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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l 11. 2018

이거 보니까 너 생각 나더라

::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쉽게 휘청거렸다. 다들 그런 건가? 아님 나만 유독 그런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건지, 다들 어쩜 그렇게 안녕한 건지. 때때로 지인들이 내게 '너는 뭐든 잘하잖아', '에이 다음번엔 더 잘 할 거야'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할 때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체 네가 뭔데.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애써 꾸역꾸역 삼킨 채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를 저을 뿐. 흥. 늬들이 대체 뭘 알아?


흔한 자기계발서만 봐도 '휘청거림'은 건강한 지표라던데. 아무리 휘청거려도 내 삶은 도통 발전 없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걷고 뛰어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참 쉬웠다. 마치 악보 속 도돌이표처럼, 다시 제자리로, 다시 원점으로. 물론 자기 계발서의 엔딩은 이런 현상을 이렇게 진단한다. <그래도 지금의 시점은 그 이전의 시점의 나와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언제쯤 정말로 그렇게 될까요?


멋지게 해내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꼭 혼자만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발전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때때로 수치스러운 기분까지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피했다. 방문을 꼭 닫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자책하고, 무기력에 빠지고, 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한 뒤에서야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다구....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찌질하게, 또 아프게 울어대는 스티븐의 모습에 유독 정이 들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꿈꿔왔던 새로운 세계에 입성한 스티븐. 스티븐은 늘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 린더와 그의 행보에 힘과 자극이 되어줄 빌리를 통해 꿈꾸던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기다렸던 무대 런던을 향해 나아갈 준비도 하지만, 그의 어린 세계는 여전히 녹록하지만은 않다. 린더와 빌리가 런던의 부름을 받은 이후, 홀로 소명을 받지 못한 스티븐은 둘의 빈 자리보다 더 큰 공허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스티븐은 그에게 허락된 세계의 공간을 '패배감'으로 인식하고, 그의 세계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무용지물'로 받아들인다.






이거 보니까 너 생각 나더라.
스무 살의 너,
꼭 지금의 너 말야.

그 시절의 스티븐은 참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꿈꾸던 세계에 입성하기는 했지만, 그 세계를 직접 펼쳐나갈 용기와 힘은 부족했다. 전화 통화 하나에 모든 행복을 거머쥔 듯 하늘을 날다가도, 소식 한 통에 온 세상이 무너진 듯 그대로 거꾸러지는 스티븐. 그가 런던으로 가는 게 빠를까, 린더나 빌리가 그를 데리러 오는 게 더 빠를까, 그 어느 쪽도 쉽지 않을까 봐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조금만 더 힘내면 좋을 텐데, 런던으로 그냥 가 보면 좋을 텐데, 하는 타인의 말들이 목구멍에 가득 찼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는 차마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미 다쳐버린 스티븐의 마음이 꼭 과거의 나를 닮았으니까.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휘청거리던 나를, 고꾸라지던 그 시절과 지금의 나를.





패배감 속에서 헤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힘껏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잘도 허물어지고, 슬프게도 방황하는 그에게 나의 박수가 닿기를 바랐다.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그 시간이 '실패'의 시간이라기엔 충분히 영롱하고 아름다웠다고, 언젠가는 당신의 넘어짐이 새싹의 순간이 되고 뿌리가 될 힘이 될 거라고, 당신의 작은 시도들이 모여 다시금 멋진 세계를 만들어 낼 거라고. 나의 위로의 말들이 그에게 간절히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조금은 든든한 자가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때로는 거센 파도처럼, 때로는 잔잔한 냇물처럼 휘몰아쳤다가도 고요해지는 스티븐의 감정들. 알아봐 주는 이 없던 그의 작고 조그맣던 단어와 낱말들이 이제 한 편의 노래가 됐고, 시가 됐고, 삶이 된다. 온 세상을 감싸 안는 든든하고도 깊은 바다가 된다. 나의 그 시절 이후를, 이 영화의 엔딩 이후를 아름답게 상상하지 못한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에 당돌하게 살아남은 더 스미스의 세계가 그 아름다움의 증거고, 모리세이의 이야기를 새롭게 선보인 이 영화가 그 찬란함의 증거일 테니. 패배감에 휩싸여 매일을 궁상맞게 보내던 그의 모습과 다시금 용기를 내어 노래했을 그의 내일을 교차하며 떠올리다보면 기분 좋은 웃음이 실실 멈추지 않는다. 찌질하고 보잘 것 없는 내 삶도 돌이켜보면 꽤 귀엽고 괜찮은 여정이 될 거라는 믿음,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 청춘의 노래는 계속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달까,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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