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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Oct 20. 2018

소수들은 한평생 생각해도 그 규칙을 알 수 없어요.

::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혹시나 해서 적어두는데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저는 첫 문단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말할 거거든요.






WHO HAS DONE IT?

<유주얼 서스펙트>에 대한 리뷰나 소개만큼 시시한 게 또 있을까. '영화를 본 사람은 없어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다 아는 영화', '절음발이가 범인인 영화'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유주얼 서스펙트>는 반전 영화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화면 전환, 반전 효과, 점프 샷, 플래시백 등 한 때는 분명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법한 영화적 기법도, 이제는 꽤 당연한 연출로 디폴트 값이 된 지 오래. 만약 고전 명작이라는 이유로 21세기형 전율 넘치는 긴장감을 탑재한 뒤 이 영화를 접한다면 아마도 꽤 따분하고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오늘날 다시 꺼내 보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최초의 반전 영화이자, 누아르와 스릴러, 탐정과 범죄 영화를 오고 가는 결합형 장르 영화이며, 고전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디테일을 꽤 구석구석 잘 살려낸 수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 좋아하는 반전 영화, 그러니까 어제도, 명절에도,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봤어? 대박이지 않냐"고 입을 털게 만드는 장르 영화의 母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 번쯤 찬찬히 읽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스릴러 영화의 핵심은 후더닛Who has done it구조다. 즉 '누가 이 범죄를 저질렀는가'의 물음은 영화를 전개하는 힘이자 이유다. 체포되어 온 네 명의 용의자 하크니, 맥 매너스, 펜스터, 키튼과 혼란스러운 체포 현장 사이를 비집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용의자 대열에 합류한 절음발이 버벌. 다섯 명의 유력한 용의자Usual suspects들은 유치장 안에 나란히 서 머그샷을 찍는다. 산 페트로 부두 폭발 사고를 조사하는 쿠얀은 유일한 생존자 버벌에게 사건에 대한 진술을 듣는다. 쿠얀은 그의 진술을 통해 다섯 명의 용의자를 조종한 배후의 인물, '카이저 소제'를 알게 된다. 그때 폭발 사고의 또 다른 생존자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회복한다. 쏟아지는 듯 진술을 마치고 일어나는 버벌과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쿠얀. 그때 또 다른 생존자가 완성한 카이저 소제의 몽타주가 쿠얀에게 도달한다. 카이저 소제, 그는 과연 누구일까?





THE USUAL, THE PRIME


영화의 제목인 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는 범죄 현상이 일어날 때면 평소의 전과 기록으로 인해 범죄의 혐의를 받아 수사기관에 의하여 수사를 받는 대상을 말한다. 영화 속 혐의자들은 그간 저질러온 악한 범죄 행위들 탓에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악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뉴욕에 비가 내릴 거라더군." 맥은 느닷없이 뉴욕의 비 소식을 읊조린다. 범행을 도모하는 가운데서도 내심 한 편으로는 친구와 가족이 있는 고향의 날씨를 살피는 맥. 그런 맥의 대사와 늘상 애인을 떠올리는 딘 키튼의 모습은,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그들이 악하고 못된 범죄자이기 전에,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버벌은 어떨까? 카이저 소제를 보고도 살아남은 이로부터 만들어진 몽타주 때문에, 버벌은 이제 카이저 소제, 즉유력한 제1의 용의자prime suspect로 밝혀진다. 잔혹한 리벤저revenger 카이저 소제-버벌의 세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의 세계다. 자기가족과 친인척을 모두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피해를 준 모든 이들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고도, 그는 빼어난 거짓말과 속임수로 쉬이 체포되거나 심판 받지 않는다. 수학에서 소수prime number란 1과 자기 자신의 수 외에는 다른 어떤 숫자로도 나눌 수 없는 미지의 숫자를 말한다. 무성한 소문과 그 자신만이 존재하는 카이저 소제의 세계. 그의 세계는 꼭 소수의 논리처럼 아리송하다.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는, 세어도 세어도 헤아릴 수 없는. 영화의 끝, 카이저 소제는 어디론가 불현듯 사라진다. 그가 남긴 몇 가지 거짓말과 소문들만이 규칙 없이 무한의 허공을 둥둥 부유할 뿐. 소수prime number와 카이저 소제prime suspect, 그 둘의 끝을 아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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