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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Oct 05. 2017

우리에겐 지금 달빛이 필요해

:: 영화 김씨표류기

                         


자살의 방법은 다양하다. 목을 매달아 죽을 수도 있고, 손목을 그을 수도 있고, 그것도 정 아니면 그냥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표류기의 김 씨 남자(정재영 분)는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는 왜 하필 한강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김씨표류기 스틸컷


‘물’ 그리고 ‘섬’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나는 이 영화가 전형적인 한국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생각, 한국인의 의식과 무의식이 제대로 흠뻑 담긴 그런 영화 말이다. 먼저 한강에서 뛰어내린다는 소재 자체는 한국인들에게 너무나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흔히 대입 시험에 실패한 학생들은 “한강 가야겠다.”는 말을 하질 않나, 낯설지 않게 뉴스에서는 한강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사람들의 기사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한강 투신을 검색하면 한강투신벌금 따위의 연관검색어가 키워드에 오르기도 하고,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등의 문구와 함께 전화 상담 등의 홈페이지로 친절하게 연결까지 해 준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안경까지 곱게 쓴 김 씨 남자는 물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아무리 자살을 결심한 인간이라 한들 인간은 끊을 수 없는 생존 본능에 의해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그 역시 필사적으로 헤엄친다. 필사적인 몸부림의 순간, 그는 그의 삶을 괴롭히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린다. 그 파노라마에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처절한 시간들이, 꾸역꾸역 참아내는 비극적인 현대인의 얼굴들이 함께 담겨 있다. “남들 다 하는데 난 그게 왜 안 되냐”는 김 씨의 절규. 그 절규는 김 씨만의 절규가 아니었다. 그건 모든 현대인들을 대신하는 우리 모두의 비명에 가까웠다.



ⓒ김씨표류기 스틸컷


자살을 시도하는 그에게 있어 ‘물’의 의미는 곧 '죽음'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사실 보편적인 의미에서 물은 ‘탄생’을 의미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물이듯, 우리의 탄생이 양수를 터트리며 이루어졌듯, 물은 인간에게 생명이나 탄생이라는 의미로 동시 작용한다. 때문에 김 씨에게 물이란 죽음인 동시에 탄생이자, 소생의 의미였다.
때문에 김 씨는 죽음 대신, 섬에 떠밀려 와 고립된다. 영화 제목 그대로 도심 속 섬에 '표류'하게 된다. 낯설지만 친근한 도심 한복판의 섬에서 눈을 뜬 그는, 마치 버려진 인간의 형상이 되어 있었다. 김 씨는 그와 함께 휩쓸려서 온 쓰레기 더미와 함께 살아간다. 세상에서 버려진 한 사람이 세상에서 버려진 것들로 자생하고 연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물을 통해 도달하게 된 새 땅. 그곳은 고립된 듯 보였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만나게 되는 종착지였는지도 모른다.    

                                                                                                                                                                                                                                   

                                    

ⓒ김씨표류기 스틸컷


왜 하필 짜파게티였을까.
아마 이 영화를 본 외국인의 감상과 한국인의 감상은 ‘짜파게티’ 하나로 천지 차이가 날 것이다. 어린 시절 언젠가 맡아보았던 달콤했던 그 향, 후루룩 짭짭 면이 찰지게 서로 달라붙는 소리, 두 손으로 토막 난 나무젓가락을 비비는 그 행위까지. 학교를 졸업하면 먹었던 짜장면, 이삿날에는 꼭 시켜 먹던 짜장면.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저마다의 개별적인 의미면서도 모두가 공유된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다. 모두가 함께 단번에 CM 송을 부를 수 있는 공유된 정취만 해도 그렇고. 그래서 ‘짜장면은 희망’이라던 김 씨 남자의 말에 우리는 당연히 고개를 끄떡인다.     

                                                                                                                                                                                                                                                

ⓒ김씨표류기 스틸컷


그에 반해 옥수수는 왠지 모르게 신대륙의 느낌이 연상된다. 척박한 땅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착한 음식, 옥수수.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 없던 새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던 이주민들이 재배를 시작했던 식량이 옥수수였던 것처럼, 김 씨 남자는 그 척박한 밤섬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김 씨 여자는 그 척박한 방 안에서 옥수수를 키운다. 그들에게 짜장면이 과거가 주는 희망이었다면, 옥수수는 미래가 주는 희망이었다. 과거와 미래가 주는 희망의 씨앗은 김 씨 남자와 김 씨 여자의 현재를 운동하게끔 자라난다.



ⓒ김씨표류기 스틸컷

‘해’가 아닌 ‘달’
김 씨 여자는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기 때문에” 달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새로운 위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때니까', '내일엔 내일의 아침이 찾아올 테니까'. 흔하게 들었던 말이고, 쉽게 건넸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에 태양, 햇살, 아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도태된 아웃사이더들에게 찬란한 아침은, 자신의 상처를 들킬 수밖에 없는 또다른 폭력이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새로운 위로가 필요하다. 어쩌면 더 따스하고, 어쩌면 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래서 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빛, 달빛 같은 거.

                                                                                      

                                                   

ⓒ김씨표류기 스틸컷


세상 밖에 홀로 나선 김 씨 남자가 걱정된 김 씨 여자(정려원 분)는 세상 밖을 향해 뛰쳐나간다. 역시 세상을 두려워하는 그녀의 발걸음에 함께 하는 것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아닌 달빛이다. 태양이 대다수 사람들을 환하게 밝혀준다면, 달빛은 천천히 그리고 지긋이,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켜준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조차 없는 나약한 존재들을 위해서 말이다.
달빛을 가득 충전한 김씨 여자는, 김씨 남자를 향해 뛰어간다. 말을 건넨다. 손을 맞잡는다. 활짝 웃는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다.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가 아니라면, 아무리 거칠고 모진 세상이래도 그들은 두렵지 않을 테니까.                                      



ⓒ김씨표류기 스틸컷

WHO ARE YOU?
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묻고 있는 질문이자, 결국 스스로 곱씹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 김씨 남자가 김씨 여자에게, 김씨 여자가 김씨 남자에게, 그들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걸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까지. 말도 많고 일도 많은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정작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SNS, 각종 커뮤니티 등등, 나를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은 넘쳐나는데 그 곳에는 진짜 ‘나’와 ‘너’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남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정의 내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김씨 남자는 김씨 여자를 변태, 싸이코라고 여기고, 김씨 여자 역시 그를 변태, 싸이코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나 자신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의내릴 수 있는 걸까.


나도 모르는 나의 삶은, 나를 둘러싼 숫자와 문자들을 통해 완성된다. 출신학교와 직업, 연차와 나이 등 건조한 몇 개의 단어로 완성되는 '나'라는 사람. 그렇게 이뤄진 삶은 참 바쁘다. 여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일상 속에서 치이고, 겨우 가쁘게 숨을 내쉰다. 세상과 싸우면서도 각자의 방에 꽁꽁 틀어 박힌 채,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답하는 것은 매일매일 미뤄가면서 말이다. 결국 이 질문은, 내 삶을 비롯한 지금 여기, 소외된 모두의 삶에 비수처럼 예리하게 꽂히는 질문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던지고, 답을 찾아가야 할 질문. 불어터져도 좋으니, 기다리고 싶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갈 때까지, 방문 밖으로 나온 우리가 두 손을 맞잡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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