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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n 11. 2018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을

::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은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소리 없이 영상만  때와 영상 없이 소리만 들었을 , 과연 어떤 쪽이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기 수월할까. 나는 주저 없이 전자의 경우를 고르겠다.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 평화로운 햇살의 시간과 그에 반해 점점 병들어가는 아내의 늙은 의 모습으로 노년의 숭고한 사랑을 말한다. 프리츠  감독의 <메트로폴리스> 지상과 지하의 대비되는 세계의 모습을 통해 사회구조의 모순을 말한다. 주름과, 옷과, 햇빛과, 그림자도 명확한 언어가 되는 영화의 세계. 영화는 확실히 영상의 언어다. 그리고 자비에 르그랑의 화제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시, 명확하게 그런 부류의 영화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이하동일)



언젠가 한국 드라마는 현악기가 제일 '열일'하는  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지나가는 우스갯소리였지만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거의 모든 상업 영화에서, 특히나 소위 신파극으로 불리는 영화들의 스토리는 '음향' 열일한다다한다. (히치콕의 싸이코 같은 스릴러물이나 크리스토퍼 놀런처럼 음향을 계획적으로  연출한 사례는 논외로 두고 - 이마저도 마땅한 한국 영화의 사례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 머뭇거리는 중이다) 주인공과 관객이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첼로는 이미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눈물을 폭포처럼 터뜨리길 유도하고, 때아닌 긴장감은 요란한 바이올린의 마찰로 대신 빚어낸다.

나는 그런 현악기의 열일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홀린 듯이 감정을 분출할 때는 좋다. 실컷 울고, 실컷 웃고, 실컷 긴장하는 카타르시스랄까! 하지만 돌아서면 영화가 남긴 여운은 주먹  모래알처럼 사르르 빠져나간다. 깊고 짙지 못한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청각적 효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롭고, 낯설고, 놀랍고, 동시에 건조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건조하다는  결코 재미없다거나 단조롭다는 말을 의미하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불필요한 끈적거림이 없어 본질의 모양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쪽에 가깝다. 건조함 속에 느껴지는 모양은 예리하고 날카롭, 이따금씩 불안하게 흔들린다.

 




정말 아빠가
폭력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엄마와 아이들이
거짓 진술을 하는 걸까?


영화는 가정 폭력에 대한 내용을 그린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내와 남편의 ''로부터 시작한다. 그들과 판사가 나누는 대화는 영화 전체의 흐름을 정직하게 묘사하고 서술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에 가까운 '' 셈이지만 사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판단하기엔 모호한 정보다.

 



하지만 아빠가 ' 사람'임을 발견하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대사가 많지 않다고 해서 언어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백미러에 비친 굳게 다문 아빠 앙투안의 입술, ' 사람' 그림자 속에 빛을 잃은 아들 줄리앙의 눈동자, 공허와 두려움 속에 힘을 잃어버린 엄마 미리암의 손과 시선  곳을 잃은  불안하게 이어가는 조세핀의 노래까지.

이 모든 말 없는 언어들은 비를 맞은 것처럼 축축하고 무겁게 젖는다. 고요하고 적막한 불안이 겹겹이 쌓일수록, 이 가정이 겪는 불안의 실체는 점점 더 또렷하게 그려진다.




Custody
1. 양육권, 보호권; 양육, 관리
2. (특히 재판 전의) 유치, 구류


이 모든 정적의 불안에 불을 지르는 것은 앙투안의 총소리다. 언제, 어디로 쏘일지 모르는 총구가 그 정적을 꿰뚫고 불안을 극대화한다. 이 불안이 갑자기 일어난 것인지, 혹은 정점에 다다른 것인지 고민할 새도 없이 총성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빛을 잃고, 말을 잃고, 시선을 잃어버린 남은 세 가족의 불안한 밤이 더욱 위태롭게 흔들릴 뿐. 한국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소개됐지만, 영화의 영어 제목은 Custody다. 아이의 양육권을 의미하는 첫 번째 뜻과 유치나 구류 상태를 의미하는 두 번째 뜻이 같은 단어에 오롯이 들어가 있다는 건 사실 흥미롭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하다.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가득 차야 할 부모의 양육과 뒤틀린 방식과 불안으로 가득 찬 유치 상태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같은 단어로 묶여 있을 때, 두 의미에 모두 갇힌 누군가의 영혼은, 과연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아직 끝나지 않은' 불안함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을까.



관객에게도, 줄리앙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말보다  깊고 짙은 얼룩을 남긴 ,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여전히 불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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