 제목이 '옥자'인 이유는, 서사와 주제가 오직 '옥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옥자>는 "옥자"다. 어쩌면 수많은 돼지 중 중 한 마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돼지. 하지만 옥자는 옥자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만으로 거대한 몸짓과 의미를 지니며 자라난다. 그는 미자의 유일한 친구다. 그들은 산에서, 계곡에서, 때로는 절벽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늘 함께한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없는 산속에서 미자가 주어진 생활에서 만족을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옥자가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확인할 수 있는 '존재'. 때문에 김춘수의 시 중 '그'를 '옥자'로 바꿔도,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의 시 말마따나 옥자는 미자에게 몸짓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옥자는 미자에게 꽃처럼 의미 있기 때문에, 미자에게 옥자는 존재로서 이해되는 대상이자 친구다. 옥자로 시작해서 옥자로 끝나는 이 영화는, 존재로서의 옥자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한다. 다른 어떤 돼지도 아닌 '옥자'에 대한 이야기, 아니 어쩌면 모든 '옥자들'에 대한 이야기, <옥자>






2. 산과 도시, 거대기업 미란다와 동물보호단체 ALF, 영어와 제3의 언어.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옥자>의 세계. 이를 공통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가치이다. 치밀한 이미지 관리, 득과 실을 계산하며 굴러가는 기업 시스템, 값싼 노동력으로 동일한 아웃풋을 내는 고용 형태는 모두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경제적일 때라야만 비로소 의미가 인정되는 교환까지. 여기서 경제적이란 "돈이나 시간을 적게 들이는 것"의 의미를 말한다. 사람은 그 어떤 때에도 경제적인 가치보다 귀중하다는 명제는 자명한 진리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세계의 역사는 사람 역시 경제적인 정도에 따라 판단될 수 있음을 전제로 발전해왔다. 인간은 결코 경제적으로 치환될 수 없는 동물이나, 동시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가장 경제적인 동물이기에, 이 세계는 경제적이고, 경제적이며, 경제적이다.



ⓒ옥자 스틸컷

사회는 다수(혹은 조작된 소수)를 위해 계획된 조직이다. 또한 대다수의 '사회적 문제'들은 이러한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편협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일 미자가 난동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다수는 미자의 슬픔을 모른 채, 혹은 알더라도 모른 척한 채 살아갔을 것이다. 미란다의 비밀을 알지 못했던 수많은 대중과 미란다 기업에서 비밀을 감추고 있던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애써 진실을 숨기고, 조작하며 수많은 옥자를 끝없이 학살했을 것이다.



ⓒ옥자 스틸컷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혹은 애써 간과하고 있는 수많은 비극들이 태산처럼 불어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저질러지는 불균형한 착취와 횡포는 어제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비단 소수의 과업만도 아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독재자 히틀러만이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열광으로 응했던 모든 독일 국민으로부터 완성되었다. 나치의 선동에 의심을 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독일 국민의 대다수는 히틀러의 반유대 정책에 환호했고,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일조했다. 때문에 그들의 학살은 뜨거운 엔진에 힘입어 끊임없이 폭주했다.


그렇다면 옥자의 세계, 아니 옥자 그 너머의 세계는 어떨까. 역시 마찬가지다. 홀로코스트의 경우처럼, 미란다의 계획은 오로지 미란다에게만 탓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란다에 열광한, 혹은 알고 싶지 않아 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공범일 테니.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았던 모두가 이름 없는 옥자들을 셀 수 없이 죽여왔을 테니. 그래서 잘못에 대한 뉘우침은 미란다만의 것이 아닌, 탐욕을 얼룩진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과업이자 임무다.



ⓒ옥자 스틸컷

<옥자>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확장된다. 이 세계는 불균형조차, 불공정조차 모두 경제적인 이유라면 한 번에 인정되는 독 오른 세계다. 그리고 독은 그것이 표면적으로 느껴지지 않든, 보이지 않든 간에 언제나 늘 치명적이다. 세계에 남아 있는 생명체 중 가장 잔인하고 유해한 동물이 인간이라는 것은, 그리고 내가 그러한 인간이라는 것은 과연 불행일까, 불행 중 다행일까. 오늘도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가득 찬 밥 한술을 꼭꼭 씹어 삼킨다. 이 세계의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위에 있는 인간. 어쩌면 먹이 사슬은 이기심과 잔인함의 크기를 상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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