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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Mar 26. 2018

방관한 게 아니라 동조한 겁니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빠구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알 수 없는 번호로 학급 친구에게 온 문자였다. 문맥만 보아도 충분히 기분 나쁜 단어임을 직관할 수 있었다. '너 가슴 크더라', '하고 싶다', '빠구리하자', '내가 너 사진 찍음' 등의 낯뜨거운 문장들이 이제 막 2차 성징을 시작한 어린아이의 문자 메시지 함에 전달됐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 아이의 친구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이 일을 말하지 못했다. 겁이 났고 무서웠다. 선생님에게 이 사건을 말하면 문자 발신인이 우리를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서, 휴대폰으로 몰래 찍은 사진을 여기저기에 뿌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시간이 지나 문자의 발신인이 동급생 남자 학생이었음을 알게 됐다. 발신인을 찾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춘기 남학생의 미숙한 치기’인 걸까, 문자를 받은 ‘여학생이 평소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이 일이 수면 위로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하는 신문사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증언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들을 변호했던 변호사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묵인과 방관의 힘을 입은 사건의 벽은 여전히 높고 고고高高하다. 거룩한 성당의 묵직함이 변방의 외침을 억눌러 덮는다. 덕망과 존경의 아우라는 굳건히 유지되고, 고해 없는 고해성사만이 주문처럼 교회를 지탱한다. ‘빠구리’ 문자를 받은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있다. 문자를 받은 그 여학생은 그 문자를 아직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아직도 불현듯 생각나는 문자 메시지의 찝찝함처럼, 피해자들의 떨쳐낼 수 없는 기억은 반갑지 않은 악몽이 되어 여전히 그들을 괴롭힌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 웅크린 말들



말해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수동태다.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해지지 않는 것. 그들은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한 거다. 말이 되지 못한 무수한 상처가 어두운 곳에서 썩고 또 곪는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작은 목소리들이 뭉쳐야 한다. 그게 바로 지금의 미투고, 고발이고, 싸움이다. 약자가 고소가 아닌 고발을 택하는 이유는 법 역시 기득권에 편향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범죄는 한 사람의 평생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편에 서지 못한 법은 되레 그들을 억누르는 제2의 폭력이 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미투 #위드유
#MeToo #WithYou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그래서 이전까지는 어떻게 됐느냐고 묻고 싶다. 교회는 방관했고, 사제들은 숨었고, 피해자들은 사과받지 못했다. 법은 방관했고, 가해자들은 숨었고,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곪아 갔다. ‘니가 날 딱딱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내가 '딱딱하게 말하지 말'아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딱딱한 목소리를 '유난'으로 본다면, 당신 역시 동조하는 중인 것이다. 그건 방관이 아니라 엄밀한 동조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신부가 아동 80명을 추행했고   
추기경이 묵과한 사실을   
입증할 변호사가 있는데   
우리가 낸 기사라곤  
6개월간 두 건이에요.



영화를 보는 내내 비통했다. 첫째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의 배경 때문이었다.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사제의 이름을 분노의 눈으로 한 명 한 명 노려보다가 눈물이 쨍하고 흘렀다. 성폭력에 결코 우연은 없다. 무지 역시 얄팍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하다. 가해자가 가진 힘이 더 셌을 뿐이다. 짐승 같은 권력이 제멋대로 약자를 헤집고, 입을 막고, 가증스러운 미소만을 내세울 뿐. 그 이름을 여전히 불편하게 바라볼 피해자들의 공포와 충격만이 끝없이 지속될 뿐.

둘째는 교회의 높은 성벽이 비단 보스턴 교구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다시 돈이 되고, 기득권이 되고, 거대한 권력이 된다. 그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죽은 자들이 있다. 고 장자연은 31명의 이름을 적고 세상을 떠났다. 성 상납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필사의 외침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녀가 당한 폭력을 닮은 일들이 곳곳에 천연덕스럽게 도사리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혹은 저 너머에서 비슷한 얼굴이 비슷한 폭력으로 비슷하게 앓아간다. 권력은 여전히 묵과하고, 방관하고, 동조한다. 

곡할 노릇이다. 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나. 아니,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말 속에 전제된 가해의 존재는 어찌 정녕 그리도 쉽게 인정되는 것인가. ‘다른 이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수치심이 왜 피해자의 상태를 운운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가. 왜 이리도 안일한가. 어찌 그리 무지한가. 왜 아직 방관하는가. 언제까지 무책임한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우두커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본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오르락내리락 요란하게 움직인다. 누가 누구랑 결혼을 했고, 누가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나왔고, 누가 끝내주는 시구를 했단다. 뉴스 사진 속 플래시라이트의 순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뉴스들이 화려하게 번쩍번쩍 켜졌다, 꺼진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지만, 왠지 알 필요 없는 것들만 한참을 알게 된다. 휴대폰 화면을 끈다. 냉랭하게 식어버린 것은 꺼져버린 까만 화면만이 아닐 거다. 빠르게 쓸어내린 기사들 사이에, 분명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을 묵직한 이야기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사라져 갔을 거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 떠오른다. 언론은 정부와 상응할 수 있는 지대한 권력이다. 때문에 언론은 제 소명을 다해야 한다. 펜은 곧 약자를 돕는 (거의 유일한) 힘이자, 무지와 안일의 세계를 고발하는 기능이며, '권력'에 대응하여 싸울 수 있는 독립된 권력이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정당함을 말하고, 정의를 외치고, 진실을 전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몫이다. 밤낮을 불사하며 진실을 찾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열정이 눈물겹다. 그들의 당연한 몸짓이 고맙고 또 서럽다. 그 열정에 기댄 절박한 전화벨이, 끊길 줄 모르던 간절한 벨소리가 꽤 오랜 시간 귓가를 맴돌 것 같다. 




어렵게 꺼낸 당신의 고발이 
따뜻하고 든든한 연대로 
보호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곳의 스포트라이트가
당신과 당신의 고통이 아닌
가증스러운 권력의 추악함을
비추길 뜨겁게 응원하며

그 모든 우리의 걸음이
모든 상처입은 자의 치유와 
진실과 평등의 진보로 이어지기를
믿고 또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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