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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May 04. 2018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스틸컷



기호 = 기표 + 기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의 근본을 이루는 두 성분을 기표와 기의라고 말했다. 기표는 문자나 소리 그 자체이며 기의는 문자나 소리가 지닌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나무, Tree 등은 자의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정의된 하나의 기표이고, 기의는 그 기표를 듣거나 말했을 때 머릿속에 연상되는 개념과 의미를 뜻한다. 이처럼 하나의 기표에 하나의 기의가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기호는 만들어진다. 때문에 이 기호라는 것은 약속 혹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며 대칭하는 의미를 통해 해석된다. 만약 공통된 약속이나 결합이 없다면, 그것은 기호나 언어가 될 수 없다.


ⓒ영화 컨택트 스틸컷



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


니체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단순화되고, 고정이 가능한 것으로 응집되는 점을 들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즉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적 문법이 우리의 사고를 결정하고, 언어가 우리의 생각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어는 약속과 우연의 결합으로부터 시작해 거대한 시공간을 만드는 세계로 확장한다. 즉 언어는 대상을 규정하고, 정의하고, 구분을 짓는 데 사용된다. 언어는 사고의 기반 혹은 전부이다. 그래서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 밖의 세계는 형용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광인은 원래 치료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세 시대까지 광인은 오히려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일반인에게 없는 기운과 특별함이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가면서 인간은 계몽이나 이성 따위의 언어를 만났고, 이는 나아가 합리와 비합리,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나눴다. 아동도 마찬가지다. 중세 이전까지 아동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부재했다. 아동이라는 구분과 정의가 언어로 새롭게 규정되면서, 아동은 양육의 대상으로, 규율과 도덕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귀여워해야 할 대상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제도 오늘도 분명 특별한 구분 없이 존재했던 것들이, 언어의 개념을 통해 인식을 바꾸고 사회를 뒤흔들고 마는 것이다.



ⓒ영화 컨택트 스틸컷



미래를 보는 외계 생명체가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여
미래를 보는 언어를
인간에게 준다
A가
A를 위해
A의 것을
B에게 준다.


ⓒ영화 컨택트 스틸컷


영화 컨택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 줄이면 위와 같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외계 생명체가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여 미래를 보는 언어를 인간에게 준다>. 이를 다시 간략하게 줄이면, <A가 A를 위해 A의 것을 B에게 준다>가 된다. 문장만 간단하게 놓고 보면, B가 A의 것을 감히 받아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A의 것이 과연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것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니까. A의 것이 얼마나 좋고 멋진 것인지 증명되기 전까지, 전달의 과정이나 결과는 모두 미지수다. 선물이 되기도, 저주가 되기도 할 A의 것. 영화 속에서는 A의 것을 두고 '무기' 혹은 '선물'이라고 말한다.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의 열쇠만이 그 방향을 알고 있을 뿐.

ⓒ영화 컨택트 스틸컷


지식과 권력은 한 몸이다. 헵타포드 어를 이해하는 언어학자 루이스를 통해, 미래의 지구인들은 미래를 보는 언어(지식)과 미래를 보는 능력(권력)을 모두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After Arrival 이후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했을까. 과연 그들은 이제 어떤 인식과 어떤 흔들림으로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나게 될까. 중세 시대 광인과 아동의 언어가 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헵타포드 어를 알게 된 그들의 세계는 다른 차원과 다른 인식과 다른 풍토를 만들어낼 것이다. 다만 After arrival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역시 오늘날 관객에게는 감히 어려운 문제요, 한갓 호기심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의 이야기다. 앞서 계속해서 주장했듯,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세계를 표현할 언어가 없으니까. 그 세계를 체험하고 상상할 언어가 없으니까.


ⓒ영화 컨택트 스틸컷



높고 크고 거대하고 웅장했던 열 두 개의 비행물체를 떠올린다. 다시 또 연상한다. 높고 크고 거대하고 웅장했을 바빌론 탑을. 신만큼의 권력을 갖고 싶어 높은 바빌론 탑을 쌓던 인간들에게 신이 내린 벌은 '다른 언어'였다. 신을 향해 마음이 하나로 모였던 그들의 탑은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한 오해와 싸움으로 그대로 붕괴하고 만다. 바빌론 탑과 컨택트가 다른 점은 결말에 있다. 붕괴를 만들어낸 서로 다른 언어와, 이제는 문자나 발음 등 언어의 기존 장벽이 중요하지 않은 공통의 언어. 포럼에 걸린 의기양양한 국기들에서 핏빛이 번지던 여느 전쟁터의 깃발을 떠올린다. 아는 것만 말하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무디고 더뎠던 과거의 감각이 이 세계의 역사 속 깊은 분열을 만들고, 경계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높은 벽을 이미 공고히 쌓은 채 미움과 증오를 낳았던 것은 아닐까. 분열과 경계가 맞닿은 지금, '컨택트'를 다시금 읽고 또 읽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들이 밀었던 진짜 이유에 대해 곱씹으며, 전에 없던 새로운 인식과 맞잡은 세계의 미래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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