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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Feb 27. 2018

미래를 꿈꾸는 모두를 위하여 :: 싱 스트리트

위! 아! 더! 퓨처리스트!





미래를 꿈꾸는 모두를 위하여
싱 스트리트




싱 스트리트 스틸컷


영화는 코너의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로 시작한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코너는 기타를 집어 들고 노래한다. "대출금 갚은 게 아까워서 못 나가", "갈 테면 가", "빌어먹을 여편네"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잔잔한 선율을 타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온다. 

그곳은 코너의 집이었고 1985년 더블린의 모습이었다. 아일랜드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실직을 당했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근무가 단축될 만큼 나라의 상황은 열악해졌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더블린 사람들. 더는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이들은 바다 너머 영국으로 떠난다. 겨우 며칠을 버틸 현금만을 갖고, 겨우 몇 안 되는 짐 하나만을 들고. 


싱 스트리트 스틸컷


열악해진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코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전학 간 새로운 학교. 그는 첫 등굣길에 라피나를 만난다. 계단 위에서 하나의 동상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라피나. 코너는 그런 그녀를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첫눈에 반한 사랑, 첫눈에 알아본 뮤즈. 

코너는 라피나에게 말을 걸 구실로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하고, 결국 계획에도 없던 밴드를 꾸리기 시작한다. 처음 코너에게 라피나는 우러러보는 모델, 라피나에게 코너는 Kid라고 부르며 얕잡아 보는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라피나와 코너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변한다. 코너는 라피나를 위한 노래를 만들고, 라피나는 ‘작품은 절대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며 수영을 못하면서도 물에 뛰어드는 모습으로 코너의 열정에 불을 붙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리숙하지만 꽤 진솔하고 당차다. 그렇게 모퉁이corner Conor에 서 있는 그녀Raphina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자라간다.


싱 스트리트 스틸컷


코너에게는 라피나 외에도 형 브랜든이 있었다. 그는 한때 기타를 치며 독일행을 꿈꿨던 아이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더블린에 남아 그저 그런대로 저런대로 살아가는 어른이 된다. 꿈을 잃은 브랜든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코너에게 정신적 스승이었다. 

브랜든은 코너에게 순탄한 아들의 길을 양보할 뿐 아니라, 동생의 꿈까지 지지하는 수호자로서 역할 한다. 브랜든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기성 세대의 문제점을 콕 집어 말하고,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쾌한 일인지 코너에게 가르친다. 밴드를 꾸리기 직전 에이먼의 퀘스트를 통과하게 한 것 역시 브랜든의 말이었고, 런던으로 떠나기 위해 달키까지 태워다주는 것 역시 브랜든이다. 형이 즐겨 보던 뮤직비디오, 방구석에서 새어 나오던 레코드 위에 덧입혀지는 브랜든의 말을 통해 코너는 배운다. 과거를 쫓는 게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것은 곧 용기고 사랑이고 미래라는 것을.


싱 스트리트 스틸컷


코너는 시종일관 자신을 퓨처리스트라고 소개한다. 영화 백그라운드에 깔리는 음악의 가사들은 '어젠 내가 너무 늙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며 미래를 향한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코너는 늙어버린 것들, 정체된 것들에 환멸을 느낀다. 자신을 둘러싼 비극의 공간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재를 불평불만만 하는 것은 또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창조하는 예술을 통해 그 지긋함을 이겨낸다. 부수기보다는 만들어내는 것으로, 저항하는 것보다는 노래하는 것으로 불안한 삶을 버틴다. 

싱 스트리트 스틸컷


영화 <싱스트리트>는 모든 퓨처리스트를 응원하는 헌정 영화다. 때론 비행기 티켓을 살 형편이 못되더라도, 때론 비바람과 풍랑이 몰아치더라도, 우리의 계절은 365일 매일 어둡고 추운 것만은 아닐 거라고. 분명 저 너머의 런던이 또렷해지는 어느 맑은 날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런던을 향해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브랜든은 무언가 뻥 뚫린 듯 격정적인 절규를 내뱉는다. 환호와 기쁨, 후회와 질투가 뒤섞인 그의 고함이 육지에 남아 맴돌 때, 코너의 작은 배 안에는 치기 어린 열정이, 그래서 더 뜨겁고 살아 있는 희망이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뻗어 간다. 

재밌게도 런던으로 향하는 유일한 두 인물은 <백투더퓨처>를 본 코너와 라피나 뿐이었다. 라피나는 이미 한 번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돈도, 지낼 곳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런던 행을 택한다. 추위에 떠는 라피나가 코너를 올려다본다. 코너가 라피나를 처음 올려다 보던 그 때처럼. 어느덧 단단하고 강해진 코너가 듬직스럽게 배의 방향을 잡는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런던을 향해, 뜨겁게 휘몰아치는 저 너머의 미래를 향해. 지금 가지 않으면, 절대 못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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