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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Apr 07. 2017

역사는 외침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역사는 시대순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외침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극단 골목길의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공통된 외침을 지닌 1945년, 2004년, 2010년, 그리고 2015년의 어떠한 순간들을 조명한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들려오는 하나의 동일한 외침은 "살고 싶다"는 것. 이 가장 간절하고 소박한 마음을 통해 주변의 무수한 군인들의 모습을 돌아보고, 오늘과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질문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과 '여기'를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 그리고 2015년 또다시 한국. 

이 땅에서 흘려진 수많은 눈물과 못다 한 비극의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무대는 군기가 잔뜩 든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각진 걸음들로 시작한다. 자신이 일본을 위해 희생한다면 남겨진 가족들만큼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조선인 마사키의 죽음, 미군에 식료품을 납품하는 회사에 취직해 이라크로 날아갔지만, 이라크 무장 단체에 잡혀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서동철의 죽음, 그리고 이런 울부짖는 동철을 죽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이라크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과 분노, 생일 파티를 하다가, 프로포즈 연습을 하다가, 갓 두 돌이 된 사랑하는 아들을 떠올리다가, 저 바다로 영영 사라져 버렸던 서해 백령도 해군들의 죽음, 그리고 내일이 없는 삶에 반기를 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어느 탈영병의 죽음까지.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이고, 살기 위해 죽는다.


그 반복되는 패턴의 간격 사이사이에서 자욱한 피비린내가 솟구쳐 오른다. 죽음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관객의 감정 역시 여러 모양으로 솟구쳐 오른다. 미안함과 속상함, 무기력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울분의 감정들. 

왜 그들은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들이어야만 했을까, 

왜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왜 죽여야만 하는 것일까. 

왜, 왜, 왜 하필, 그들인 걸까.


그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이 모든 일이 정말 과거와 그들에게만 국한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답변은 단언컨대 'No'였다. 이 연극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나 극중 인물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과연, 결코, '끝이 난' 서사가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는 오늘의 슬픔과 고통을 마주한다. 늘 그랬듯 우리는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희생해 왔고, 두려움에 떨며 다가올 내일을 걱정한다. 빈약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개인은, 국가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힘이 짓누르는 압박 속에서 철저하게 파멸해갈 뿐이다.


그래서 무대 위의 '나 일병'을 비롯한 모든 군인은, 단 한 명의 캐릭터만이 아니다. 정말로 살아 있는 누군가였다. 가족 때문에 죽음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국가와 전쟁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엄마이기도 했고, 오빠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있는 힘 다해 버텨가던 그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금'의 '나'였다.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한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나온다. 디디와 고고는 허허벌판에 앉아 고도가 오기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고도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없다. 그저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지속될 뿐이다. 게다가 어쩌면, 고도는 영영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디디와 고고는 '고도'만을 우두망찰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힘에는 단 하나의 믿음이 있었다. 자기 자신을 불확실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믿음. 그 믿음을 쥔 두 사람은 미지의 고도를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연극이 끝난 뒤, 적막한 무대 위에는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은 탈영병의 군화가 한 켤레 놓여 있다. 극이 끝나고 채 다스리지 못한 저릿한 감정으로 불 꺼진 무대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도를 기다리던 디디의 낡은 군화 한 켤레가 떠올랐다.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고와 디디의 희망처럼, 탈영병의 죽음에는 간절한 희망이 깃들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를 비롯한 모든 군인의 희망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삶을 짓누르는 모든 것들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숨 턱을 조여오는 속박의 무게와 끝없는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로운 해방을 원하는,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지 않는, 그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아주 소박하지만 무척이나 소중한 작은 희망이.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모든 인간은 삶이라는 전쟁터를 매일 버텨내는 군인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

과연 그 '고도'는 언제쯤 올까, 그 희망은 언제쯤 찾아올까.

남겨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고도를 힘껏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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