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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Sep 23. 2017

퍼즐을 잃어버린 퍼즐 게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보는 영화 <메멘토>






저녁에 뭘 먹었는지, 언제 약속이 있었는지 매일 까먹는다. 휴대폰에 찍어둔 사진을 보거나 다이어리를 뒤적거린 뒤에야 "아, 여기 있네."하고 말한다.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 같다. 파도가 몰아치면 모래는 꼼짝없이 젖어버리는 것처럼, 망각의 파도가 몰아치면 나는 처량한 아이가 된 듯 갈 길을 잃고 만다. 어디로 도망갈 새도 없고, 어디로 숨을 곳도 없는 모래는 내일도, 모레도, 그저 닥쳐올 파도에 가만히 온몸을 맞을 뿐이다.

그래도 인간과 모래가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모래는 말할 수 없지만 인간은 말할 수 있다는 것. 모래는 생각할 수 없지만 인간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에게는 모래에게 없는 의지 혹은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파도가 닥쳤을 때 모래는 피할 길이 없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크고 간절한 목소리로 되레 파도를 불러낼 수도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모래와 인간의 차이가 아닐까.





언젠가 사람의 심리가 배우고 싶어 수강했던 '인간 행동과 심리학'. 정작 사람의 심리는 배우지 못하고 온갖 심리학 용어와 유형만을 달달 외웠더랬다. 그리 배운 게 없다고 생각했던 교양 수업이었는데, <메멘토>를 보는 내내 그때 들었던 개념들이 하나하나 끼워 맞춘 듯 떠올라 참 신기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이 흠뻑 녹아 있는 놀란의 영화 <메멘토>.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해석해 보는 '레너드'는 그야말로 방어기제*의 전형이었다.

* 방어기제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를 말한다! 크게 부정(부인), 억압, 투사, 반동형성, 대치, 합리화, 승화, 퇴행, 동일시, 보상의 유형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고.





비극적 경험에서 오는 고통스러움을 피하고자 현실을 거부하는 '부정(부인)'이라든지, 정서적 충격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여 그럴듯하게 만드는 '합리화'라든지, 자신이 어떤 대상을 해치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그 대상에 투여하여, 반대로 그 대상이 나를 해칠 거라고 굳게 믿는 '투사'라든지, 강간범들로부터 아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되레 폭력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보상'(방어기제에서 보상이란, 자신의 약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강점을 더 부각시키는 행동을 말한다.) 이라든지.

이렇게 레너드는 방어기제의 여러 유형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었다. 복잡하고 예민한 그의 몸부림과 내면의 갈등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레너드의 삶은 마치 잔인한 퍼즐 같았지만, 그의 행동과 동인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나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퍼즐 게임을 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오죽하면 촌스럽다고 비웃었던 한국버전 메멘토 포스터의 '전세계가 항복한 의문의 두뇌게임' 이라는 글귀에 '격공'했을 정도였을까.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어서.
                          

레너드는 여러 장치를 이용해 본인을 속인다. 그는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그는 잊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순적인 그의 행동을 지켜보며 방어기제란 가장 거짓스러운 본능인 동시에 가장 솔직한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은 자아에게 방어란, 그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레너드 역시 가장 솔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혹은 가장 솔직한 방법으로, 망각이라는 방어를 무기 삼아 스스로를 지켜냈던 거였다.                      



  


메멘토의 역순 구조가 소름 돋게 느껴지는 이유는, 관객이 이입한 배역에 대한 동정심을 한순간에 배신감으로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가장 큰 감정 반응은 아마도 동정심배신감일 게다. 인간은 동정심과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다운' 것이고, '사람답기'에 인간은 동정심과 배신감을 느낀다. 양 극단에 놓인 두 개의 감정은 모든 사회적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고, 그 행위를 인정하게끔 유도한다. 때때로 타인의 단순한 분노나 슬픔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동정심과 배신감이 첨가되는 순간, 그 행위의 정당성은 매우 탄탄해지고 만다.

놀란은 대중이 아주 쉽게 반응할 수 있는 이 두 감정을 교묘하게 뒤섞었다. 그래서 자르고 오리고 뒤집은 이야기의 끝에는 레너드를 욕할 수도, 욕하지 않을 수만도 없는 오묘한 감정만이 남는다. 보편적 정의를 위해 악을 응징하는 avenge는 절대적 선善이지만,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앙갚음을 의미하는 revenge는 쉽게 선善과 악惡을 판가름할 수 없다. 레너드의 과거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레너드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공존하는 동정심과 배신감 혹은 선과 악 사이에서 어렴풋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레너드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레너드의 몸에는 어떤 글들이 더 새겨질까. 어떤 존.G가, 어떤 새미가, 어떤 죽음이 다시 태어날까. 복수의 고리는 끊이지 않고, 망각의 힘은 계속해서 부활한다. 퍼즐 게임은 단 하나의 퍼즐 조각만 없어도 결코 완성될 수가 없다. 끝나지 않는 퍼즐 게임. 죄는 죄를 낳고, 복수는 복수를 잇고, 레너드는 '나'로 다시금 이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기억과 망각 속에서 헤매는 나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멋대로 합리화하는 나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나약하고 연약한 나를.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축복, 망각.
오늘도 많이 잊고, 잊어버림으로써 버텨낸 모두여,
과연 어느 누가 레너드에게 총을 겨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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