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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밥 먹여주진 않지만
by 콩빈 Oct 02. 2018

:: 영화 에브리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없는 건 아냐





이 리뷰는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작성했습니다.







여기 A가 있다. 매일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몸으로 들어가 타인의 삶을 빌려 살아가는 A. 여자 친구의 소중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저스틴의 몸에 들어가 그의 여자친구와 간만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다음 날이면 에이미의 몸에 들어가 참견 많은 전학생의 삶을 보내기도 한다. 대개 몸 주인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흔적 없이 지내지만, 때때로 자살을 결심한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 이 자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고민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 괜히 더 조심스럽고 설레는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A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매일, 매 순간을. 




"이런 감정은 네가 처음이야." A는 리아넌에게 말한다. 늘 무작위적으로 연결된 누군가의 24시간을 떠돌이처럼 살아가던 A가 리아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A는 리아넌에게 자신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고, 처음에는 이를 믿을 수 없던 리아넌 역시 A와의 온기를 이어가기 위해 고민한다. A는 처음으로 한 몸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늘 24시간이 되면 주인의 몸을 반납하던 A였지만, 그는 리아넌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든 규칙을 거스르기 시작한다.




모든 규칙을 깨부수어도 행복한 사람. 모든 규칙을 어겨도 괜찮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 A와 리아넌 사이에는 거짓과 허영과 가식의 껍데기가 없다. 그저 통하는 두 사람의 진솔한 마음만이 가득할 뿐. 자고로 원래 온기나 마음 같은 것에는 껍데기가 없다.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 눈빛과 눈빛 사이를 따뜻하게 오고 갈 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없는 것은 아니다.




A는 24시간의 변화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그 투쟁은 오래가지 못한다. 원래 몸 주인에 대한 예의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남의 삶을 연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껍데기의 삶이 싫었기 때문일까. 시시때때로 모습이 달라지지만, 어쨌거나 A는 A다. 어찌 오늘의 A와 내일의 A가 어찌 다를 수 있겠어. 오늘의 A와 내일의 A가 다른 얼굴, 다른 성별, 다른 미소를 지녔을지언정, A의 춤버릇과 흥얼거림과 기억의 입맞춤들은 어찌 쉽게 달라질 수 있겠어.




그렇게 A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것을 결심한다. 외롭고 추운, 도무지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정박할 수 없이 부유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오늘의 세계를 향해. 절대 가질 수 없는 타인의 삶을 향해. 하지만 A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결연하고, 또 단단하다. 그저 주어진 오늘의 삶을 흠 없이, 최선을 다해, 선한 마음으로 살아내 갈 뿐. 홀연히 찾아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A. A가 겪었고 겪어야 할 수많은 순간은 쉽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외로움의 무게였다. 마음이 먹먹했다. A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지금 A 너는 어디에 있을까. 



섣불리 내일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의 흔적과 기억은 또렷하게 살아 숨 쉰다. 기록을 남겨보라는 리아넌의 제안 이후, 그는 조금씩 자신의 흔적을 만들어 간다. '기록하다'는 것이 단순히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영화표를 모으는 것만인 줄 알았던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삶을 관통하며 살아온 그가 대답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이라고. 나아가 마주쳤던 모든 존재에 대한 예의이고, 마주했던 모든 계절에 대한 감사이며,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강인한 오늘의 생명력이라고. '내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저 하루 밤을 꼬박 자고 일어나면 얻어지는 것인 줄 알았던 우리에게, A는 '내일'을 맞이하고 약속하고,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찬란한 순간인지 넌지시 알린다. A는 차곡차곡 소중한 기록을 만들어 간다. 마주치고, 마주하여, 맞이하는 모든 것들이 피어나는 매일EVERYDA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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