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더비니 Dec 17. 2017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몇 가지 이유

:: 영화 러빙 빈센트




나는 외로울 때마다 고흐를 찾는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세상이 자꾸만 두렵고, 두 손안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것은 그 어떤 칭찬이나 따스한 위안의 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가만히 고흐를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곰곰이 고흐를 떠올리고 있노라면, 나보다 더 추운 곳에서, 나보다 더 아프고 쓰라린 삶을 보냈던, 하지만 그럼에도 명랑함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고흐가 나를 불쑥, 그리고 가만히 꼭 안아주었다. 물론 외로운 기분이 들 때 고흐를 떠올린다는 것은 한편으로 고흐에게 꽤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용기를 얻다 보면, 갚을 길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뒤엉켜 그를 꽉 안아주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어서, 풀죽은 나는 애타는 그리움으로 그의 그림을 좇을 뿐이다. 침대 맡에, 방 한 켠에, 책장 곳곳에 놓아둔 고흐의 길들을 좇으며 그의 말들을 곱씹어 보는 것. 그것은 고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자 나보다 앞서 고흐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고흐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고흐를 사랑한 사람들, 그들은 지나간 그의 말들을 붙잡아 그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가 써 내려간 영혼의 편지를 묶어 '고흐' 저서의 책을 만들고, 그가 온 힘으로 그렸던 그림을 박물관과 미술관 곳곳에 걸었다. 그들은 고흐가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본인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고흐의 생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 영광스럽고 찬란한 순간들을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은 생애 단 한 점 밖에 그림을 팔지 못했던 미치광이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를 기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러빙 빈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획부터 짜릿하고, 두근거리고, 그 자체로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이 드는 영화, <러빙 빈센트>. <러빙 빈센트>는 제작 기간만 총 10년에 이르는 거대 글로벌 프로젝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직접 그린 유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07명의 화가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들어낸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흐의 그림으로 그려지는 고흐의 이야기. <러빙 빈센트>는 한 마디로 말해,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고흐의 그림을 다시금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다. 사랑과 존경이 듬뿍 담긴 고흐의 그림이 움직일 때마다, 이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일렁이고 흔들린다. 고흐 그는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 


ⓒ러빙빈센트 스틸컷


화가란 빈 캠퍼스를 채우는 사람이다. 고흐는 자신의 붓질과 색깔로 이 세상을 작은 캠퍼스 안에 채웠다.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백지에 자신의 생각을 쏟고, 과감히 컬러를 입혀내는 것. 그는 자신의 일을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멈춰 있는 별빛이 찡하게 반짝이는 것 같은 느낌은, 어두운 물살이 아스라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은 아마도 그의 '신비로운 떨림'이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러빙빈센트 스틸컷


때론 순수하게, 때론 절박하게, 때론 미친 것처럼 세상을 살았던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왜 우리는 그토록 그를 사랑하며, 열광하며, 뒤늦게야 이토록 탐닉하는 것일까. 생전에는 한 줌의 사랑도 받지 못했던 예술가를 향한 뒤늦은 미안함일까, 생애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한 천재 화가에 대한 동정심일까, 아니면 고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자체에 대한 동경? 고흐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에 대한 열망? '우리가 고흐를 사랑하는 이유'를 곰곰이 곱씹어 나열해 보다가, 이내 그 이유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지, 고흐가 고흐이기에 사랑하는 것이었다. 삶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태양을 사랑했던 고흐 그 자체를.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고 말하자.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생전 그토록 외면받던 그를오늘의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데에 그리 많은 이유와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우리는 그의 강렬한 영혼의 눈망울에 그저 빠졌을  세상에 남은 그의 말과 그림과 숨결이 끝없이 되살아나 여전히 거대한 두드림을 만들어내고 있을 . 품에 안을  없이 멀리 사라져간 그를 그리워하며그가 세상에 남긴 것들을 추억하며  이름을 되뇌어본다사랑하는  이름빈센트빈센트빈센트  고흐.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너에게, 그 순간 가장 뜨거운 존재였을 테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